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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Aug 28. 2019

뉴욕 여행기 4일 차

2019.4.30.


또 깼다. 더 자려했지만, 너무 명료하게 의식이 돌아왔다. 핸드폰을 켰다. 네 시. 피곤한데 잠이 안 온다. 이게 시차 적응인가. 배켠팡이 잠든 암흑 속에서 홀로 여행기를 정리했다. 여행기 올리고 게임 몇 판 하니 여섯 시 반. 친구들은 잘 잔다. 나도 더 자야지.


“배야, 어디가?” “응, 주변 좀 돌다 오게.” 배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팡이 깨서 물었고 그 소리에 나도 깼다. 열한 시. 오, 이만하면 많이 잤다.


배는 빈손으로 오지 않았다. 중식당에서 점심을 사서 돌아왔다. 완전 아빠다 아빠. 배가 사 온 것은 스페어 립스 팁스, 하우스 스페셜 로멘, 제너럴 쏘 치킨. 스페어 립스 팁스는 첫날 먹었던 오돌뼈 포함된 돼지갈비다. 완전 내 스타일. 하우스 스페셜 로멘은 소고기, 돼지고기, 새우, 야채가 들어간 볶음면이다. 역시 우리 입맛에 잘 맞았다. 제너럴 쏘 치킨은 달짝지근하게 튀긴 게 그냥 양념치킨 맛이다. 미국 애들은 식사량이 많은지, 넷이서 3인분만 먹어도 충분히 배가 부르다. 일어나자마자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불려 다들 행복해졌다.

밥 먹고 다시 누웠다. 그동안 열심히 달렸으니까 좀 쉬어도 된다. 와썹맨을 틀어놓고 뒹굴거렸다. 구독 팔로 안 하면 죽여버려~ 요 기릿 와썹맨~ 언제 봐도 재미와 감동에 교훈까지 있는 컨텐츠다. “진아. 너도 저렇게 편집해봐. 재밌게.” 팡이 웃으며 말했다. 나도 웃었다.


켠배와 먼저 씻고 나왔다. 두시 반. 호텔 근처의 리큐르 샵을 두 군데 돌았다. 배는 이미 이 지역 리큐르 샵을 다 꿰고 있었다. 호텔 옆에 있는 화이트노이즈라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켠은 콜드브루. 배진은 아아. 둘 다 산미가 강했다.

세시 반. 팡이 내려왔다. 전철을 타러 가는 동안, 서부를 40일간 여행했던 팡에게 LA와 뉴욕의 차이에 대해 물었다. “뉴욕 며칠 있어보니까, 여기 삶은 서울과 다를 바가 없네. 지하철 타면 어디든 다 가고. 밤늦게까지 여는 상점도 많고. 코리아타운 같은 덴 밤새도록 마실 수 있고. 혹시 LA도 그래?” “아니. 완전히 달라. LA에선 전철을 타본 적이 없어. 도시가 너무 커서 전철로 다 커버가 안 돼. '커피 한 잔 할까?' 하면 일단 차 타고 한 25킬로 가야 돼. 치안도 여기보다 안 좋고. 인종도 여기랑은 달라. 남쪽에서 온 사람들이 많아서 스패니시가 거의 공용어로 사용될 정도야. 거기는 한인타운도 여기 한 40배 될 걸. 거기 살면 영어 안 하고도 살아.” 팡은 미국 전문가다.


뉴욕의 전철역에는 화장실이 없다. 플랫폼에는 스크린도어가 없다. 전철이 역과 역 사이를 이동하는 동안에는 인터넷이 터지지 않는다. 서울에선 당연한 것들이 새삼 대단하게 여겨진다.


투에니써드 스트릿 역에서 내렸다. 길을 건너 플랫 아이언 빌딩을 보았다. 거리가 합쳐지는 곳에 지어져, 다리미 같은 모양이었다. “가끔 저 빌딩 사진 걸어놓은 레스토랑 있거든. 근데 뉴욕 안 다녀온 사람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같은 랜드마크 아니고서는 뉴욕 사진인지 모른단 말야. 이제 너희도 알게 되었으니까 앞으론 사진 보면 알아볼 거야.” 배는 참 훌륭한 가이드다.

셰이크 쉑 본점은 바로 옆의 매디슨 스퀘어 공원에 간이매점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이미 뉴욕이나 서울을 포함해 100개 이상의 본점이 생겼지만, 본점에서 이들과 함께 먹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라고 써줘.”라고 팡이 말했다. “이들?” “응. 이들. A4.” 팡아. 원하는 대로 써줬다. 만족하지?

주문한 버거를 기다리는 동안 켠의 손에 새똥이 떨어졌다. “아 뭐야!” 켠은 놀랐지만, 울진 않았다. 어른이니까. “야. 나무 밑에 있으니까 새가 똥 싼다. 나무 없는 데로 옮기자.” 팡이 맞섰다. “나무 없는 데선 똥 안 싸?” “날 때는 똥 안 싸~!” “싸는 걸로 아는데? 팩트 체크 해!” 검색해보니 팡의 말의 맞았다. 새는 날면서도 싼다. 새똥과 무관하게 켠의 바람대로 자리를 옮겼다.

버거가 나왔다. 셰이크, 스모크 셰이크 버거와 베이컨 치즈 프라이를 콜라, 딸기 셰이크, 바나나 셰이크와 함께 먹었다. 햄버거는 맛있고 감튀는 좀 짰다. 셰이크는 달았다. 다해서 51.84불. 잘 먹었다. 이제 뭐하지.

