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피엔드 Mar 01. 2019

하노이 여행기 6일 차

2017.6.6.

하노이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어제 맥주를 많이 마신 탓인지 잠을 좀 설쳤다. 곽이 먼저 일어나 수영 가자며 깨웠다. 일곱 시도 채 되지 않았다. 간단히 몸에 물 좀 묻히고 객실로 돌아와 씻었다. 이제 아침 먹고 공항으로 가야 한다.

마지막 끼니다. 곽은 별 고민 없이 소고기 쌀국수를 제안했고, 나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마침 호텔 근처에 고급스러운 쌀국수집이 있어 궁금하기도 했다. 고기가 듬뿍 들어간 쌀국수를 아주 흡족하게 먹고 나서 문득 깨달았다. 여태 먹은 소고기 쌀국수가 어디서 먹든 모두 똑같이 맛있었음을. 맛있는 정도만 똑같은 게 아니라, 맛이 아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았음을. 쌀국수에 조미료가 많이 들어간다는 말을 듣긴 했는데, 아예 소고기 쌀국수 국물 내는 스프가 따로 있어서 어느 집이든 같은 스프로 맛을 내어 똑같은 게 아닐까?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베트남 쌀국수에 대한 환상이 좀 깨졌다.

숙소로 오다 노천의 커피숍에서 베트남 커피를 마셨다. 해바라기씨를 팔길래 오랜만에 까서 먹었다. 어금니 사이에 물고 적당히 턱에 힘을 주면 까드득 소리가 나면서 열렸는데, 열리는 순간의 소리와 치감이 마치 디아블로2에서 훨윈드 돌 때처럼 경쾌했다. 그 재미를 만끽하며 곽과 시답잖은 농담을 나눴다. 6일을 함께 있으면서 조금도 서운할 일이 없었던 우리. 우정은 함께 일할 때가 아니라, 함께 놀 때 돈독해짐을 깨달았다. 야. 우리 다시는 같이 일 같은 거 하지 말자. 대신 같이 놀기만 하자. 여러 번 다짐하며 해바라기씨를 깠다.

짐을 싸 체크아웃하고 택시를 탔다. 기사는 운전 중에 티비를 보면서 통화를 하고 동시에 끼어들기를 하는 운전의 달인이었다. 덕분에 공항에 금방 도착한 것 같아 팁을 후하게 줬다. 공항에서 곽은 자신이 모닝캄 회원이라 수속이 빠르다는 걸 다시 강조했다. 모닝캄 회원과 함께 여행하니 행복하다. 주머니에 베트남 돈 12만 동이 남아, 보안검색대 지나서 6만 동짜리 음료 두 잔 사 마실까 했는데, 정작 보안검색대를 지나고 나니 이미 우리가 있던 베트남이 아니어서 물가도 비싸고 그나마도 달러만 사용 가능했다. 12만 동을 5달러로 바꾼 뒤 곽의 4달러를 보태 베트남 화이트 커피(4.5달러) 두 잔을 주문해 마셨다. 생각해보니 한국 스타벅스보다 비싸다.

비행기에 탑승. 오늘도 승무원들이 참 예쁘다. 이 사람들은 어떤 연애를 하고 어떤 결혼을 할까. 결혼을 한다면 나가서 일하고 싶어 할까 아님 집안일을 하고 싶어 할까. 나는 내가 잘 모르는 직군의 삶을 상상해 보다가 뻔한 답을 떠올렸다. 케바케겠지. 애초에 쓸데 없는 의문이었다.


자리에 앉아 <소년이 온다>를 펼쳤다. 다행히 펑펑 울만한 대목 이전에 밥이 나왔다. 비빔밥. 나는 기내식중에 대한항공 비빔밥이 제일 좋다. 김치 대신 나온 양파절임까지 모두 함께 비벼 싹 긁어먹고, 하이트 맥주 마시면서 책을 보았다. 화자가 바뀌고 인칭이 달라지며 대화를 따옴표로 가두지 않아 쉬이 읽히지 않는 소설을, 비빔밥 꼭꼭 씹어 삼키듯 차근차근 읽었다. 뒷부분에서 좀 많이 울었으나 비행기는 어두웠고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았다. 대체 얼마나 강렬한 내면의 목소리가 작가를 충동질하였기에 이런 소설이 나왔을까. 어쩌면 작가란 직업은 무당과도 같아서, 그런 소리가 절로 들리는 사람만 제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닐까. 이 소설로 그 아이의 영혼은 비로소 평안해졌을까.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비행기가 인천에 도착했다. 광주 출신인 곽에게 <소년이 온다>를 권해줄까 하다 말았다.

인천공항은 빠르다. 금방 입국심사하고 짐 찾아 나왔다. 곽과 헤어지고 버스를 탔다. 날 일상으로 데려다 줄 버스. 그 안에서 여행기를 마무리한다. 즐거운 여행이었다.(2017.6.6.)

작가의 이전글 하노이 여행기 5일 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