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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Apr 19. 2023

싱가포르 여행기 3일 차 - 센토사 해변

2023.4.14.


진아 일어나. 커피 마시고 수영 가야지.


7시 15분. 팡이 날 깨웠다. 이런 일이 가능하다니. 나는 아직도 팡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먼저 가 있으라 하고 더 잤다. 8시 알람은 금방 울렸다.


팡 어디야?

스타벅스.


팡이 그려준 약도대로 찾아갔다. 팡은 빵과 커피를 막 먹고 마신 참이었다. 똑같은 메뉴를 시켜 먹었다. 위장 동기화 완료.

다시 호텔. 객실에서 수영복을 챙겨 수영장으로 갔다. 수영장 물이 너무 차지 않아 좋았다. 대만의 호텔 수영장에서 찬물에 억지로 수영하던 생각이 났다. 넷이 시합했는데 내가 꼴찌였다. 여행 기억은 오래 남는다.

수영 마치고 올라와 빈둥대다 퇴실. 오늘내일은 센토사에서 보낼 예정이다. 본토에서 할 일은 어제 다 했으니까. 택시 타고 15분. 마지막 숙소인 아마라 생추어리 리조트 도착. 딱 봐도 어제보다 더 좋다.


숙소가 점점 더 좋아지네?

어 그게 팡투어의 묘미지.


로비 한편에 사탕, 초콜릿, 젤리와 오렌지 주스가 비치되어 있었다. 팡이 알아서 주섬주섬 챙겼다. 숙소는 정말 좋았다. 침실도 욕실도 넓고 창 밖으론 자연이 펼쳐졌다. 늘어나는 숙박비에 비례해서 시설이 좋아지니, 돈 쓰는 재미가 있다.

진아. 수영복 챙겨.

응? 바로 또 수영?

여기 굿 올드 데이즈라는 푸드코트가 있어. 치킨라이스부터 이것저것 다 판대. 거기서 먹고 바로 해변으로 내려가자.

완전 씐나는데?


호텔 밖으로 나와 걸었다. 무성한 열대 우림이 본토와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뉴욕 있다가 하와이 온 기분. 싱가포르 참 다채롭다. 그런데 푸드코트가 영업을 않고 있었다. 정확히는 영업 중이긴 하나, 단체 손님을 받고 있어서 우리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냥 해변으로 향했다.

걸으면서 본 센토사는 본토와 인종 구성이 좀 다르다. 백인이 많고, 인도인이 많다. 흑인도 꽤 있다. 물론 말레이시아인, 중국인도 있다. 진정 다민족국가.


남쪽의 넓은 해변에 비치 클럽이 쭉 늘어서 있었다. 우리가 고른 곳은 루머스 비치 클럽. 원래는 소파에 누워 여유를 즐길 계획이었지만, 소파는 90분에 100불인데 테이블은 무료라기에 그냥 테이블을 택했다. 돼지갈비 바비큐, 새우를 추가한 바질 파스타, 맥주 두 잔.

더웠다. 어제보다 훨씬 더웠다. 앉아만 있어도 땀이 흘렀다. 티셔츠가 흥건히 젖었다. 에어컨 없는 해변은 별로 즐거운 곳이 아니었다. 그나마 음식이 맛있어서 좀 다행이었다.

팡아 슬슬 물에도 좀 들어가 볼까?

좋지 고고.


수영장 물이 생각보다 시원했다. 한가로이 해변을 감상할 여유가 비로소 생겼다. 그래. 이런 해변을 기대했다구. 가만 보니 나름 인피니티 풀이어서 얼씨구나 폰을 가져와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둘이 사진 찍고 놀다가 옆을 보니, 멀끔한 백인 남자 둘이서 물속에서 부둥켜안고 있는 게 아닌가. 씨름이라도 하나? 조심스레 보다 보니 키스도 하고 아주 난리가 났다.


진아 여기 완전 선진국이다 야.

그러게. 아니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우리도?! 팡 우리 너무 가까이 위치하면 안 될 것 같다.

그치…? 그러고 보니 남자 둘은 거의 없긴 해. 하긴 해변에 남자 둘이 뭐 오겠어?


