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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Apr 19. 2023

싱가포르 여행기 1일 차 - 출국

2023.4.12.


이 호텔은 인당 5.6만... 저 호텔은 인당 7만… 어? 호텔81 오키드. 여긴 개싸다. 인당 4만 원.

우리 오늘 잠만 자잖아. 젤 싼데 가자 ㅋㅋ

ㅇㅇ ㅋㅋ 그럼 첫 박은 호텔81로 가자. 우리 81이니깐!

그러자. 그러네. 81. ㅋㅋㅋㅋㅋㅋㅋㅋ.

공항 가는 길에 팡과 톡을 하다 81년생 드립에 빵 터졌다. 입꼬리 올라간 김에 셀카를 찍었다. 4년 만의 출국. 아직 실감이 안 난다.

싱가포르 여행은 팡이 제안했다. 배켠은 일정이 안 맞아 이번엔 둘이 간다. 싱가포르행 비행기는 다 저녁에 출발이라, 나는 15:10까지 진료를 하다 나왔다. 캐리어를 본 직원들이 물었다.


원장님 의료봉사 가시는 거예요?

아뇨 그냥 놀러요.


나는 너무 솔직하다.


공항이 낯설다. 오랜만이야. 인천. 팡은 탑승 수속을 마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팡의 도움 아래 탑승 수속에 수하물 위탁까지 다 셀프로 처리했다. 줄이 짧아 금방 끝났다. 이어서 보안 검색대를 지나 면세점으로.

진아. 점심 먹었어?

어 먹긴 먹었는데 별로 안 먹었어. 야 라운지 가야지.

그러지 말고 한식은 어때? 나가면 한식 못 먹잖아. 전에 튀르키예 다녀올 때, 여기서 마지막으로 먹은 한식이 계속 생각나더라고.

오이씨 얼마나 맛있길래? 그래 가보자.


그래서 먹은 저녁은 푸드코트에서 순두부찌개에 돈가스, 쌀국수. 평소 일상에서 먹는 음식답게 우리 입에 잘 맞았다. 여행을 많이 다닌 팡. 공항 방문이 일상이 되면, 공항식 또한 일상식을 추구하게 되는가.

면세점에서 위스키를 1병씩 사고 탑승했다. 좌석에 디스플레이가 달려있지 않은 비행기는 아주 오랜만이었다. 넷플에서 부랴부랴 영화를 다운받았다. 스위치. 이거랑 책 좀 보면 여섯 시간쯤은 버티겠지.

이륙 후 한 시간이 지나니 기내식을 나눠준다. 뭐야 벌써 식사야? ㅎㅎ 아직 배가 안 고파 멋쩍게 웃었는데, 우리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불고기 덮밥 10,000 원. 뭐야 밥을 돈 주고 사 먹는 거였어? 가만 보니 밥뿐 아니라 음료, 심지어 물까지 모두 유료였다. 저가항공 이코노미의 실상.

어쨌든 배가 고프지 않아 다행인 나는 아까 다운 받은 스위치를 틀었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여서 훌쩍거리며 끝까지 보았다. 5점 만점에 3점 드립니다.


이륙 후 세 시간이 지났다. 아직도 착륙까지 세 시간이 남았다는 이야기. 그 사이 팡은 트레이드마크인 노란 책을 덮어두고, 길복순을 보고 있었다. 나는 내가 추천한 길복순을 팡이 재밌게 보길 바랐다. 할인할 때 사두었던 슬더스를 켰다. 패키지 게임답게 인터넷 연결 없이도 잘 실행되었다. 분명 잘 만든 게임인데 이상하게 중독성이 없다. 

재밌네. 처음엔 좀 과장되어 보였는데, 컨셉이라 생각하니 재밌다 야.

그치? 그 감독 영화가 재밌어. 불한당, 킹메이커도 봐.


