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29.
일곱 시 반 기상. 기상 시간이 점차 늦어진다. 시차적응인가.
거실에서 맥주 마시고 있는데 순보가 들어왔다. 달리기를 하고 왔단다. 부지런한 순보. 망도도 곧 나왔다.
야 우리 수영 함 하자.
형 물 차가울 텐데?
에이 막상 들어가면 안 추워.
그래서 잠시 수영했다. 다이빙도 하고 잠영 자유형 접영. 기분이 좋아졌다.
남은 고기에 라면을 끓였다. 역시 아침은 라면이지. 순보는 밖에서 쌀국수를 먹었고 민호는 자고 있어서 망도와 둘이서만 나누어 먹었다.
오늘 일정은 호이안 투어. 더 자겠다는 민호를 두고 나왔다. 투어 집결지인 더 라운지 커피에서 망고 스무디 한 잔씩. 한국에서 먹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맛이었다.
버스 탑승. 뒷좌석에 셋이 쪼르륵 이어 앉았다. 가이드 자기소개에 박수를 크게 쳐드렸더니 아오자이 마그넷을 선물로 주셨다.
첫 번째 목적지는 영흥사. 태풍으로 인한 침수를 막아달라고 지었다는 건지 뭔지.. 가이드 설명을 열심히 들으려 했는데 솔직히 맨 뒷자리까지는 잘 들리지가 않았다. 아 이래서 학창 시절에 일진들이 맨 뒷자리에 앉았구나.
영흥사 도착. 순보는 졸리다며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아니 이럴 거면 달리기를 뛰지 말지. 영흥사의 주인공은 67미터 해수관음상. 관음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도 사진을 찍었다. 사원 내에 원숭이가 나무를 타며 놀고 있었다. 길에는 개도 있었는데 이곳의 원숭이와 개는 견원지간이 아니고 그저 서로 소 닭 보듯 하여 평화로웠다.
다음은 위즐 커피. 베트남의 사향족제비가 커피 열매를 먹고 소화되지 않은 채 배설한 커피콩으로 만드는 커피라 한다. 루왁은 들어봤어도 위즐은 처음 들어본다. 열심히 강의를 들었다. 똥커피 1세대는 사향고양이 루왁, 2세대는 코끼리 블랙 아이보리, 3세대는 사향족제비 위즐 커피라 했다. 위즐커피는 카페인이 거의 남아있질 않아서, 디카페인에 속한다고. 한국에서 마시려면 한잔에 4만 5천 원이라고.
프랑스인들이 만들었다는 가정용 에스프레소 도구로 에스프레소를 직접 내려 마셨다. 어우. 커피 원두만 내렸는데도 마치 우유나 초콜릿을 첨가한 듯한 느낌이었다. 조금도 쓰지 않고 입체적으로 맛있었다. 이어서 제공된 코코넛 커피도 나쁘지 않았지만 위즐커피만큼의 감동은 없었다. 양이 적어서 조금 감질났다.
커피체리로 만든 스크럽도 있었다. 손을 문질러보니 각질이 어마어마하게 나왔다.
남자분들은 특히 귀 뒤쪽에 각질이 많이 생겨요. 호르몬 때문에 그래요. 남성호르몬이 그쪽에서 분비되거든요. 그래서 홀아비냄새도 거기서 나는 거예요. 남자분들 아침에 세안하실 때 이걸로 하신 다음에 귀 뒤까지 닦으시면 하루 종일 은은하게 커피 향이 나요.
라는 설명을 듣자마자 망도는 구매를 결심했다. 아니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는데 왜 여자친구가 안 생기는가! ㅠㅠ
바리스타는 설명을 잘했다. 신기한 위즐커피 체험을 하게 해 주고는, 그래서 위즐커피가 얼마나 비싼지,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얼마나 싸게 살 수 있는지 강조했다. 판매의 정석. 사람들이 줄지어 구매했다. 망도는 스크럽과 위즐리코코넛커피를 150불어치 샀다. 나는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다음은 바구니배체험. 2인 1배 탑승이 원칙이라 우리는 가위바위보를 했다. 나와 순보가 같은 배를 타고, 망도는 모르는 분과 탔다. 그동안 한국인들이 얼마나 많이 왔으면, 뱃사공들은 영차 빨리빨리, 대 한민국 짝짝 짝 짝짝, 코리아 넘버원, 코리아 파이팅, 아싸 가오리, 돼지 꿀꿀, 오리 꽥꽥, 참새 짹짹, 병아리 삐약삐약 같은 말들을 계속 외쳤다. 팁을 안 줄 수가 없었다. 배를 빙글빙글 돌려주는 체험도 있었다. 인당 10만 동. 신나고, 어지러웠다.
