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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Dec 04. 2018

모녀식당 갑니다.

추억의 장소에 다시 가보다.

이전 포스팅(https://brunch.co.kr/@funisthebest/3)에서 이어집니다.


이쯤에서 모녀식당을 검색해보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사니까. ‘평화시장 모녀식당’이란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니 몇 개의 포스팅이 나온다. 그런데 가장 최신 포스팅이 2015년 1월. 불안하지만, 일단 전화를 걸어본다. 오, 걸린다. “여보세요.”


“네, 거기 모녀식당이죠?”
“네, 맞는데요.”


다시 확인해본다.


“거기가 그 감자탕 하는 모녀식당, 맞죠?”
“네, 맞습니다.”


이쯤 되면 더 물을 필요 없다. 무조건 가야 한다. 


돌아온 휴일에 당장 시간을 냈다. 회기에서 동대문은 멀지도 않다. 역에서 내려 평화시장으로 향하는데, 마치 소개팅이라도 나가는 것처럼 설렌다. 괜스레 민중가요도 흥얼거리게 된다.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가를~ 워우워~"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옛 모녀식당 사진. 맞다. 저렇게 좁은 골목 안에 들어가서 먹었었다. 아버지 얼굴이 보이는 듯 하다.

이윽고 평화시장 내부를 거닐으니 어릴 적 생각이 난다. 그래. 이런 곳을 아버지와 함께 헤집고 다녔었지. 포스팅에서 본 대로 3층을 쭉~ 훑었지만 모녀식당이 보이지 않는다. 어? 여기가 아닌가? 마침 미화원 아주머니가 계신다.


“어머님 안녕하세요~ 말씀 좀 여쭙겠는데요, 여기 모녀식당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해요?”
“모녀식당? 거기 문 닫은 지 몇 달은 됐는데. 저 끝에 있던 덴데, 거기 나가고 사무실 들어왔어~”


수십 년 만에 왔는데, 고작 몇 달 전에 문을 닫았다고? 그럴 리가......너무 비극적이잖아.


가 아니다. 엊그제 전화해서 영업 사실을 확인했었잖아. 그래. 다시 전화해보자. 오, 역시 신호가 간다.


“여보세요”
“아, 네. 엊그제 전화드렸던 사람인데요. 제가 지금 거기 가려고 평화시장 왔는데 못 찾겠어서요. 어떻게 가야 돼요?”
“아, 그러세요? 혹시 닭 한 마리 골목 아세요?”
“전혀 모릅니다.”
“음.....(이 동네 사람도 아닌데 왜 우리 집을 찾을까 하는 눈치)”
“그냥 주소를 알려주세요~”
“종로 오가 사백육십이 다시 일 번지요. 아 근데, 어쩌죠? 감자탕이 지금 다 나가고 한 그릇밖에 안 남았는데.”
“아, 그래요? 그럼 그걸 저한테 주세요. 최대한 빨리 갈게요.”


혹시라도 마지막 한 그릇을 다른 사람에게 파실까 봐, 뛰다시피 하여 찾아갔다. 도착해보니 어릴 때 가본 곳이 아니다. 심지어 상호도 모녀식당이 아닌 '은아네'다. 하지만 감자탕은 그 맛 그대로라 하니 한 번 주문해 본다. 이제 나도 어른이니 소주 한 병 추가해서.

은아네. 모녀식당 손맛을 이어받았다고 간판에 적혀 있다.

음식이 나오기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내가 너스레를 떨기도 전에, 나보다 끽해야 몇 살 안 많아 보이는 젊은 여사장님이 물어보신다. 어디서 어떻게 오셨냐고.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원래 모녀식당 사장님과는 어떤 관계이신지(혹시나 따님이실까 해서) 되물으니 말씀을 피하시는 눈치다. 권리금 주고 인수하신 걸까. 그 따님이 이어받았다면 아마도 더 반가웠을 텐데. 아쉽다.


아니지. 식당을 혈육한테 넘겼든 돈 받고 넘겼든 무슨 상관이 있나. 맛만 잘 보존하면 되지.


감자탕이 나왔다. 척 봐도 푸짐한 양이다. 보통 여럿이 큰 냄비에 끓여먹는 것을 감자탕이라 하고, 1인분씩 뚝배기로 담아내는 것은 뼈해장국이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는 1인분도 감자탕이라 이름 붙였다. 뼈는 일반적인 뼈해장국보다 많은 세 덩이가 들어가 있고, 우거지는 들어가 있지 않다. 큼직한 건더기는 뼈와 감자가 다다.


오래된 추억일수록 보정이 많이 들어가게 마련. 오랜만에 새로이 무언가를 평가한다면 추억만 하기가 무척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감자탕을 시켜놓고 맛을 안 볼 수야 있나. 약간은 불안한 맘으로 첫 국물을 들이켜는 순간, 예전 그대로라는 걸 알았다. 맛에 대한 기억이 이렇게 오래 간단 걸 처음 알았다. 이 집 감자탕 맛은 전혀 조금도 맵지 않고 다만 깊었다.


"아버지, 여기 여전히 맛있네유." 이 집을 아버님과 함께 갈 수 없는 것이 서럽다. "아들, 여기가 할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집이여." 아들이 있으면 데리고 가서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줄 텐데, 그러지 못해 더욱 서럽다. 대신 이렇게 온라인으로 알릴 뿐이다.(20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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