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피엔드 Aug 28. 2019

뉴욕 여행기 3일 차

2019.4.29.

배가 전화받는 소리에 깼다. 일 전화인 것 같다. 눈을 떠 핸드폰을 쥐었다. 일곱 시 반. 고작 세 시간 반 잤다. 팡켠도 곧 눈을 떴다. 저기, 친구들아. 우리 너어무 부지런한 거 아니니?


열심히 어제의 여행기를 마무리했다. 여행이 길어 여행기도 길었다. 팡켠이 찍은 사진을 추려 같이 업로드했다. 켠의 노트북을 TV에 연결해 어제 방영된 왕좌의 게임을 보았다. 매번 각자 보다가, 같이 보니 더 재밌었다. 여러 장면에서 숨을 못 쉬었다.


어제는 추워서 문재인 잠바를 계속 입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은 일부러 터틀넥을 받쳐 입었다. 열두 시. 밥 먹으러 가야지. 전철 타고 캐널 스트릿 역에서 내렸다. 위로 올라오니 어제 이미 보았던 풍경이다. 삼일 만에 왔던 데 또 오고, 뉴욕 별 거 없구만?


식당은 Le coucou라는 곳으로, 안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켠이 예약한 미슐랭 원스타 프렌치 레스토랑이었다. coucou는 불어로 뻐꾸기라는 뜻이다.(검색해봤다.) 프랑스 요리는 다 생소해서 어차피 모르므로 이것저것 다 시켜서 나눠먹기로 했다. 전채와 주요리 총 여덟 가지를 주문했는데, 전반적으로 짜지 않고 한국인 입맛에 잘 맞았다. 돼지머리 편육, 육회 비빔, 닭백숙 같은 요리는 진지하게 한국 음식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아닐까 의심될 정도였다. 팡은 백숙에 인삼이 들어간 것 같다며 나보고 국물 맛을 보라 했다. 나는 한의사일 뿐 인삼 감별사는 아니어서, 들어갔다 아니다 확답을 하지 못했다. 어쨌든 맛이 좋았다. 만족스러운 식사 후 우리가 지불한 비용은 와인 값을 포함해 460불. 어우. 싸진 않다.

식당을 나서며 팡은 켠에게 물었다. “켠아, 가위바위보 할래?” “응? 왜?” “아이코스 말야. 누가 먼저 피울지 정하게.” 아이코스는 켠의 것이다. 빌려 피우는 주제에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하자는 당당함. “아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ㅋㅋㅋ” 내가 말했다. 켠은 이미 아이코스를 빼 물었다. “나 먼저 필 거야 임마!” 물론 그래도 된다. 주인이니까. “전에는, 내 담배가 돗대였단 말야. 같이 나눠 피우려고 아껴두고 있었는데, 나 옷 갈아입는 동안 쓱 빼가서 혼자 피워버린 거야. 진짜 양아치 아니냐?” 배가 옛날 얘기를 했다. 셋의 비난에 팡은 그저 웃으며 한 마디 했다. “데헷.” 다 같이 웃었다.


디저트 타임. 근처의 에일린’스 스페셜 치즈케익에서 케익과 커피를 주문했다. 치즈케익 4개와 커피 4잔에 32불. 혀에 케익이 닿으면 달고 느끼했는데, 거기다 커피를 적시면 느끼함이 가시며 정제된 달콤함만 남았다. 아름다운 조합이었다. “이 정도면 월드 베스트 치즈케익 아니냐?” 배가 말했다. 나는 치즈케익의 일반적인 맛 수준을 몰라서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켠을 따라 애플스토어에 왔다. 내 눈엔 재밌는 장난감이 많이 보였으나, 배팡은 시큰둥했다. 사람마다 관심사가 다 다르다. 켠은 새로 나온 에어팟을 샀다. 216불. 조심스레 개봉하고 직접 꽂아 써보면서 상당히 만족하고 감동받는 모습이었다. 나도 한 번 얻어 껴 보았다. 착용감이 좋다 못해 착용했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여서, 음악이 내 주위에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팡이 아는 동생을 만나기로 했다. 뉴욕에도 아는 동생이 있고, 팡은 참 글로벌하다. 세븐뜨 애비뉴 역에서 만나 인사하고 함께 센트럴파크로 갔다. 공원에 오니 안 그래도 상쾌한 뉴욕 공기가 더 상쾌했다. 나무와 잔디가 무성하고 꽃이 잔뜩 피어 있었다. 참새가 지저귀고 청설모가 뛰어놀았다. “배야, 이거 다람쥐야, 아님 청설모야?” “등에 줄무늬 없으면 청설모 아냐?” 배는 모르는 게 없다. 이 곳의 청설모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카메라를 들이대도 도망가지 않고, 손을 내밀면 먹을 것이 있나 와서 확인했다.

