2020.8.18.
몇번의 알람이 울렸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 일어나서 알람을 껐다. 나도 내 알람소리에 일어나서 직접 끄고 다시 잠들었다. 그러다 팡이 움직이는 소리에 깼다. 여덟시 반. 기상할 시간이다.
팡켠진배 순으로 씻었다. 렌트카 반납하라는 전화가 와서, 먼저 씻은 팡켠이 다녀오기로 했다. 팡켠은 겸사겸사 도동항에 들려 기념품까지 대신 사다주었다. 나는 직원들에게 선물할 오징어먹물빵을 부탁했다. 잘 정리한 짐을 모텔에 맡기고 나왔다.
오늘 식사는 명가. 허영만의 식객에 나왔던 집이다. 따칼을 먹으러 갔는데, 팡이 갑자기 홍합밥 먹고 싶단다. 홍따밥이 아닌 홍합밥.
여기 따개비칼국수 두 개랑 홍합밥 두 개 주세요.
잠시 후 밥이 나왔는데… 홍합보다 따개비가 더 많다.
저희 홍따밥 말고 홍합밥 시켰는데요?
그래요? 아... 이거 이렇게 같이 먹으면 더 맛있는데.
네, 그런데 오늘은 홍합밥이 먹고 싶어서요.
알았어요.
여느 식당처럼 적당히 불친절한 종업원이 밥을 다시 가져가자, 배가 나직이 말했다.
혹시 이거 가져가서 그냥 따개비만 빼고 다시 가져오는 거 아니냐?
잠시 후 다시 가져온 홍합밥에는 따개비는 없고 분명히 더 많은 홍합이 들어있었다. 그런데 밥을 비비자 숨겨져 있던 따개비가 드러났다. 배가 그걸 보여주며 웃었다.
이거봐 ㅋㅋㅋ 미처 다 못 뺀 따개비 ㅋㅋㅋㅋ
넷이 다함께 웃었다. 그래도 홍합을 더 넣어줬으니 불만은 없다. 울릉도 재밌다.
음식은 언제나처럼 맛있었다. 불친절을 맛으로 보상하는 것이 울릉도 전통인가. 밥과 국수를 남김없이 먹었다. 반찬은 리필까지 해가며 털어넣었다. 그렇게 모든 음식을 다 먹어갈 무렵, 갑자기 종업원이 칼국수 한 그릇을 줬다.
이거 여기 더 먹어요.
뜻밖의 서비스. 아무래도 주문한 것보다 많은 칼국수를 실수로 만든 모양이다. 우리는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상황을 파악하고 열심히 먹었다. 울릉도 참 재밌는 동네다.
디저트 먹으러 이레카페에 왔다. 울릉도에서 유일하게 두 번 방문한 곳. 맛도 분위기도 서비스도 좋은 카페.
콜드브루 두 잔이랑 단팥빙수 하나, 초코빙수 하나 주세요.
단팥빙수가 워낙 맛있어서 초코빙수도 시켜보았다. 기대 이상이었다. 자극적으로 달지 않고 고급진 맛이었다. 설빙에 못지 않은, 아니 설빙보다 나은 빙수 맛집이다.
발권 전까지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팡은 졸았다. 나는 여행기를 썼다. 팡진이 카페에 앉아있는 동안 켠배는 숙소에 맡겨둔 캐리어를 찾아왔다. 잠에서 깬 팡은 서울로 돌아가기 싫다 했다. 켠은 내일부터 또다시 일 많은 회사로 출근할 것을 걱정했다. 나는 코로나 유행으로 한의원이 한가할 것을 걱정했다. 다들 복귀할 일상을 걱정하는 와중에, 배만 태연했다. 프리다이빙 강사를 꿈꾸는 배는 당분간 출근 계획이 없다.
한시 사십분. 좀 미리 나섰다. 여객터미널에는 사람이 많았다. 티켓을 발급받고 일찌감치 줄섰다. 승선을 기다리며, 강릉에서 무얼 먹을까 의논했다. 우린 참 먹는 걸 좋아한다. 멀미약 사서 다같이 먹었다.
