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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Dec 04. 2018

아버지와 먹던 감자탕.

부자가 함께 갔던 모녀식당 


지난주. 좋아하는 선배가 마흔한 살에 낳은 막내아들을 데리고 내원하였다. 이제 막 여섯 살이 된 이 아이의 내원 사유는 비염이었는데, 면봉을 넣기에도 좁던 콧구멍으로 콧물이 줄줄 흘러나올 때까지 군말 없이 면봉을 꽂고 있었던 모습은 물론이요, 석션을 하느라 카테터로 비점막에 이리저리 자극을 주어도 눈을 찌푸린 채 애써 참아내려 하는 모습은 너무나도 대견스러운 것이었다. (보통 초등학교 고학년은 되어야 잘 참아가며 받는 치료들이다.)


돌이켜보면 나도 그랬다. 막내는 어리광 부릴 여유가 없다. 부모님이 금방 늙으셔서.


내 아버님 역시 나를 마흔한 살에 낳으셨다. 나를 낳기 전부터 이미 시골에서 옷장사를 해오신 아버님은 당시만 해도 물류시스템이 지금 같지 않았던 까닭인지 때마다 서울 평화시장에서 직접 물건을 해오시곤 했다. 여기에 내가 따라다닌 기억이 있다. 너무 어릴 땐 종일 걷질 못했을 테고, 초등학교 입학 후에는 학교에 가야 했을 테니 아마 예닐곱 살 즈음일 거다. 새벽에 눈 비비고 일어나 상경 버스를 타던 기억, 거래처 아저씨들에게 귀염 받던 기억, 해진 뒤 돌아오는 버스에서 새로 사 주신 책을 읽던 기억과 함께 남아있는 기억이 있다. 늘 점심으로 먹었던 모녀식당 감자탕.


모녀식당은 평화시장 3층 구석에 있던 식당이다. 전태일 열사가 단골로 가던 집이라 하니 아주 오래된 집이다. 이 집 감자탕이 어린 입에도 참 좋았다. 아니, 설마 예닐곱 살 아이가 정말로 감자탕을 좋아했겠나? 아버지 눈치를 보았던 게지. 모녀식당 사장님은 가게 이름답게 여자분이셨는데, 그렇게 날 예뻐하셨다. 감자탕 잘 먹는다고. 마치 내가 선배 막내아들 치료하며 대견해하듯이.


최근 작고하신 김종길 시인의 대표 시 성탄제의 후반부는 이러하다. ‘어느새 나도/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옛 것이란 거의 찾아볼 수 없는/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선배의 막내에게서 어린 시절의 내가, 날 데리고 다니시던 아버님이, 부자가 함께 먹던 감자탕이, 그리고 이 시가 차례대로 떠올랐다. 시인만큼의 필력이 없는 나는, 이렇게 장황히라도 아버님을 그리워할 따름이다.(20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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