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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Mar 01. 2019

혹시, 인스타그램 하세요?

제가 바로 따라스타그래멉니다.

하루 한 장. 노화를 기록한다는 구실로 인스타그램에 매일같이 셀카를 찍어 올린지 어느덧 오개월이 지났다. 처음엔 단순한 셀카로 시작했는데 한동안 이모티콘도 만들어 보다가 요즘엔 유명인을 따라하는 사진으로 컨셉을 잡아가는 중이다. 이른바 노화스타그램, 따라스타그램. 생각보다 사람들이 재미있게 봐주어서 할 맛이 난다. 모르는 분이 어떻게 내 인스타를 보고는, 덕분에 우울증이 치료되었다며 감사 메시지를 보내준 적도 있다.


오늘은 <황해>에서 하정우가 김 싸먹는 장면을 따라하기로 마음먹었다. 구글에서 '하정우 짤' 로 검색하면 처음으로 나오는 사진이다. 깔깔이를 입고, 머리를 올리고, 귤을 김으로 싸서 입에 넣고는 표정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데, 최선생님이 갑자기 문을 두 번 두드리고는 불쑥 원장실로 들어왔다.


"원장님. OOO님이 진료비 영수증 끊어달라십니다. 아니 그런데 왜 귤을 김으로 싸서 드시고 계세요?"


아아. 우리 한의원은 원장실 문턱이 낮아도 너무 낮다. "들어오세요." 라는 말을 하기 전에는 절대 들어오시지 말라고 평소에 강조해 두었어야 하는데. 아주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


"아. 제가 뭐 사진 찍는 게 좀 있어서요. 영수증 끊어 드리겠습니다."


최선생님이 다시 나간 사이 영수증을 끊고 셀카를 마무리했다. 몇 분의 환자를 더 치료했을까. 한 환자분 허리에 침을 다 놓아갈 무렵. 최선생님이 웃음기를 참으며 조심스레 묻는다.


"그런데 원장님. 오늘은 무슨 코스프레예요? 전에 가발도 사셨던데."
"아...ㅋㅋㅋㅋㅋ 제가 있다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래. 아무래도 정체를 밝힐 때가 되었나보다. 클라크 켄트가 슈퍼맨이라고.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이라고. 이원장이 노화스타그래머라고. (20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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