두시 반. 승선. 2층 우등석 맨 앞자리다. 다리를 쭉 뻗어도 공간이 남는다. 발권을 일찍한 덕분이리라. 배는 예정대로 세 시에 출발했고, 우리는 멀미약 약발로 기절하듯 잠들었다. 그러다 강릉에 도착할 무렵에 깼다. 멀미가 신기할 정도로 없었다. 갈 때완 달리, 배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오늘따라 바다가 잔잔했던 걸까, 아니면 2층 우등석은 원래 덜 흔들리는 걸까.
여섯시 십 분. 강릉항 도착. 배가 바다를 내려다 보더니 한마디 했다.
똥물이야. 한 치 앞도 안 보여. 내 인생같아.
회계사 그만두고 프리다이빙 강사 하겠다는 놈이 할 소린가 싶지만, 과연 바닷물이 울릉도와는 분명히 달랐다. 시커매서 아무것도 안 보였다.
저녁 타임. 팡배, 진켠으로 택시를 나누어 타고 장군시오야끼 체인1호점으로 갔다. 택시 승차감이 너무 좋았다. 아스팔트 노면이 새삼 부드러웠다. 식당엔 팡배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뭐 좀 시켰어?
어. 중간맛 4인분.
술은? 술 시켜야지. 사장님, 여기 지역소주가 뭐예요?
처음처럼이에요.
네? 진짜요?
네. 원래 경월소주라고 있었는데, 롯데가 인수하고 처음처럼 만들면서 전국적으로 퍼졌어요. 여기 사람들은 처음처럼 먹어요.
아, 그렇구나. 그럼 처음처럼 하나랑 카스 하나 주세요.
사장님과 사모님이 참 친절하시다. 부르면 바로 대답하시고, 주문도 바로 받아주신다. 눈이 마주치면 웃으신다. 캐리어에 고기 기름 튈까봐 앞치마도 내어주셨다. 울릉도에 다녀오니, 당연하던 육지의 친절이 새삼스럽다.
대패삼겹살을 익히고 그 위에 파절이를 넣어 섞어 먹는 시오야끼는 이름에 비해 맛이 너무 한국적이었다. 검색해보니 일본어로는 소금구이라는 뜻이다. 어쩌다 그 이름 그대로 지금의 레시피를 갖게 되었는지 몰라도, 맛있었다. 대패삼겹살에 파절이 넣어 볶은게 맛없을 수가 있나. 2인분 추가해 먹고 밥까지 볶아먹었다.
소화시킬 겸 강릉역까지 걸었다. 서울에서 배 타러 왔을 땐 작아보이던 강릉이, 울릉도에서 배 타고 오니 새삼 커보였다.
강릉역 도착. 열차 시간 기다리며 커피를 마셨다. 출발할 때 강릉에서 나눴던 일회용 카메라를 다시 모았다. 팡만 빼고. 팡은 이제서야 일회용 카메라를 쓰기 시작했다. 뒤늦게 장 수를 채우느라 별 보잘것 없는 것들에 다 카메라를 들이대는 팡을 보며 배가 말했다.
팡아. 너 무슨 탐구생활 하냐 지금?
어, 나는 학교 다닐 때에도 마지막까지 숙제 미뤄뒀다가 몰아서 하는 스타일이었어.
과연 팡 카메라에선 어떤 사진들이 나올지 기대된다.
열차에 여유롭게 탑승했다. 출발하면 곧 잠이 올거라 생각했는데, 이미 너무 많이 자서인지 전혀 졸리지 않았다. 여행기를 정리하고 하스스톤을 했다. 그걸 켠이 봤다.
너 임마 지금 여행기 안쓰고 뭐하는거야. 독자가 이렇게 기다리는데!
게임하다 혼난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배켠진은 청량리에 내렸다. 팡은 집이 서쪽이라 서울역까지 간다. 기차 옆에서 팡과 이별했다. 청량리역 앞에서 켠배와 차례로 헤어졌다. 여행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