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6.14.
나이 탓인지 몸에 밴 부지런함인지. 7시가 되기 전에 다들 일어났다. 잠시 수다 떨다 나왔다. 게스트하우스는 조식이 없으므로.
우리가 향한 곳은 하카타야. 290엔에 돈코츠라멘을 파는 곳이다. 입구에 다가가자 오래된 순댓국집에서 나는 돼지 꼬릿내가 진하게 풍겼다. 맛은 당연히 기대 이상. 바닥까지 다 먹었다.
심의가 커피를 먹고 싶다 하여 카페로. 포에지 커피관이 밖에서 보기에 괜찮아 들어왔더니, 실내 분위기도 고풍스러워 좋았다. 각자 음료를 마시는 동안 심의는 프렌치 브랙퍼스트도 시켰다. 우리 중 제일 잘 먹는 심의. 일본의 커피숍은 흡연에 너그러워서, 친구들은 한가로이 앉아 커피와 담배를 즐겼다. 나도 담배 피우던 옛날 생각이 났다.
졸리다는 곽의 말에 숙소로 돌아왔다. 일본에 와서 맥주를 안 마시면 손해. 편의점에서 맥주 네 캔을 샀다. 한국에선 안 파는 것들로. 어쩜 여긴 편의점 맥주도 이리 맛있을까. 게스트하우스에서 모닝맥주를 마시니 대학 시절 친구 자취방 같고 좋았다. 맥주로 나른해져 한숨 잤다.
일어나 씻고 나왔다. 이제 점심을 먹을 차례. 곽이 로컬느낌 나는 중식집을 하나 봐두었다 하여 그리로 향했다. 중화요리 샨. 한국인의 손이 닿지 않은 일본어 메뉴판도, 예스러운 인테리어도 이미 충분히 맘에 들었으나, 여러 책장에 만화책이 가득 채워져 있는 모습은 다른 집과 비교할 수 없는 여기만의 독특한 매력이었다. 옆테이블 손님이 만화책을 읽으며 밥을 먹는 걸 보고 나도 한 권 꺼내 보았다. 귀멸의 칼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 나는 나의 책무를 다할 뿐, 여기 있는 그 누구도 죽게 하지 않아!
아사히 병맥주, 교자, 마파가지, 새우볶음밥(인 줄 알았던 것), 천진반, 공깃밥(대)을 시켰다. 일본화된 중국 음식이 한국인 입맛에 착 맞았다. 공깃밥 대자는 한국인 기준에도 컸다.
길가에 오래된 사우나가 있었다. 학구탕. 학과 거북처럼 오래 살게 해주는 곳인가. 외관이 우리 취향이라 오후에 가보기로 했다. 길가에 보이는 마사지샵도 1시간에 3800엔으로 한국보다 싸서, 우리는 마사지도 받기로 했다. 다들 취향이 비슷하여 좋다.
규, 너 사우나 먼저 하고 마사지받을래, 아님 마사지 먼저 받고 사우나할래?
이야 이거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급 질문인데. 너무 난제인데.
난제지? ㅋㅋㅋㅋ 이런 고민만 하면서 살고 싶다.
다음은 캐널 시티. 후쿠오카의 유명 대형 쇼핑몰이란다. 막상 쇼핑은 하나도 안 했다. 오락실이 있길래 가봤더니 우리가 생각하던 오락기는 없고 순 인형 뽑기 뿐이었다. 지나치려던 순간 인형 뽑기 고수인 심의가 나섰다. 딸이 좋아하는 커비 인형을 뽑을 거란다. 작은 인형을 단돈 400엔 만에 뽑아내고는, 이어서 커다란 인형에 도전. 조금씩 겨우겨우 바깥쪽으로 빼내다가 틈새에 껴버려서 빠지지 않던 상황. 포기할까 하던 차에 곽이 막타를 쳤다. 지켜보던 우리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총 3000엔에 인형 2개. 개이득.
다음으론 돈키호테에 갔다. 구경할 건 많았으나 딱히 살 건 없었다. 성인용품 코너도 있었다. 열심히 구경했다.
드디어 사우나할 시간. 오픈 시간인 오후 3시에 맞추어 들어갔다. 입욕료 550엔. 수건 대여에 40엔. 신발장부터 아주 엔틱했다. 아니 사실 꽤 불편한 곳이었다. 탈의실은 주인 할머니의 시선에서 분리되어있지 않아서, 우리는 옷을 벗길 주저하다가 다른 손님들이 아무렇지 않게 벗는 것을 보고서야 벗었다. 실내 공간은 내가 가본 한국의 어떤 대중탕보다도 좁았다. 샴푸는커녕 비누조차 제공되지 않았으며, 온탕은 살이 벌게질 만큼 뜨겁고, 냉탕은 계곡물처럼 차가웠다. 모든 체험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래 이게 여행이지. 그 와중에 손님은 또 신기하게 많았다. 일본은 어쩜 이렇게 낡은 옛 것을 잘 간직하고 있는 걸까. 한국 같으면 벌써 애진작에 도태되어 사라졌을 텐데. 다시 옷 입고 나오니 그새 왠지 몸이 풀린 기분이다. 와. 이래서 학구탕인가. 우리는 우리가 겪은 불편을 기꺼이 긍정했다.
목욕을 했으면 시원한 걸 먹어야지. 마트에서 아이스크림을 샀다. 내가 좋아하는 와 의 일본 버전 상. 망고맛이 있어서 사보았는데, 첫맛은 좋았지만 금세 질렸다. 역시 바닐라가 최고다.
봐두었던 마사지샵도 가보았으나 이미 풀베드여서 받지 못했다. 잠시 숙소에서 쉬다 나왔다.
저녁 메뉴는 야끼니꾸. 출발 때부터 곽이 노래를 부르던 메뉴다. 숙소 근처에 봐둔 집이 있다 하여 갔는데, 카드결제가 안되어 돌아섰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길을 건너니 노미호다이에 카드결제가 가능하며 평점도 높은 식당이 있어서 그리로 갔다.
우리의 선택은 옳았다. 노미호다이의 나마비루는 산토리였고, 와규의 가성비는 한우와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갈비와 안창살 이후로 시킨 대창은 특히 한국보다 월등해서, 대창만 두 번을 더 시켰다. 좋은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즐거운 이야기를 나눴다. 함께하는 친구들이 너무 나이스한 사람들이어서 나는 기분이 좋았다. 언제 어디서든 스미마셍,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고개 숙이고, 합장을 하고, 엄지를 들고, 미소를 짓는 우리. 그야말로 좋은 사람들.
노미호다이에 너무 취했다. 술 사서 귀가. 옛날이야기에 많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