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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Mar 01. 2019

어떤 하루.

소중한 사람과 함께한다는 것.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노인은 하루가 다르게 늙는다. 그러니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그 소중한 시간들을 최대한 같이 하는 것이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해야 할 도리일진대.


한 달 만에 어머니 뵈러 대전에 갔다. 입원해 계신 병원에 도착하니 점심을 드신 직후. 나도 밥을 먹어야 했기에 근처에 있는 누나 집으로 갔다. 매형은 없고 누나 홀로 애 둘과 씨름하고 있었다. 다 데리고 나와서 고기국수를 먹였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날이 너무 좋았다. 오늘이 아니면 앞으로 몇 달은 밖으로 모시고 나오기가 힘들 것 같았다. 다 같이 병실로 돌아가 어머니께 바깥바람 쐬는 거 어떻냐고 여쭈었다. 언제나처럼 특별히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으셨다. 누나는 집 청소를 좀 해야겠다길래 지원이(2)와 함께 다시 집에 데려다주고, 어머니와 우성이(8)를 데리고 세종 호수공원으로 향했다.


대전 반석동에서 세종 호수공원까지는 길이 좋아 금방이다. 세종시의 호수는 둥글지 않고 길쭉한 것이 오히려 강에 가까운 모양이어서, 나는 작년에 갔었던 두물머리가 떠올랐다. 두물머리에 못지않은 경치에 두물머리보다 잘 가꾸어졌는데도, 사람은 적당하여 여유롭고 쾌적하였다. 물은 또 얼마나 맑은지. 게다가 주차장도 무료. 요즘 지어진 공원이라 휠체어 끌고 다니기에도 별다른 불편함이 없었다. 확실히, 살기엔 지방 대도시가 서울보다 낫다.

바람이 잘 불어 연을 날리는 사람이 곳곳에 있었다. 어떤 연은 모양을 확신할 수 없을 만큼 높이 날았다. 연이 보일 때마다 우성이가 관심을 보였는데, 마침 매점에서도 연을 팔고 있었다. 우성아. 너 연 날려 봤어?/ 아니요./ 한 번 날려 볼래?/ 네!/ 칠천 원짜리 연을 사서 간단히 알려주고 직접 날려보게 해 주었다. 바람이 좋아 연이 훨훨 날았다. 우성이가 무척 좋아했다.

연날리기를 도와주는 동안 어머니는 추위에 떨고 계셨다. 나는 젊어서 또 많이 움직여서, 늙고 휠체어에 앉아계신 어머니가 얼마나 추우실지 몰랐다. 추위를 견디다 못한 어머니가 몹시 보채셔서 서둘러 차로 돌아갔다. 휠체어를 끌고 날 듯이 달렸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어머니께 학습시켜드렸던 내용들을 복습했다. 조카사위 이름은? 최근영. 세례명은? 사도 요한. 동대문은? 흥인지문. 남대문은? 숭례문. 입장 바꿔 생각해 보는 것? 역지사지. 준비가 되어 있으면 걱정이 없다? 유비무환. 치매 예방의 일환이다. 우성이도 끼고 싶어 하기에 곱셈을 물어봐 주었다. 7 곱하기 5는 조금 생각해서 맞추더니 9 곱하기 8은 생각을 꽤 하고도 맞추지 못했다. 엄마 아빠가 모두 박사인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도록 구구단을 외우지 않았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4 곱하기 6을 물어 답을 들은 뒤, 4 곱하기 11까지 순차적으로로 물었다. 빠른 속도로 맞추었다. 구구단은 외우지 않았어도 곱셈이 덧셈의 반복임은 알고 있었다. 기특했다.


저녁은 집에서 먹기로 했다. 요즘엔 배달되지 않는 게 없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감자탕을 주문해 놓고, 누나는 지원이를 먹이고 나는 우성이에게 인디언 포커를 알려주었다. 지원이가 밥을 다 먹은 다음에는 누나는 우성이를 먹이고 나는 지원이와 놀아주었다. 몇 달 전만 해도 낯가림이 심해 가까이 가지도 못했는데 그 사이 달라진 모습이다. 아직 ‘엄마’ 말고는 아무 말도 못 하는 지원이와 마음으로 이야기하다가, 같이 셀카를 찍었다. 지원이는 내가 가족임을 알까. 다음에도 나를 알아볼까.

감자탕 맛이 좋았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감자탕을 그렇게 좋아하셨음을, 오죽 좋아하셨으면 노년에 매일같이 감자탕만 직접 끓여 드셨음을, 그게 솔직히 맛이 있진 않았음을 이야기하며 함께 웃었다. 문득 아버지가 그리워졌다.


작별할 시간이다. 누나 집에서 나오는데 우성이가 따라 나와 인사를 했다. 인사를 여러 번 주고받고 어머니를 병원에 모셔다 드린 다음 서울로 돌아왔다. 고되지만 행복했던 오늘 하루를 조카들도 기억해 주길. 세세한 사건까진 아니더라도. 좋았던 기분 만이라도.(2017.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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