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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Jun 21. 2019

도쿄 여행기 3일 차

2018.7.30.

일어나자마자 거울부터 봤다. 오른 눈은 여전히 붉다. 그래도 이물감이나 소양감, 통증은 어제보다 훨씬 덜하다. 다행이다. 침놓길 잘했다. 어제 여행기를 마저 쓰고 짐을 정리했다. 체크아웃. 오늘은 곽이 오는 날이다. 우에노 공원 갔다가 곽 만나러 가야지.


우에노 공원을 가는 이유는 가까워서였다. 뭐, 구글 평점도 높긴 했다. 그런데 가보니 기대 이상이었다. 공원의 크기도 꽤 크거니와 도쿄 국립 박물관, 국립 과학 박물관, 국립 서양 미술관 등 이름만 보아도 좀 있어 보이는 museum들이 여기에 다 모여있으니. 와. 이 정도면 되게 비중 있는 관광지겠는데?(외국인 시각)

도쿄 국립 박물관은 휴관이었다. 괜찮다. 갈 데 많다. 국립과학박물관에 갔더니 원시인 복장으로 나무배를 만드는 사람이 문을 막고 있었다. 여기도 휴관인가? 옆으로 돌아 나오니 입구가 따로 있다. 뼛속까지 이과생 과학 덕후답게 주저하지 않고 들어갔다.

국립과학박물관은 일본관과 지구관으로 나뉘어 있었다. 지구관 먼저 갔다. 여러 층에 걸쳐 볼거리가 많았다. 체험할 수 있는 장치도 많아 부모 따라온 꼬맹이들이 신나 있었다. 공룡에 공자가 무서울 공자인지 처음 알았다.

지구관에 이미 지구의 탄생부터 우주 저 멀리까지 모든 내용이 다 들어있는데 일본관엔 뭐가 있을까. 일단 건물부터 근대식으로 달랐다. 아마 일본이 한창 깡패 노릇 하던 시절에 지어졌겠지? 영어는 물론 한국어로까지 설명해주던 지구관과 달리, 일본관에는 오로지 일본어 설명만 존재했다. 전시물 하나하나에 일본의 자부심이 담긴 듯했다.


다 보고 내려와 출구로 오니 그제야 멀티미디어 가이드가 보인다. 빌려갈 걸 그랬나. 두 관을 합하면 꽤 규모가 되는 박물관이었다. 넓을 박 자가 아깝지 않은. 하지만 여기가 아니면 볼 수 없는 물건은 딱히 없었다. 그런 면에서 박물관은 역시 유럽.

우에노 공원을 가로질러 남쪽 출구로 나왔다. 구글맵에서 봐 둔 이센혼텐에 가기 위함이었다. 어제처럼 줄이 길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오히려 좌석이 널널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시킨다는 로스가스 정식을 주문. 돈가스에 양배추, 흰쌀밥, 된장국, 알 수 없는 야채가 단정하게 나왔다. 튀김은 바삭하고, 고기는 두터워 육즙을 잘 보존하고 있다가 입에 넣고 씹을 때마다 기꺼이 내어주었다. 밥, 국, 양배추, 돈가스를 한 입에 넣고 씹으니 각각의 재료가 함께 춤을 추었다. 별 다섯 개. 자주 먹고 싶은 돈가스다.

곽이 도착할 시간. 전철을 타고 신주쿠 역으로 갔다. 역에서 합류할까 하다 복잡하니 그냥 호텔에서 보기로 했다. 우리가 예약한 곳은 APA 호텔 교엔마에. 도착하니 곽과 곽의 고교 친구 민이 있었다. 그럼 뭐, 나랑도 친구지. 반갑다. 친구야. 바로 말을 놓았다.

체크인. 셋이 각자 1인실을 잡으니 편리하고 좋다. 곽은 방이 좁을까 걱정했지만 호스텔에서 이틀을 묵고 온 입장에선 완전 대궐이었다. 바쁘니 짐만 내려놓고 다시 로비로.


