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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Aug 28. 2019

뉴욕 여행기 5일 차

2019.5.1.

여덟 시 반. 시차 적응은 끝났다. 여섯 시에 깨운다더니. 배도 무리해서 일정을 사수하진 않는구나. 그래 봤자 다섯 시간 잤다. 숙취가 있어 출근환을 먹었다. 알고 보니 배켠팡은 이미 알아서 출근환을 먹고 잤단다. 똘똘한 녀석들.


켠팡 순서로 씻었다. 숙소에 마실 물도 먹을 음식도 없었다. 팡이 씻는 동안 켠과 함께 장을 보러 나갔다. 나간 김에 스프레이를 사러 갔는데, 처음 찾아간 편의점은 문이 닫혀 있었다. 돌아오다 보인 곳에서 하나 샀다. 팡에게서 다 씻었으니 빨리 들어오라는 전화가 왔다. 아직 씻지 않은 내가 이미 씻은 켠을 두고 먼저 호텔로 돌아왔다.


부랴부랴 씻었다. 켠은 핫도그와 과일과 물과 음료를 사 왔다. 배는 왜 이렇게 오래 걸렸냐며 켠을 나무랐다. 켠 이름으로 예매해서 표를 찾으려면 켠이 꼭 가야 하는데, 시간이 촉박하단다. 켠은 그걸 몰랐다. 배켠은 서둘러 나갔다. 나도 빠르게 준비했다. 켠이 사온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팡과 함께 나왔다.


“어미새 없이 괜찮을까?” “그러게.” 배 없이 이동한 건 처음이다. 어느 전철을 타고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비로소 살펴보았다. 역에서 내려 지도를 보고 길을 찾았다. 터미널에서도 어디로 가야 할지 계속 확인했다. 배의 빈자리가 컸다.

켠배는 먼저 와 있었다. 열한 시 반 버스를 출발 직전에 간신히 탔다. 자리에 앉아 켠이 사온 핫도그를 먹었다. 짠데, 맛있었다. 뉴욕에 적응하고 있다.

열두 시 반. 우드버리 도착. 차가 안 막혀서 빨리 왔다. “뭐야. 완전 파주 아웃렛인데? 파주가 여기 따라 했나 봐.” “어. 같은 회사에서 만든 거야.” 농담이었는데, 실제로 같은 회사였구나. 나만 몰랐다. 웰컴센터에서 쿠폰북을 받고 지도를 챙겼다.

켠은 나이키를 좋아한다. 팡은 알마니를 좋아한다. 배는 브랜드에 얽매이지 않고 제품에 초점을 둔다. 나는 좋아하는 게 없지만, 오늘만큼은 뭘 좀 좋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배켠팡은 취향대로 흩어졌다. 나는 일단 배를 따랐다. 삭스 피프쓰, 버버리에서 아무것도 안 샀다. “근데 배야, 뭐 안 먹어?” “그럴 시간이 어딨어. 먹을 거 다 먹고 마실 거 다 마시면 언제 쇼핑하냐?” 내가 아는 배 맞나? 페라가모에서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많이 비싸졌네. 미끼상품 같은 게 거의 없어졌어.”

팡은 알마니 익스체인지에 있었다. 배와 함께 그리로 갔다. 둘은 한참 동안 물건을 뒤적였다. 나도 따라 뒤적여 보았지만, 특별히 당기는 상품이 없었다. “나 커피 좀 사 올게” 옆에 있던 스벅에 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벤티를 시켰다. 늘 친구들에게 맡기니, 혼자서는 커피를 주문하는 것도 어색했다. 커피를 들고 다시 알마니로. 팡은 이곳의 가격에 대단히 만족했다. 문제는 사이즈. 미디엄 사이즈가 많지 않아서, 팡은 아도를 못 쳤다. 겨우 쇼핑백 하나를 샀다.

밖으로 나와서 잠시 이야기했다. “내가 왜 여기 상품에 흥미가 없나 생각해봤어. 나는 평소 유니클로 애용한단 말야. 내 눈엔 타 브랜드의 비싼 옷과 별 차이가 없거든. 근데 여기 제품들이 정가보다 싸다고 한들, 유니클로만큼 싸진 않아. 그래서 관심이 없나 봐. 확실히 여행을, 그것도 친구들과 함께 하면 스스로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는 것 같아.” 팡이 공감했다. “그러게. 나는 내가 재즈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 배는 조언을 해 주었다. “그럼 폴로 가봐. 타미 힐피거나. 그런 거 한국에선 비싸잖아. 여기선 아마 유니클로보다 쌀걸?” 오후엔 폴로에 가봐야겠다.


