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피엔드 Feb 12. 2018

운동화와 튀김소보로

받은만큼 보답해드리지 못한 이야기.

어려서부터 남들 눈 신경 쓸 줄 몰랐던 나에게도 운동화 브랜드에 얽매이던 시기가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어울리던 친구들이 나이키, 아디다스 따위를 자랑하며 신고 다니던 때다. 반면 내 운동화는 만 원짜리 왕자고무상회를 벗어나지 못했다. 언젠가 아버지한테 메이커 운동화 사달라고 조르다 뒤지게 혼난 뒤로는 다시 조르지도 못했다. 


그즈음 성당에서 복사를 서기 시작했었다. 복사 서는 게 재미있었는지 어른들한테 칭찬받는 게 좋았는지 한동안 성당에서 살다시피 했다. 새벽 미사, 저녁 미사, 어린이 미사, 주일미사에 다 나가서 복사를 섰다. 반년쯤 그랬더니 신부님께 상을 받았다. 삼만 원. 새 운동화 사라고 받은 상이었다. 애초에 이 상을 받으려고 복사를 열심히 섰었나. 


보은엔 나이키도 아디다스도 없고 르까프가 고작이었다. 그래도 왕자고무상회에 비하면 감지덕지. 혼자 운동화 사러 갈 용기가 없어서 어머니를 졸라 같이 갔다. 어머니는 나더러 맘에 드는 운동화를 직접 골라보라 하시곤 잠자코 지켜보고 계셨다. 한 바퀴 돌아보니 맘에 드는 운동화가 있긴 있었으나, 삼만 원을 훌쩍 뛰어넘는 가격이 문제였다. 그걸로 사달란 말은 차마 못 하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또 한 바퀴를 돌고 다시 그 운동화 앞에서 한참을 바라보기를 나도 모르게 반복하고 있었더니, 어느샌가 곁에 다가온 어머니께서 그 운동화를 집으셨다. 그날 밤 내가 울었었나? 기억나지 않는다. 그 운동화를 닳고 닳도록 신었다. 발이 커져 더는 못 신을 때까지.


엊그제의 일이다. 어머니께 대전에서 어디 가보고 싶으신 데 없으시냐고 여쭈니 성심당을 이야기하신다. 티브이에 나오는 것 보면서 한 번 가보고 싶으셨다고. 모시고 가기엔 롯데점이 더 편하지만 일부러 은행동 본점으로 향했다. 이안과병원 주차장에 차를 대고 휠체어를 끌어 성심당 앞으로 갔더니 언제나처럼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기왕 오신 거 직접 빵 보고 고르시라고, 불편하신 몸 일으켜 세우고 부축하여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빵을 좋아하시는지 몰라 진열된 빵 하나하나를 보며 


“어무이, 이거 맛있어 보이지 않어유? 이거 사까?” 

“소세지빵 어뗘. 소세지 안 좋아하시나?” 

“고로케 드실랴? 고로케. 야채두 있구 뭐 별 거 다 있네.” 

“도나츠는 어때유? 맛있어 보이는데.”


해도 그저 긴장한 표정으로 이 빵 저 빵 바라만 보실 뿐, 도통 고개를 끄덕이지 않으신다. 한 바퀴를 다 돌도록 단 한 개의 빵도 집지 못했다. 특별히 당기는 게 없으신 것 같아 그냥 튀김소보로 세트를 사드렸다. 입원해 계신 병실 환자와 간호사들 나눠줄 것 까지 넉넉히.


튀소를 뒷좌석에 싣고 돌아오는 길. 드시고 싶은 빵이 그렇게 없으시냐고, 왜 하나도 못 고르시냐고 여쭈니 돌아오는 대답이 가슴 아프다. 다 맛있어 보여서. 다 먹어보고 싶어서 차마 하나를 고를 수가 없었다고. 아니 그러면 말씀을 하시지. 그깟 빵 얼마나 한다고. 거기 있는 빵 하나씩 전부 다 사도 되는데. 그걸 말씀을 안 하시냐고. 조금 역정을 냈다. 어렸을 때 운동화 집어주시던 생각이 나서. 조금 화가 났다. 그깟 빵. 얼마나 한다고.(2017.5.8.어버이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