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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Mar 01. 2019

도쿄 여행기 2일 차

2018.7.29.

눈을 뜨니 여덟 시 반. 어제의 여행기를 마저 쓰니 아홉 시 반. 이제 뭘 할까. 아무 계획도 없다.


나는 여기에 한국인 스탭이 상주하고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저 오늘 어디 갈까요?” 물으면 어디 어디 가라고 알려줄 줄 알았다. 근데 한국인은 스탭뿐 아니라 관광객도 없다. 대략 난감.  


로비에 놓인 여행 책들을 훑어보며 하루 동안 어딜 다녀올까 이리저리 고민하다, 에라이. 그냥 나서기로 했다. 어차피 길만 걸어도 좋아할 나니까. 밖에 나오니 배가 고팠다. 그래. 추천받은 맛집 츠지한을 가보자. 역 앞 편의점에서 차를 하나 사 마시고, JR선 원데이 패스를 끊었다.


신기하게도, 도쿄 전철에는 도쿄 역이 있다. 서울에는 서울역이 없... 생각해보니 없지 않네? 서울에도 ‘서울역’ 역이 있다. 그럼 도쿄 역도 다른 도시로 이동할 수 있는 기차역인가? 신칸센 환승이 쓰여있는 걸 보니 그런가 보다.

도쿄역에서 도보 5분 거리. 츠지한은 금방 찾았다. 오전 열한 시 반인데 줄이 이미 길었다. 내가 참고한 포스팅에는, 열 시간을 기다려서 먹어도 아깝지 않은 맛이라 쓰여 있었다. 그래. 줄 서자. 어제 보던 영화, 마저 보지 뭐.


오산이었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줄을 선다는 건 애초에 미친 짓이었다. 등은 땀으로 흥건했고, 핸드폰은 너무 뜨거워 영상을 재생하지 못했다. 그렇게 한 시간을 기다렸으나 줄은 삼분의 일도 채 줄지 않았다. 이렇게 세 시간 이상을 기다린다고? 그건 아니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분점을 검색해보니, 있다. 멀지 않은 곳에. 분점이 있을 거란 생각을 왜 이제야 했을까. 한 시간 줄 선 것이 조금 아까웠는데, 떠나면서 내 앞에 서있던 사람들을 세어보니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쿄의 전철은 복잡하고 어렵다. 일단 노선도가 제각각이다. 역의 배치가 다른 것은 물론이요, 노선의 색깔마저 통일되어있지 않다. 너무 많은 노선이 있고 상당 부분 겹친다. 그걸 잘 몰라 두 번을 더 갈아탔다.


이이다바시 역에서 츠지한 분점까지는 7분 정도. 편의점에서 산 귤맛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걸었다. 시원하다. 줄이나 계속 서고 있었다면 몰랐을 이 맛. 분점도 줄이 있으나 훨씬 짧았다. 30분을 기다려 드디어 안으로.

메뉴는 카이센동(해산물 덮밥) 한 가지. 네 등급이 있는데 언제 또 오겠나 싶어 가장 비싼 토쿠죠(특상)를 시켰다. 줄을 서는 맛집인데도 대단히 친절했고 맛 또한 좋았다. 본점과 맛이 같다고 하니 본점에 갈 이유가 없다. 문득 하동관이 떠올랐다. 곰탕과 카이센동은 전혀 다른 음식이지만, 한 가지 메뉴가 등급별로 나뉜다는 점에서 같다. 아. 하동관. 내 입엔 하동관이 더 낫다. 귀국하면 스물다섯공 먹으러 가야지. 역시 하동관이 채고시다.

다 먹었으니 이제 뭘 할까. 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패밀리마트가 보여 수박바 아스크림 하나 더 사 먹었다. 게임센터 앞에선 참가 무료라 쓰인 뽑기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었지만 나는 닳고 닳은 어른이므로 참가하지 않았다. 교차로엔 스타벅스가 있었다. 우리나라 브랜드도 아닌데 괜히 반가웠다. 아아로 몸을 식혔다.

