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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Mar 01. 2019

경청

좋은 치료도구

환자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은 의사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지만, 말이 많고 타인에게 관심이 적은 나에게는 노력을 기울여야 가능한 일이다. 업이니 노력하긴 하나 가끔은 어려운 게 사실.


오랜만에 오신 한 환자분. 호씨 성을 가진 어머님. 특이한 성을 가진 이 어머님이 허리가 아프시단다. 촉진을 통해 아픈 곳을 확인하고 침을 놓는데, 따님과 함께 일본에 갔던 이야기를 하신다. 왜 일본으로 가게 되었는지, 오랜만에 딸과 여행을 시작하니 얼마나 좋았는지, 일본에서 온천욕을 하러 어떤 산엘 갔는지...


안타깝게도 허리에 침을 놓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게다가 옆 베드에는 다음 환자가 침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급한 마음에 말을 끊으며


“어머니, 근데 산 이야기는 왜 하시는 거유? 허리랑 관련 있어?” 


했더니 듣기 싫으면 관두라 신다. 빈정 상한 말투였지만 달래드릴 여유가 없었다. 다른 환자 침을 다 놓고 나서 다시 산 이야기를 물으니 너무 긴 이야기라며 뾰로통하게 답하신다. 나도 하던 일이 있어 그냥 원장실로 들어와 버렸다. 그게 어제.  


오늘 아침 출근하니 같은 환자분이 계신다. 어제의 일이 생각났다. 일부러 다른 환자부터 치료했다. 이윽고 호씨 어머님 차례가 되어,


“어머니, 오늘은 시간 많아. 산에 가신 이야기 다 해보셔.”

그래서 다시 시작된 일본 여행 이야기.


일본에서 온천욕을 하러 어떤 산엘 갔는데, 숙소가 스산한 것이 느낌이 안 좋더라.
“어우 그래요?” 
그 이야기를 딸한테 했더니 딸도 수긍하더라.
“따님이 보기에도? 숙소를 잘못 잡은 거 아니야?” 
그날 밤 잠을 자는데, 예상했던 대로 꿈에 잡귀가 나와 뭐라 소리치더라.
“일본 잡귀니까 일본말했겠네? 어머님 일본말할 줄 아셔?”
일본말을 모르니 알아듣지도 못하고,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무서울 것도 없어서 맞서 따지다가 귀신 멱살을 확 잡았는데 실수로 놓쳐버렸다.
“대단하시네. 겁도 없으셔.”
그 날 자고 일어났더니 그때부터 허리가 아프더라. 아무래도 그 잡귀가 도망치면서 허리를 걷어차고 간 것 같다. 
“아, 그래서 허리가 아프셨구나. 거 잡귀 입장에서도 겁 없는 사람이 와서 멱살을 잡으니 놀랐겠네.”
교회 다니는 사람이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아주 큰일 날 뻔했다.
“어머니. 잡귀한테 안 홀리고 아주 잘하셨어. 내가 침으로 잡귀 기운 다 빼낼 테니까. 믿고 치료받으러 오셔.”


이야기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그러니까 결국 허리 아픈 얘길 하시려던 거다. 가만 보면 노인 환자들이 이렇게 귀엽다. 치료가 잘 될 것 같다.(201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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