곽과 민의 배가 고파 일단 요기를 해야 했다. 곽도 나도 우유부단하여 자연스레 민이 리드하게 되었는데, 민은 좀처럼 식당을 정하지 못하고 심사숙고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다 겨우 들어간 라멘집에서 시킨 교자와 닭튀김, 그리고 맥주. 뭐 워낙 완벽한 조합이니까. 원샷하듯 맥주를 비우고 한 잔씩 더 시키는데, 민이 알아서 차슈를 추가로 시켰다. “잘했어.” 곽이 말했다. “앞으로 네가 무얼 하자고 하든, 어지간하면 우린 다 잘했다고 할 거야. 그러니까 그냥 내키는 대로 해.” 여행은 역시 긍정적인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

시부야까지는 걸어가기로 했다. 걷는 것도 여행이니까. 가는 동안 펼쳐지는 풍경에 따라 여기는 가로수길 같네, 여기는 홍대 같네, 여기는 이촌동 같네, 여기는 강남 같네 하며 비슷한 곳을 찾았다. 다른 나라 다른 도시에 비슷한 분위기의 장소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그런 걸 찾아내며 쾌감을 느끼는 인간의 뇌도 신기했다.

자쿠자쿠라는 디저트 가게가 있어 들렀다. 여름 한정메뉴를 시켰는데 슈크림이 들어있는 게 예상과 달랐다. 어쨌든 맛있게 먹고 있는데 직원이 따라 나와서는 뭐라 뭐라 하는 거다. 우리가 뭘 잘못한 게 있나? 뭘 더 팔려는 건가? 알고 보니 우리가 주문한 건 아이스크림이 들은 것이었는데, 슈크림이 들은 걸로 잘못 준 거였다. 그걸 뒤늦게 알고는 우리를 쫓아온 것. 그래서 아이스크림이 들은 걸로 추가 요금 없이(!) 새로 받았다. 어차피 우린 모르고 그냥 갈 거였는데. 그걸 굳이 밖에 따라 나와 알려주다니. 감동이다 감동. 자쿠자쿠 감동.

시부야 역의 스크램블 교차로엔 정말 사람이 많았다. 사람이 많은 게 이 교차로의 컨텐츠라 하여 신호가 세 번 바뀌도록 교차로에서 셀카를 찍었다. 배경에 사람이 최대한 많아 보이게. 어쩌면 우리 같은 사람들 때문에 더더욱 사람 많은 교차로일지도 모른다.

프랑프랑이라는 주방용품 및 가구매장에 들렸다. 어째 여직원이 다 이쁘고 귀여웠다. “여기는 무조건 예쁜 직원만 뽑는대.” 곽은 모르는 게 없다. 그와 함께 있으면 검색할 필요가 없다. 다음으론 도쿄 핸즈에 갔다. 재미난 물건이 많았는데 필요 이상으로 비쌌다. 구경만 실컷 했다.


슬슬 지친다. 일단 들어가 쉬기로 했다. 어플을 보니 오늘 삼만보를 걸었다. 걸음을 계산해주는 폰을 산 이후로 가장 많이 걸었다. 문득 스스로가 대견해졌다. “야. 사실 지금이 여행하기 가장 좋은 때 아니냐? 이전에는 돈이 없었고, 이후에는 무릎이 아파 못 걷잖아.” 더 일찍 건강을 잃거나, 더 늦게 돈을 벌 수도 있었다. 감사할 따름이다. 곽과 민도 지쳐서 호텔까지는 걸어가지 않고 전철을 타기로 했다. 지쳤는데 택시가 아니라 전철! 검소하고 건강한 친구들.

숙소로 복귀. 본격적으로 술 먹으러 나가기 전에 잠시 호텔의 대중탕에 들렀다. 탕에 몸을 담그니 하루의 피로가 다 풀렸다.


열 시에 모여 신주쿠로 갔다. 환항수산이라는 곳에서 회를 먹었다. 일본에서 회를 먹으니 싸고 맛있다!라고 생각했는데 계산할 때 보니 싸진 않았다.

한잔 더 해야지. 숙소 쪽으로 왔다. 열한 시밖에 안 되었는데 대부분의 술집이 이미 마감이었다. 누가 일본인더러 근면하다 했지? 한국인이 훨씬 더 근면하다. 돌고 돌다 한 시까지 한다는 집이 있어 들어왔다. 도로큐. 현지인들만 오는 식당인지 메뉴에 영어 한 자 없었다. 구글 번역기를 적극 활용하여 점원과 대화했다. 그들은 우리가, 우리는 그들이 신기했다. 음식은 기름지고 맥주는 시원했다. 행복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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