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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Feb 28. 2019

하노이 여행기 4일 차

2017.6.4.

이제 더 이상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다. 해야 할 게 하나도 없으니까. 그저 그때그때 내키는 대로 하면 된다. 그런데도 일곱 시에 눈이 떠졌다. 많이 놀고 싶었나 보다.


마침 곽도 비슷하게 깼다. 우리는 럭셔리한 호텔에 투숙하며 피지컬 액티비티를 즐기는 여유로운 30대 남성 직장인답게 눈 뜨자마자 호텔 수영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스위밍 풀에서 투에니 미닛 정도 스위밍 하고 나니 비로소 기분이 리프레쉬되는 것이 이제 하루의 여정을 스타트해도 될 듯싶었다. 다시 숙소로 들어가 씻고 나왔다.

먼저 우버를 타고 해물 쌀국수집에 갔다. 구글 검색하다 보게 된 집이다. 게와 새우, 돼지고기가 들어간 쌀국수라 했는데, 막상 나온 쌀국수에는 게가 없었다. 이런 식의 기만에 너무 익숙한 우리는 "실제론 게 대신 새우만 넣고 끓이나 봐." 라며 받아들였다. 국물을 떠먹기 전까지는.

세상에. 국물을 한 스푼 떠먹어보니, 게가 그 안에 구석구석 녹아들어 있었다. 조각난 게살이 국물 전체에 흩어져 있었다. 국물이 게고 게가 국물이었다. 이런 국물은 생전 처음 본다. 한국 오면 대박 날 텐데. 최선을 다해 흡수했다.


다시 우버를 타고 여행자 거리로 갔다. 백종원 커피집 - 다시 얘기하지만 곽은 백종원을 참 좋아한다. 근데 사실 나도 백종원이 좋다. 백종원의 미각은 묘하게 개룡남 아재의 입맛과 맞닿아있어서, 미슐랭 3 스타와 백종원이 극찬한 집 중에 고르라면 후자를 고를 것 같다. - 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백종원이 운영하는 커피집은 아니고 백종원이 갔던 커피집이다. 맥스웰 모카 골드 세 개쯤 한 잔에 타버린 것처럼, 달고 쓴 맛이 강렬하게 농축되어 있는 커피였다. 단 커피 안 마신 지 오래됐는데도 맛이 좋았다. 허나 자주 마시면 당뇨에 걸릴 것 같은 그런 맛이었다.

커피를 마시고 근처에서 환전을 했다. 아무 데나 들어가서인지 환율이 공항보다 나쁘다. 그래 봐야 뭐 별 차이 안 나서 그냥 했다. 베트남 여행 중엔 마음이 차암 너그러워진다. 환전 후에는 근처의 맥주집에 갔다. 아침 열 시가 채 안되었는데 벌써 문을 열어 차가운 맥주를 마실 수 있게 해 주다니. 고마운 곳이다.

맥주 마시고는 눈 앞에 보이는 마사지숍을 갔다. 발마사지를 받으며 곽은 스마트폰으로 만화를 보고, 나는 스마트폰으로 여행기를 썼다. 고백건대 여태 나는 발마사지가 전신 마사지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이라 생각했었다. 같은 돈 주면 당연히 전신 마사지를 받아야 하는. 그런데 오늘, 양손으로 자유롭게 딴짓을 하며 발마사지를 받아보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발마사지는 나의 스마트폰 사용을 전혀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부가적인 시원함을 제공할 수 있어서, 오로지 마사지받는 것 외엔 다른 것을 할 수 없는 전신 마사지와는 또 다른 효용가치가 있다는 걸. 애초에 30분 받기로 한 발마사지를 연장하여 한 시간씩 받았다.


발마사지를 다 받고는 롯데타워에 갔다. 지하 1층에 롯데마트가 있었는데, 한국 상품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한국 노래가 흘러나와 마치 한국에 있는 것 같았다. 치약, 커피, 베트남 라면과 맥주를 샀다. 마트 쇼핑 후 백화점에도 올라갔지만 한국에서 파는 물건을 한국에서보다 비싸게 팔아 딱히 살 게 없었다.

숙소로 돌아와서 새로이 짐을 정리하고, 이번엔 주변 맥주집으로 향했다. 뮌헨 뭐시기 하는 집을 가려했는데 공사 중이어서 치어링이란 집을 갔다. 맥주도 안주도 싼데 맛있고 시원하기까지 했다. 위와 간을 듬뿍 채웠다.

마시고 잠시 숙소에 들어와 누웠을 뿐인데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잠에 들었다. 알코올과 에어컨, 그리고 푹신한 침대의 콜라보. 두어 시간 자다 깼더니 벌써 저녁이다. 세상에. 너무 짧다. 고작 5박 6일이라니. 그 찰나의 순간에 낮잠이라니.


못 먹어본 분짜라도 먹어보자고 부랴부랴 나섰다. 분짜닥낌. 더운 날에 더운 음식 하는 집 갔더니 우버에서 내리자마자 땀이 났다. 다행히 그 이상의 맛이 있었다. 문득 생각해보니 분짜와 육쌈냉면이 상당히 유사하다. 숯불에 구운 돼지고기와 면, 그리고 야채가 함께라는 점에서. 단지 물의 온도와 위치만 다를 뿐. 물론 맛은 꽤 다르다.

분짜를 먹고 다시 숙소로 왔다. 그저 나가서 저녁 먹었을 뿐인데 다시 씻어야 했다. 씻고 나와 이번엔 숙소 근처의 재즈클럽으로 갔다. 맥주값은 조금 비쌌지만 (75,000동-한화 3750원) 재즈를 라이브로 들을 수 있는 곳이었다. 문득 스윙댄스 생각이 났는데, 마침 하노이 거주 중인 한국인 스윙댄스 동호회(이런 게 있을 줄이야) 사람들이 와 있어서, 테이블 사이 공간을 만들고 춤을 췄다. 잘 추는 사람만 한 번씩 나서서 추는 분위기라 자신 있게 나설 수 없었다. 재즈를 듣고 스윙을 보며 술을 마시니 금방 취했다.

어느덧 열한 시 반. 재즈클럽 마감이라 숙소로 돌아왔다. 젠장. 냉장고에 넣어둔 맥주가 아직도 덜 시원하다. 무심코 티비를 켜니 한국 채널이 나왔는데, 내일 낮 최고기온이 29도로 이른 7월 더위가 우려된다는 내용이었다. 장난하나. 여긴 밤 최저기온이 31도인데.


미지근한 맥주를 마신다. 잠이 온다.(201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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