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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Jun 21. 2019

도쿄 여행기 4일 차

2018.7.31.

여섯 시 반. 평소에는 잠이 깊어 듣지 못하는 알람을 오히려 여행지에서 듣고 일어나다니. 컨디션이 좋다. 눈도 더 좋아졌다. 밀린 하스스톤 일일 퀘스트를 깨는 망중한을 즐겼다. 여덟 시가 좀 넘자 곽에게 톡이 왔다. 조식 먹자고.


일본 호텔의 조식은 일식일까, 양식일까. 내려가 보니 둘 다였다. 계란말이, 베이컨, 소시지, 낫또, 미소시루를 위주로 담았다. 꿀맛이었다. 후식으로 자몽과 방토를 먹었다. 우유도 주스도 여러 잔 마셨다. 조식은 매일 챙겨야겠다.

운동화 신고 나와 신주쿠교엔을 걸었다. 도쿄에서 가장 큰 정원이라 했던가? 우와~ 이야~ 탄성을 자아내는 곳이 몇 군데 있었다. 그때마다 어색한 아재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사람들은 거의 없었는데, 애니메이션 <언어의 정원>에 나왔던 장소에만 유독 몰려있었다. 컨텐츠의 힘. 우리도 거기서 사진을 찍었다. 여주가 구두 벗는 장면 밖에는 생각나지 않아 운동화와 양말을 벗고 찍었다. 비 오는 날 또 와보고 싶다.

정원을 한 바퀴 돌고 나니 열한 시. 덥다. 그러고 보면 어제는 정말 시원한 거였다. 커피숍에서 에어컨과 아아로 몸을 식혔다. 둘은 일정을 짜고 나는 여행기를 썼다. 수시간 전에 겪은 일을 쓰느라 정작 당장의 즐거움을 놓치진 않나 돌이켜본다.

전철 무제한 패스를 살까 고민해봤는데 지상철은 지상철 끼리만 되고 지하철은 지하철끼리만 되는 시스템이라 관뒀다. 어차피 많이 안 탈 것 같기도 했다. 도쿄 메트로를 타고 아키하바라로.


아키하바라는 만화와 게임의 천국이었다. 꿈과 희망이 가득한 곳. 하. 어릴 때 만화를 얼마나 좋아했었나. 게임은 또 말할 것도 없지. 그렇지만 아쉽게도 너무 늦게 왔다. 철든 어른이 되기 전에 왔어야 하는데…

아직 철이 다 들진 않았나 보다. 피규어 구경이, 장난감 구경이, 게임 구경이 재미있는 걸 보니. 라디오 회관이라는 곳이 있어 한 층 한 층 구경하는데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덕후 티가 폴폴 나는 티셔츠를 하나 사서 입어 보고 싶어 졌다. 밖에 입고 나가면 아무도 가까이 오지 않을 것 같은 그런 티셔츠. 그래서 그런 티셔츠가 보일 때마다 가격을 확인해 보았으나 그 정도 목적만으로 사기엔 너무 비쌌다.

몇 군데 둘러보고 점심을 먹었다. 구글맵 보고 찾아간 근처의 소바집. 야채튀김 소바를 먹다가 유부초밥과 문어 튀김을 추가했다. 그럭저럭 괜찮은 맛이었다. 다 먹고 난 뒤에는 스스로 그릇을 정리하여 올려놓아야 했는데, 사장님 혼자 분주하게 일하시니 당연하게 느껴졌다. 임금 상승을 고려하면 우리나라도 곧 이렇게 되겠지.

식사 후에도 여러 곳을 돌았다. 곽은 딸에게 선물해줄 ‘별의 카비’ 피규어와 ‘젤다의 전설 - 야생의 숨결’에 나오는 4대 영걸 피규어를 살 계획이었는데, 이것은 결국 우리 모두의 퀘스트가 되었다. 별의 카비는 인형도 피규어도 넘쳐나서 금방 퀘스트 클리어. 다만 젤다의 전설이 문제였다. 링크 피규어는 많았으나 4대 영걸 피규어는 도통 보이지가 않았다. 세 시간여 동안 아키하바라를 쥐 잡듯 뒤졌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포기. 때론 실패를 받아들여야 한다.


지나가다 보니 sod샵이 있어 사진을 찍었다. 물론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에무즈라는 곳은 안 쪽으로 갈수록 조심해야 하는 곳이라길래 조심히 다녀왔다. 유용한 물건들이 많은 곳이었다.

덥다. 오늘 서울은 39도라는데. 여긴 그보다는 훨씬 시원한 날씨지만, 돌아다니니 덥다. 그래서 커피숍에서 휴식을 취했다. 다음 목적지는 아사쿠사.

역에서 나와서부터 분위기가 달랐다. 예스러운 풍경의 가게들. 노포가 정말 많았다. 무려 since 1872도 있었다. 와. 강화도조약 이전이네? 성시경이 먹었다는 멘치 카츠 집이 있어 사 먹었다. 먹어보니 고기고로케. 좋아할 수밖에 없는 맛이었다.

센소지에는 사람이 꽤 많았다. 사진 몇 장 찍고 나니 더 할 게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돈키호테에 들렸다. 1~2층을 둘러봤는데 전혀 싸지 않아서 더 구경하지 않기로 했다.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낮 동안 한 일이라고는 즐겁게 논 것뿐인데도, 해가 지면 쉬고 싶어 진다. 낮에는 놀고, 밤에는 쉬고. 물론 술 마시며 쉬어야지. 신주쿠역 주변의 꼬치구이 골목으로 갔다. 계획 없이 걷다가 교엔이라는 곳에서 멈췄다. 생맥주와 닭 돼지 모둠꼬치, 닭날개, 참치를 시켰다. 참치와 닭날개야 예상하는 범위 안이었지만 돼지와 닭 꼬치 중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부위가 있었다. 특히 닭 심장은 장기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손이 가지 않았다. 병민이가 먼저 맛을 보고는, 코피를 먹는 기분이라며 극구 만류했다. 그 외에도 손이 안 가는 게 몇 가지 있었다. 괜히 모둠 시켰다. 인당 두 잔씩 마시고 일어섰다.

<심야식당> 배경이란 곳을 갔는데 심야식당 느낌이 하나도 안 났다. <상실의 시대>에서 와타나베가 미도리를 처음 만났다는 재즈바에 왔다. dug. 나는 읽은 지가 너무 오래되어 기억도 안 나는데, 곽이 몹시 좋아했다. 곽이 좋아하니 우리도 좋았다.

바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길. 곽이 갑자기 매운 걸 먹고 싶어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나도 먹고 싶어 졌다. 출국한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벌써. 슈퍼에서 신라면과 기무찌를 샀다. 빨간색만 봐도 반갑다. 토종 한국인이다.

민의 방에 모였다. 신라면은 내수용보다 덜 맵고, 기무찌는 김치와 달리 단 맛이 강했지만 같이 먹으니 묘하게 어울렸다. 컵라면 바닥이 보일 때까지 먹었다. 각자의 방으로 흩어져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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