전철역으로 돌아가, 아무 전철이나 오는 걸 탔다. 주변의 관광지를 검색해보니 오리가미(종이접기) 박물관이 나왔다. 가볼까? 오차노미즈 역에서 내렸다. 주변을 다 구경하며 천천히 걸어갔더니, 닫혀있었다. 일요일이라 그런가? 어차피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내게는 신선해서, 아쉬울 것도 없었다.

이번엔 아예 구글맵에서 검색했다. 주변 관광명소. 별점이 높은 롤러코스터가 나오길래 다시 전철로 이동. 흘리는 땀만큼 음료를 사 마시며 썬더 돌핀(롤러코스터 이름)에 도착했다. 여기가 도쿄돔 근처구나. 롤러코스터 말고도 여러 놀이기구가 있었으나 혼자 온 아재에겐 롤러코스터 하나면 충분했다. 탑승료는 1030엔. 또 한 삼사십 분 줄을 섰다.

와. 나이 서른여덟에 롤러코스터 타며 무서움 느낄 줄은 몰랐다. 넋이 나가는 기분. 한국에 이 정도의 롤러코스터가 있나? 정말 대만족이었다.

역시 구글맵이 짱이다. 책이 무슨 소용이랴. 구글맵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그렇게 정한 다음 목적지는 도쿄 스카이트리. 높은 데 가서 야경을 봐야겠다.


도쿄 스카이트리는 오시아게 역에서 바로지만, JR노선이 아닌 듯하여 조금 남쪽의 긴시초 역으로 갔다. 지도를 켤 필요 없이 멀리서도 타워가 보인다. 관광지가 아닌 도쿄의 주택가를 감상하며 천천히 걸었다. 일본의 주택가는 높지 않고 깔끔히 정돈된 느낌. 상가와의 구별도 확실하지 않아, 주택가 사이사이에 의원도 있고 식당도 있었다. 어릴 때 보던 만화 속 배경에 들어온 것 같아서 타워로 가는 길이 조금도 심심하지 않았다.

가까이에서 본 타워는 대단히 높았다. 바로 올라가려고 4층 매표소로 가니 closed. 20:30에 다시 판매한다 하여 좀 기다리기로 했다. 오늘은 하루 종일 기다린다. 그러고 보니 기모노 입은 커플들이 많다. 저 멀리 하늘엔 불꽃놀이가 한창이다. 오늘 무슨 날인가? 앞에 있는 남자가 연인 귓불에 숨을 불어넣으며 장난을 친다. 까르르 웃고 아주 난리가 난다. 아이고. 좋을 때다 이것들아.

여덟 시 반. 티켓 판매 재개. 직원이 오늘은 별로 안 붐빈다면서 패스트 패스(삼천엔) 말고 좀 더 저렴한 당일권 패스(이천엔)를 권한다. 오케이. 그럼 당일권으로. 난 말 잘 들으니까.


당일권 패스를 사서 350미터 전망대로 올라갔다. 창 밖으로 도쿄의 야경이 펼쳐진다. 이런. 홍콩을 다녀오고 나서는 어떤 야경을 봐도 감흥이 없다. 문득 오른쪽 눈에 이물감이 심해 화장실에 가 거울을 보았다. 언제 이렇게 충혈되었지? 결막염이다. 급히 렌즈를 빼고 안경을 썼다.

온 김에 천 엔 더 내고 450미터까지 올라가 보았으나 별 감흥 없기는 매한가지. 눈이 점점 더 불편해져서 바로 내려왔다. 다시 350미터. 바닥이 보이는 글라스 플로어는 스카이트리에서 가장 볼만한 부분. 위에서 내려다보면 철렁할 정도였는데, 사진으론 그 느낌이 안 난다.

눈이 점점 더 가렵다 못해 아프다. 전철을 어렵게 갈아타고 숙소로 왔다. 거울을 보며 침을 놓았다. 아. 성가시다. 자는 동안 좀 좋아졌으면.(2018.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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