팡이 길복순을 다 보고 다시 노란 책을 펼쳤다. 한국 시각으로 23시. 이륙 후 네 시간. 저가항공 이코노미의 시간은 천천히 간다. 잠이 오지 않아 나는 책을 꺼냈다. 몇 장 읽다 보니 자꾸 팡의 노란 책이 눈에 밟혀서, 아예 같이 보았다. 책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여행 이야기, 골프 이야기, 연애와 결혼에 대한 이야기 등을 나누고 또 나누는 데도 아직 하늘이어서, 우리는 언제부터 비즈니스를 타고 다닐 수 있을 것인지, 비즈니스 가격이 아깝지 않으려면 얼마나 벌어야 하는지, 아쉬운 대로 아시아나라도 끊을걸 그랬는지 아닌지 별의별 이야기를 다 나누다가 다시 각자의 휴대폰을 보는데 아직도 한국 시각 1시 14분.

비행기 타서 한 숨도 안 잔 거 처음인 것 같애.

둘 다 한 숨도 못 잤다. 


한국 시각 1시 50분. 현지시각 12시 50분. 드디어 창이공항 도착. 으어 힘들다. 근데 공항을 나오는 것이 비행 못지않게 힘들었다. 길을 잘못 들어 출국 보안 검색대까지 갔다가 공항 직원의 안내에 따라 돌아 나오기도 했다. 하마터면 싱가포르 입국도 전에 다시 출국할 뻔?! 입국 서류는 비치된 작성용 태블릿이 말썽인지 아님 사이트가 말썽인지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질 않아,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다 팡 핸드폰을 써서 겨우 마무리했다. 수하물 찾는 곳에는 컨베이어벨트도 이미 멈춰 선 채 우리 두 캐리어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어휴 이게 뭐야 ㅋㅋㅋㅋㅋ

봐바. 진아. 이럴 때 자물쇠가 풀려있는 게 얼마나 위험한 거야. 응? 내가 잠그는 법 알려줄게. 비밀번호 뭐야?

비밀번호? 모르는데…

그러면 000일 거야. 봐. 맞네. 캐리어 자물쇠는 요렇게 잠그면 돼. 알겠지?

그 와중에 캐리어 잠그는 법을 배웠다. 팡에게 많이 배운다. 어렵게 입국을 마치고 유심카드 교체한 뒤 그랩으로 택시를 잡아 호텔에 오니 이미 두 시 반.

피곤하지? 그래도 뭐 좀 먹을까?

그래. 짐 놓고 바로 내려와서 맥주 한 잔 하자.

방은 좁았다. 잠만 자고 나가기에 아까움이 없었다. 가방만 두고 나왔다.

새벽 세 시가 다 되었는데도 영업 중인 곳이 많았다. 길 건너 식당이 밝고 괜찮아 보여서, 무심코 무단횡단 하려다, 아 맞다! 여기는 싱가포르. 조심해야지. 횡단보도가 어디 있나 찾아보니 저 멀리 있다. 어? 그런데 다들 무단횡단 하는데? 그래서 우리도 했다. 여기도 다 사람 사는 동네구나.

자리에 앉아 음식을 주문하려다 보니 맥주가 안 보인다. 다른 테이블 사람들도 다 콜라나 주스를 마시고 있다. 맥주 안 파냐고 물어보니 안 판단다. 어우 그러면 음식을 못 먹죠 저희가. 


다시 길 건너와서 물어보니 여기도 안 판다고. 헐? 혹시나 찾아간 편의점에도 맥주 냉장고는 잠겨 있었다. 알고 보니 법적으로 22:30부터 07:00 까지는 술을 못 팔게 되어 있다고. 아쉬운 대로 음료 하나씩 마셨다.


술을 어차피 못 마시면? 밥이라도 먹어야지. 딤섬집에서 새우만두, 해물볶음면, 돼지갈비튀김을 시켰다. 둘이 먹기엔 좀 많았다.

호텔로 돌아오는 짧은 길에 수없이 많은 쥐를 보았다. 쥐들이 다 포동포동 크고 느렸다. 길바닥엔 담배꽁초와 쓰레기가 많았다. 듣던 싱가포르와 다른데? 아님 우리가 묵는 동네가 좀 그런 동네인가.


호텔에 들어와 씻고 누우니 4시 반. 밤을 다 새웠다. 불을 끄고 누운 팡이 몇 초 되지 않아 코를 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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