다음은 호이안. 다낭 근교에 있는 고대 항구 도시로, 고대 항구 도시의 독특한 건축 양식에 수많은 등불로 야경이 아름다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이라 한다. 오래된 도시이다 보니 도심까지 버스가 들어갈 수 없어, 외곽에 내려서 걸어가야 했다.
야시장 중심에서 민호 합류. 동시에 피곤하다는 이유로 망도는 먼저 숙소로 돌아갔다. 선수 교체 완료. 호이안은 예뻤다. 강 옆으로 등이 늘어선 모습이 예뻤다. 어두워질수록 더 예뻐졌다. 사람이 몹시 많았다. 서양인도 많고 동양인(한국인)도 많았다. 다낭에서는 보지 못한 인구밀도.
아침 라면 이후로 밥을 못 먹었다. 호이안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모닝글로리로 갔다. 가이드님이 추천해주시기도 했으나, 리뷰 중에 워낙 믿음직스러운 리뷰가 있었다. 직원의 불친절을 지적하며 별점 2점을 주면서도 동시에 음식의 맛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칭찬하는, 그래서 더욱 기대가 되게 만드는 리뷰.
건물이 지어진 지 백 년은 족히 되어 보였다. 1층 입구 쪽에는 주방이 완전히 오픈되어, 위생에 대한 자신감이 드러났다. 우리는 2층을 안내받았다. 올라가는 계단조차 고풍스러웠다. 이것저것 많이도 시켰다. 닭 생강 딤섬, 반쎄오, 반미, 치킨라이스, 오징어 돼지 구이, 공심초, 춘권, 월남쌈, 새우 커리, 그리고 랄루 맥주. 리뷰는 옳았다. 직원은 적당히 퉁명했고, 음식은 맛없는 게 하나도 없었다.
소원배 탈 차례. 식당 앞에 잠시 서 있는데 한 앳된 청년이 와서 말을 건다.
형님. 형님. 쏘원배. 쏘원배.
오케이. 하우 머치. 얼마.
싸십만. 우리 배 좋아. 이뻐. 이십 분. 싸십만.
그는 자신의 배를 보여줬다. 등이 많아서, 등 두 개짜리 배보다는 확실히 예뻐 보였다.
오케이. 우리 세 명. 세 명 사십?
아니 아니. 한 명 싸십. 쎄 명 백이십.
아 비싸 비싸. 위 해브 노 머니. 우리 거지.
우리가 별 관심 없는 듯 등을 돌리자 그 청년은 계속 라스트 라스트 하며 값을 깎아주었다. 결국 셋이 합쳐 45만 동에 협상 타결.
배를 타고 나가 각자 소원을 빌었다. 셋 다 소원이 같았다. 결혼하게 해 주세요.
시간이 남아 호이안 거리를 걸었다. 중국 일본 프랑스 건물이 다 있었다. 가죽 가방이 가격대비 좋았다. 순보가 하나 샀다. 날갯짓하는 종이비행기도 있었다. 순보가 두 개 샀다. 순보는 잘 산다.
집결지에 모였다. 모여보니 배였다. 배를 타고 돌아가나? 아니었다. 이것도 소원배였다. 그런 줄도 모르고 굳이 소원배를 따로 탔지만 뭐, 소원 두 번 빌면 더 좋지 뭐. 나는 돈 잘 벌고 건강하게 재밌게 살게 해달라고 빌었다.
배에서 내려 다시 버스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도 가이드님은 마이크를 놓지 않았다. 별로 듣는 사람도 없어 보이는데 계속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쉬지 않고 늘어놓으셨다. 가이드 일을 하려면 말하는 걸 많이 아주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라야 가능하겠구나.
다낭 도착. 다시 슈퍼마켓레스토랑으로. 거점이 있으니 좋다. 냉장고에서 자연스럽게 소주 맥주를 꺼냈다. 안주는 족발, 마른오징어. 배가 불렀는데도 계속 손이 갔다. 훈이 형도 자리에 앉았다. 너무나 재미있지만, 여행기에 적을 수는 없는 베트남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다. 하루 먼저 귀국하는 민호를 공항으로 데려다줄 차가 왔다. 나와 순보도 피곤해졌다.
순보야. 우리 오늘 마사지 아직 못 받았는데?
아 근데 저는 마사지받으면 잘 것 같아요. 그러면 숙소에서 잠 잘 못 들까 봐.
오케이. 바로 숙소로 가자.
택시 안에서부터 잤다. 슬슬 여독이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