평일 낮인데도 한가로이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조깅하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도 많았다. 우리 역시 목적 없이 걸었다. 여유롭게.

여유로웠다. 분명 처음에는. 공원은 몹시 컸다. 걷고 또 걸어도 끝이 없었다. 두 시간 가까이 걸으니 어깨가 무겁고 발이 아팠다. 시작은 산책이었으나 어느새 행군이 되었다. 켠은 발바닥이 아프다며 다음엔 자전거를 빌려오자 했다. 그즈음, 팡이 지도를 보며 말했다. “잠깐만 얘들아. 지금 잘못 가고 있어. 좀 돌아가야 돼.” 어? 목적지가 있었어?!


목적지는 공원 안에 있는 벨비디어 성이었다. 배는 이 성이, 오스트리아의 벨베데레 궁전을 모티브로 지어진 곳이라 했다. 배는 정말 모르는 게 없다. 그나저나 공원 안에 성이 있을 정도면, 대체 공원이 얼마나 큰 거야? 그러나 성으로 가는 길은 막혀 있었다. 공사 중이었다. 괜찮다. 어쨌든 행군은 끝이 아닌가. 공원 옆으로 걸어 나왔다.

팡이 아는 동생분은 일정이 있다며 가셨다. 스타벅스에서 잠시 쉬면서 다음 일정을 정하기로 했다. 아메리카노 마시며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맘마미아는 이제 안 하는 것 같고, 팬텀은 원래 재미없고, 위키드나 시카고는 내용과 노래를 알아야 재밌고. 차라리 디즈니 꺼 프로즌이나 알라딘, 라이언킹 같은 건 내용이나 노래 다 아니까 볼만할 텐데. 그렇다고 구린 자리에서 150불씩이나 내고 보기엔 너무 비싸. 할인 표를 구해야 돼.” 배는 우리더러 뮤지컬을 싸게 보기 위해 broadway lottery라는 어플을 설치하고 응모하라 했다. 검색해보니 안드로이드에는 없는 어플이었다. 아이폰 쓰는 배켠팡, 잘 부탁해.


다시 전철로 이동. 저녁은 사이공 마켓이라는 베트남 음식점. 쌀국수와 새우볶음밥, 폭찹, 큐브 스테이크, 통 농어 튀김을 시켰다. 먼저 쌀국수가 나왔다. 짜면 어쩌나 걱정하며 맛을 보았다. 괜한 걱정이었다. 베트남 현지에서만큼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먹는 쌀국수만큼은 맛있었다. 새우볶음밥은 중화풍이었고, 큐브 스테이크는 데리야끼 소스였으며, 통 농어 튀김은 탕수육 소스였다. 폭찹은 대놓고 한국 맛을 냈다. 그러니 우리로선 환장할 수밖에. 그동안의 음식으로 인한 고생을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팡아, 여기도 짜?” “아냐, 맛있어.” 팡은 평소보다 훨씬 많이 먹었다. 그런데도 최종 결제 비용은 145불. 뉴욕 물가 생각하면 싸다 싸. 뉴욕 있는 동안 적어도 한 번은 더 올 것 같다.

밖으로 나와 배를 따라 걸었다. “짜잔. 여기가 이스트 빌리지야.” 야끼도리니 이자까야니 가라오케니 하는 일본식 상점들이 많았다. 코코에서 버블티 한 잔 했다. 여기 버블티 너무 맛있다. 마트에서 오늘 마실 맥주와 안주를 샀다. 처음 보는 음료도 몇 개 샀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몹시 힘들었다. 전철을 기다리며 서서 졸고, 전철 좌석에 앉아서 졸았다. 숙소에서 술을 마시며 서로의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술에 취하니 더욱 졸리다. 열두 시. 배팡은 이미 잠들었다. 나도 안경을 벗고 폰을 내려놓았다.

작가의 이전글 뉴욕 여행기 2일 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