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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Dec 23. 2018

현이의 결혼전야

착한 친구가 장가 잘 가서 흐뭇한 이야기.

"야. 내가 겪어보니까, 니들 진짜 현이한테 잘해야 댜."


보은의 기약 없는 노총각 셋이 모였다. 둘은 원래 보은에 살고, 하나는 서울에서 막 내려왔다. 내일 현이 결혼식이 있는 까닭이다.


"알잖어. 우리 부모님들이 보은 뜨실 것도 아니고, 결국 나중에 아프면 H병원 계시다 돌아가실 거 아녀. 그 말은 곧 현이 신세 지다 돌아가신다는 겨. 울 아부지 때도 진짜 신세 많이 졌어."


처음 현이를 알게 된 것이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아마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던 것 같다. 우린 같은 성당에 다녔고 비슷한 시기에 복사단 활동을 시작했다. 현이는 참 착한 아이였다. 성당도 나보다 더 열심히 다녔다.


현이가 공부를 잘하진 못했다. 그렇다고 잘 노는 것도 아니고... 현이는 그저 착했다. 사춘기를 함께했던 친구들 중에는 유일하게 이 친구만 실업계로 진학했다. 같은 인문계라 해도 공주, 청주, 보은으로 찢어지는 판이었다. 더군다나 실업계로 간 현이와는 가끔 볼 기회조차 없었다. 


그러다 다시 친해진 것이 20대 초반. 친구들 다 군대 가있는 동안, 입대가 늦었던 현이와 나는 보은에 함께 있었다. 피시방 요금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가난하던 시절이니 뭐 대단하게 놀지도 않았다. 주로 서로의 집에서 따분한 세월을 함께 보냈다. 티브이 보고. 배고프면 라면이나 끓여먹고. 


복학생 시절. 방학이면 불알친구 녀석들은 몇 주씩이고 내 자취방에서 살다 가곤 했다. 15평 아파트에 많게는 예닐곱 명이 같이 묵었다. 이 때도 현이 신세를 졌다. 현이는 닭도리탕, 제육볶음부터 각종 국과 찌개까지 못 하는 게 없었다. 끽해야 계란후라이나 할 줄 알던 사내놈들에겐 실로 경이로운 요리 솜씨였다. 매 끼니 친구들을 챙겨 먹이면서도 별다른 생색 한 번 내지 않았다. 늘 그런 친구였다.


뒤늦게 다시 공부하여 간호사가 된 현이는 졸업 후 지금까지 쭉 H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H병원은 보은에서 가장 큰 병원이다. 난 이미 아버님 때 현이 덕을 톡톡히 봤다. 아버님은 아들 친구가 병원에 있다는 것을 일종의 빽으로 여기셨었고, 고맙게도 현이는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나는 오로지 내가 부탁할 일이 있을 때에만 먼저 연락을 했으나, 현이는 언제나 군말 없이 들어주었다. 정말 고마운 친구다.


와이프 될 사람이 띠동갑이라 들었다. 오래된 친구답게 퉁명스레 축하해줘야지.


"야. 너 원래 이렇게 능력이 좋았어? 아오 부러워 죽겄네. 아무튼 축하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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