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아홉 번째 생일.
그동안 한의원 운영하면서 직원 생일을 챙긴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제 생일 역시 마찬가집니다. 따로 챙기지 않는 게 서로에게 편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오늘 제 생일을 갑자기 직원들이 챙깁니다.
원장님. 점심 약속 있으세요? 오늘 생일인데 미역국 드셔야죠.
어, 이거 이러면 반칙인데요.
마침 약속이 없었습니다.
원래는 점심마다 나가서 혼밥 하지만, 오늘은 직원들이 차려주는 밥을 먹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한의원도 한가하겠다, 일찍부터 탕비실에서 지지고 볶는 소리가 납니다.
탕비실이 원장실 바로 옆이다 보니, 맛있는 냄새가 문틈으로 슬며시 들어옵니다.
냄새를 맡으니 배가 더 고픕니다. 점심시간까지 겨우 참았습니다.
원장님~ 식사하세요~
아줌마 직원들이 보기에 독거 노총각 원장이 불쌍했던 걸까요? 상다리가 휘어질 지경입니다.
아니 뭐 이렇게 진수성찬을 차리셨어요. 설마 평소에도 이렇게 드세요?
에이, 평소에는 그냥 밑반찬 몇 개 놓고 대충 먹어요. 라면도 끓여먹고.
밥도 반찬도 너무 맛있습니다. 반찬을 많이 먹으니 밥 한 공기로도 이미 배가 부릅니다.
원장님. 밥 더 드세요.
아니, 괜찮아요.
에이 그러지 말고 더 드세요.
아... 그럼 딱 한 숟가락만 주세요.
저는 사양을 잘 못합니다.
한 숟가락 더 달라고 했더니 한 공기를 퍼줍니다. 미역국도 다시 가득 찹니다.
해준 성의가 고마워서 다 먹었습니다.
저도 뭐라도 사야 할 것 같습니다.
디저트는 제가 살게요. 빙수 사 올까요?
아니에요 원장님. 다음에 먹어요. 저희 배불러요.
아... 사실 저도 배부르긴 해요. 근데 뭔가 사야 되는데.
그럼 다음에 사주세요.
생일상 사진을 여러 단톡방에 올려 자랑했습니다. 다들 저보고 복이 많다더군요.
앞으론 직원들 생일 잊지 말고 챙겨야 하겠습니다.(202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