“크라이슬러 빌딩 외관이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져 있대. 원래 스테인리스 스틸이 비싸서 건물 외벽 소재로는 적합하지 않은데, 크라이슬러는 자동차 회사인 만큼 과감하게 질러버린 거야. 그래서 반짝반짝 빛나는 게 볼만하대.” “그래서 결론이 뭐야.” “결론은 보러 가자는 거지. 지금 지식 방출했으니까, 진은 꼭 여행기에 쓰고.” 팡이 여행기에 신경을 쓰고 있다. 가끔 웃기려고 빙구짓해서 그렇지, 이 친구 원래 똑똑한 친구다.


크라이슬러 빌딩으로 가는 경로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도 있었다. 가까이 가다 보니 엊그제 갔던 한인 타운이 바로 옆이다. 배한테 뭐라 했다. “여기까지 왔으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도 보여줬어야지, 왜 안 보여줬어.” “아, 다음에 여기 전망대 올라갈 거야.” 그렇구나. 다 뜻이 있었구나.


뉴욕은 계획도시다. 길이 바둑판처럼 반듯하게 나 있다. 교통 시스템이 단순하고 보행 신호가 금방 돌아온다. 교차로를 건너며 고개를 돌리면, 빌딩 숲 사이로 저 멀리 하늘이 보이는 소실점 뷰가 인상적이다. 여러 모로 걸어서 여행하기에 최적이다.


크라이슬러 빌딩은 윗부분만 스뎅이었다. 전부다 스뎅칠 하기엔 돈이 부족했나 보다. 거기까지만 보고, 배가 좋아하는 자라에 갔다. 아무것도 안 샀다. 멧 라이프 빌딩을 봤다.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에 들어가 사진을 찍었다. 베스트 바이에서 켠은 애플워치 시계줄을 샀다. 록펠러 센터를 봤다. 그 앞 공원에 있는 야외 수조에 동전을 던졌다. 패트릭스 대성당을 봤다. 팡이 좋아하는 알마니 익스체인지에 갔다. 팡은 매장을 잠시 둘러보더니 갑자기 이성을 잃었다. “나 여기 아도 쳐야겠어. 너무 싸. 오래 걸릴 테니 너네 어디 좀 가 있어라.” 대만에서 켠이 조던을 보았을 때의 이글거리던 그 눈을, 팡이 완전히 똑같이 뜨고 있었다. “그러지 마. 우드버리 가면 여기 있는 모든 게 있고, 더 싸.” 배가 말려도 소용없었다. 손목을 잡아 겨우 끌고 나왔다. 그동안 켠은 나이키에 있었다. 켠은 제정신이어서, 아무것도 안 사고 나왔다. 플라자 호텔을 보고 애플스토어에 갔다. 어제 보지 못한 ‘게임 볼'이 있었다. 직원의 도움을 받아 팡과 함께 갖고 놀았다. 땀이 났다. 마시모 두띠에 갔다. 아무것도 안 샀다.

저녁을 원래는 콴횽에게 추천받은 버거 조인트로 가려했다. 가는 길에 모마(MoMA - The Museum of Modern Art, 현대미술관)가 보여서, 버거 조인트는 모마 올 때 다시 오기로 했다. 대신 걷다가 나온 레이즈 피자(Ray's pizza)에 갔다. 배의 영어 이름이 Ray라는 이유였다. 피자 한 조각, 미트볼 파스타, 필리 버거와 프렌치프라이에 콜라를 주문했다. 피자는 뉴욕답게 짰다. 아주 짰다. 파스타는 결혼식 뷔페에 나오는 것만 못했고, 미트볼은 오뚜기 3분 요리만 못했다. 그나마 필리 버거가 제일 나았다. 별 맛이 안 나고 싱거워서 목구멍에 욱여넣을만했다. 버거만 먹고 나머지는 다 남겼다. 이렇게 맛없었는데 43.13불. 마! 이게 뉴욕이다!

전철 타고 켠이 가고 싶어 한 빌리지 뱅가드로 갔다. 켠은 평소에도 집 근처의 재즈바에 자주 간다. “켠아. 여기 얼마나 유명한 데야?” “이곳으로 말할 것 같으면! 1935년에 오픈하였으며, 미국의 유명 재즈 연주가 마일즈 데이비스, 몽크, 소니 롤린스, 빌 레반스, 스탠 겟츠 등이 거쳐간, 재즈의 성지 중 하나!” 말해주는 대로 받아 적었다.

어두운 지하의 재즈바 분위는 술집보다 공연장에 가까웠다. 자리에 앉아 칵테일 한 잔씩을 시켰다. 공연은 열 시 반에 시작됐다. 재알못인 나는 모르는 곡들 뿐이어서 정신없이 졸았다. 졸고 또 졸다가 문득 깨서 내 잔을 보니, 마시지도 않았는데 텅 비어 있었다. 어찌 된 일인가 둘러보았다. 내 잔은 팡 앞에 가 있고, 팡의 빈 잔이 내 앞에 와 있었다. 팡은 나와 눈이 마주치니 웃었다. 내가 졸다가 잔을 건드려 술을 쏟을까 걱정되었던 게 분명하다. 사려 깊은 팡. 덕분에 맘 놓고 다시 졸 수 있었다.

열한 시 오십 분. 공연이 끝났다. “켠아. 좋았어?” “응. 최고의 연주였어.” 켠의 얼굴에 ‘흡족’이라고 쓰여 있었다. “어디가 그렇게 좋았어?” 팡은 켠이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궁금해했다. 잠시 동안 음악을 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흥미로운 토론 주제였다.

기상시간은 배가 정한다. 내일은 여섯 시 기상이란다. 너무 빡세다. 누가 배에게 이 권한을 주었나. 넷이 술에 취해 별 얘기(사나의 일왕 관련 발언이 옳은지 그른지 같은, 우리의 삶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를 다 나누다, 세시 반이 넘었다. 더 늦기 전에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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