누가 봐도 장가 못 간 노총각들 일 텐데 괜한 걱정을 했다. 유교 탈레반 국가 출신이라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럽다. 바닷물도 들어가 보았으나, 시원하지도 않고 발에는 해조류가 엉켜서 도로 나왔다. 됐다. 수영은 할 만큼 했다.


여기 해변에 볼거리들이 좀 있더라고. 셔틀 타고 좀 보러 다녀보자.

오케이.


팡은 J다. 자못 계획적이다. J와 함께하는 여행은 편리하다. 그저 오케이. 콜. 좋아. 만 적절히 외쳐주면 된다.


정류장 옆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버스를 기다렸다. 첫 셔틀은 만차라 그냥 보냈다. 배차 간격은 15분. 센토사는 덥다. 커피의 얼음이 다 녹고 나서 다음 셔틀이 왔다. 셔틀로 해변 한 바퀴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가만 보니 센토사 섬이 그리 안 크다.

팡 저기가 아시아대륙 최남단이래. 저기 가보자.

어 그거 노란 책에도 나오더라. 꼭 가보라고.

오 그러면 더 가보고 싶어 지지. 우린 참 청개구리는 못 될 팔자여.

ㅋㅋㅋㅋㅋㅋㅋ


얕은 바다 위로 출렁다리가 재밌었다. 남쪽으로 보이는 큰 바다에는 커다란 배가 셀 수 없이 많았다.

저게 싱가포르의 시그니쳐야. 앞바다를 가득 채운 화물선이야말로 싱가포르 산업의 번영을 보여주는 셈이지.

그러니까 저게 말하자면 잘 되는 한의원 대기실에 쌓여 있는 한약 박스 같은 거구나?

그렇지 ㅋㅋㅋㅋㅋ 아 근데 슬슬 출출하지 않냐?

딱 출출하지. 우리 지금 위장 싱크로 맞춰 놨잖아. 니가 고프면 나도 고파.

ㅋㅋㅋㅋ 밥 먹으러 가자. 아까 거기 다시 가볼까? 지금은 단체손님 없겠지.

다시 향한 굿 올드 데이즈. 이번엔 입장이 가능했는데, 어째 푸드코트가 아닌 뷔페식 식당이었다. 푸드코트는 어디 있냐 물으니 그건 2층이라고... 한 층 올라가니 과연 푸드코트가 있다.


팡아 여기 아까 우리 점심때도 열려 있던 거 아닐까?

나도 딱 그 생각했어 ㅋㅋ 지금 우리 뇌도 동기화되고 있나 봐.


치킨라이스, 윙, 락싸를 시켰다. 싸고 맛났으나 다소 느끼했다. 아아. 치킨무라도 있었더라면.

식당엔 매니저쯤으로 보이는 일본인 할아버지와, 이제 비로소 알바에 적응한 듯한 흑인 청년이 농담을 주고받으며 즐겁게 일하고 있었다. 여기 사람들은 진짜 인종과 무관하게 편견 없이 잘 지내는 느낌. 같이 다니는 무리들도 여러 인종이 섞여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면에선 진짜 선진국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마주친 사람들 모두 다 정직하고 친절했다. 인류애가 충전되는 곳, 싱가포르.


진아. 여기 기막힌 공연이 있대. 윙스 오브 타임이라고. 이거 만드는데 900억을 썼다나? 여기 오면 꼭 봐야 할 공연이래.

오 그럼 봐야지. 고고!


7시 40분 공연은 빠듯해서 8시 40분 공연을 봤다. 공연이 애매하게 좋았다. 그래픽은 고전 게임 수준이고 서사도 사실상 없다시피 하였으나, 물쇼와 불쇼가 예상을 뛰어넘어 볼만했다. 꼭 봐야 할 공연까지는 아니더라도 여기까지 와서 안 보기엔 조금 아쉬울 정도.

밤 아홉 시. 싱가포르의 밤문화는 아쉽다. 밤에는 할 게 없다. 일찌감치 숙소로 돌아왔다. 일찍 자고 내일도 일찍 일어나기로. 팡이 수영복을 통로에 걸어 말리길래, 나도 질 수 없다는 생각으로 에어컨 송풍구 앞에 수영복을 걸었다. 남자는 철 안 든다. 싱몰을 마셨다. 얘기가 길어져 일찍 못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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