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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Mar 01. 2019

여행작가 재철이형

재철이형과 친해진 이야기

형과 친하다고 하긴 어렵다. 작년 3월에 형을 처음 알게 되었고, 아주 여럿 모인 자리에서 몇 차례 스치듯 만났다. 둘이서 길게 이야기 나누었던 적은 없다. 나는 형에 관한 이야기를 형에게 직접 듣기보다 오히려 형의 페이스북을 통해 더 많이 전해 들었다.


바로 그 페이스북이 최근 가슴 철렁한 소식을 전했다. 형이 암에 걸렸다는 소식. 솔직히 아직 나는 누군가의 부모님이 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걱정할 나이 아닌가. 그런데 호칭부터 같은 세대인 형이 암에 걸렸다 하니 많이 놀랄 수밖에. 아주 초기여서 복강경 내시경 수술만으로도 치료가 가능하다는 의사 소견이 같이 적혀있었지만, 걱정되는 건 매한가지. 글의 아래에는 눈이 펑펑 내리는 가운데 활짝 웃고 있는 처자식 사진이 있었다. 남에게 보여주고 싶어서가 아니라, 형 스스로가 보고 싶어서 올렸으리라. ‘문병 한 번 가야지.’ 자연스레 든 생각이다.


2주쯤 지난 어느 날. 커뮤니티 내에서 단톡방이 하나 만들어졌다. 워낙 수시로 생겼다 사라지는 게 단톡방이지만 거기에 형도 계셨다는 점에선 달랐다. 마케팅을 주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농담처럼 나누다 문득 통하는 지점이 있었다. ‘남들 다 하는 마케팅 할 바엔 차라리 전단지를 돌려보자. 작가와 한의사가 길거리에서 전단지 돌리고 있으면 재밌지 않겠냐.’ 형은 진담이었다. 어? 나도 진담인데. 묻어뒀던 생각이 떠올랐다. ‘문병 한 번 가야지.’


[이상진입니다.] [오후 4:36] 어디서 했어요 수술
[오재철75멘산] [오후 4:37] 강남 성모


혹시라도 문병 오지 말라 하실까 봐 일부러 더 안 물어보았다. 진료를 마치고 성모병원으로 향했다. 쌍화탕도 열다섯 포 챙겼다. 바나나 같은 거 살 필요 없으니, 문병 가기 좋은 직업이다. 성모병원 주차장에서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입원한 병실이 몇 호예요?”
“왜, 너 오게? 아니, 혹시 왔냐?”
“네, 형. 이미 성모병원 왔어요. 어디로 올라가요?”
형은 웃으며 답했다. “13층으로 와라.”


13층에 올라가니 중앙 휴게실에 한 나이롱환자가 앉아있었다. 멀리서 봐도 형이다. 얼굴을 보자마자 걱정이 싹 사라지며 웃음이 나왔다.


“아니 형, 하나도 안 아파 보여요. 수술 하긴 한 거예요?”
“그치? 생각보다 더 간단한 수술이었나 봐.”


애초에는 30분 정도 형 건강에 대한 조언을 해 드리다 올 계획이었다. 그런데 형이 하나도 안 아파 보여서 건강 얘기가 나오질 않았다. 건강 말고 다른 이야기를 했다. 형 책 쓰면 어때요. 강연이 많이 들어오나요. 강연하는 거 재밌죠. 사대부고 동문회는 어떤가요. 아무래도 남녀공학이라 좀 다르지 않나요. 인스타그램은 어떻게 할까요. 문병 가서 병은 안 묻고 내가 궁금한 것만 물어보았다. 심지어 맥도 안 짚어드렸다. 형 코스믹 익스프레스가 할만하셨어요? 되게 어려운데 그거. 진짜 퍼즐 좋아하시는구나. 그럼 브레이드 추천드려요. 브레이드 다 깨고 나면 위트니스 해보세요.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두 시간을 이야기했다. 병원을 나오기 전에 형께 말씀드렸다.


“형. 우리 친해져요. 형이랑 친해지면 재밌을 것 같아요. 자주 뵐게요.”
“그래. 상진아. 나도 너랑 친해지면 재밌을 것 같다.”


이제 형과 친하다고 해도 될 것 같다. 아마 이 글을 시작으로, 서로의 타임라인에 태그 될 일이 많을 거다. 재밌을 것 같다.(20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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