두시 반. 식사 시간. 푸드코트에 중식당이 있었다. 반가웠다. 돼지, 소, 닭, 튀김, 볶음면, 볶음밥, 국수를 골고루 시켰다. 다 무난하게 먹을만했다. 먹으며 오전의 쇼핑에 대해 이야기했다. 켠은 여기가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싸지는 않다고 했다. “나이키 가보니까 3불짜리 티셔츠도 있고 그런데, 별로 내 취향은 아니야.” 3불짜리에 취향이 문젠가. “뭐야. 나이키 티가 3불이면 무조건 사야 되는 거 아니야? 그거 사러 가야겠네.” “그래, 그런 게 있다니까. 가격이 너무 싸서, 필요 없던 것도 일단 사게 돼. 여긴 그런 걸 사러 오는 데야.” 배가 정리해 주었다. 이따 나이키 가야지.

아메리칸 이글은 할인율이 높지 않았다. 존 바바토스에서 팡은 청바지를 샀다. 폴 스미스에서 배는 넥타이를 샀다. 휴고 보스에서 팡은 청바지를 사고 배는 넥타이를 샀다. “살수록 돈 버는 느낌이야.” 팡이 말했다. 알도, 클럽 모나코에서 아무것도 안 샀다. 울리치에서 팡은 여기 옷이 소재가 좋다 했다. “소재가 좋은지 어떻게 알아?” “이거 한 번 만져봐.” 만져보니 확실히 보들보들했다. 계속 만지고 싶은 촉감이었다. 이런 게 좋은 소재구나. 예쁜 쟈켓이 있었는데 270불. 비싸고 사이즈도 없어서 바로 내려놓았는데, 배 눈에도 예뻐 보였나 보다. 배가 입으니 딱 맞았다. 배는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두고 나왔다. 캘빈클라인에서 아무것도 안 샀다. 골든구스 신발은 왜 그리 비싼지 이해가 안 됐다. 디젤은 내가 보기엔 비쌌는데, 배는 싸다 했다. 그래 놓고 안 샀다.

나이키에 가니 켠이 있었다. 나이키에서 아예 거주할 생각인가? 매장을 대강 둘러보았는데, 생각만큼 싸지 않았다. “켠아, 3불짜리 티셔츠 어디 있어?” “저쪽에.” “어디?” “이거. 3불이 아니라 30불. 두 장에 30불.” “야 임마 3불이라매!” “3불짜리 티셔츠가 어딨어 임마. 이거 완전 도둑놈 심보네.” 아. 오늘도 이렇게 켠의 과장에 당했다. 두 장 30불도 싼 거긴 해서 입어보았는데, 안 이뻤다. 나는 그냥 팡 짐이나 지키며 앉아있었다. 팡은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한국에서보다 많이 싸다며 기능성 소재로 만든 드라이 핏 티셔츠를 권해줬다. 권해준 대로 티를 샀다. 바람막이도 하나 사라고 권해서, 팡 것과 똑같은 빨간색 바람막이를 샀다. 가만 보니 팡이 산 핑크 후드 집업도 이뻐서, 따라 샀다. 결국 팡이 산 옷들을 고스란히 따라 샀다. 132.19불

그사이 켠배는 생 로랑에 있었다. 팡과 함께 그리로 갔다. 배가 말하길, 켠 눈이 또 돌아갔단다. 켠은 여기서만 369불짜리 청남방과 330불짜리 신발을 샀다. 캬. 역시 한 방이 있는 남자다. 지름은 전염된다. 켠의 영향을 받아, 배도 망설이다 놓고 온 울리치의 쟈켓을 질렀다. 띠어리에서 팡은 바지를 샀다. 배는 반팔티를 샀다.


시간 참 빠르다. 여덟 시가 다 되었다. 배가 쇼핑 종료를 선언했다. “얘들아. 이제 그만. 여덟 시 십육 분 버스 타러 가야 돼. 그거 못 타면 막차야. 혹시 사람 많아서 막차도 못 타면 우리 오늘 뉴욕 못 가.” 벌써 끝이라니. 결국 폴로는 못 갔다. “야 이거 쇼핑이 하루로 부족하네. 이래서 일찍 일어나야 된다고 했었구나.” “그러니까. 내가 시간 없다고 했잖아.” 뉴욕 여행 중엔 배 말 들어서 손해 볼 게 없다. 우드버리 단체샷 한 장 못 찍고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이미 줄 서있는 사람이 많았다. 세어보니 우리 앞에 62명. 잠시 후 버스가 왔다. 당연히 우리까지 차례가 안 왔다. 들어올 땐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땐 아니란다. 우드버리에 해당하는 말이었다. 꾸역꾸역 한 시간을 서서 기다렸다. 아홉 시 좀 넘어 버스가 왔고, 여유롭게 탑승했다. 여행기를 쓰려했으나 너무 졸렸다. 폰을 손에 쥔 채 잠들었다.


뉴욕 도착. 너무 깊이 잠들었어서 정신 차리는 데 시간이 걸렸다. 터미널을 나와 근처의 파이브 가이즈로 갔다. “아쉽네. 우린 포 가이즌데.” “그러게.” 배가 받아줬다. 어떤 농담을 해도 리액션해주는 친구가 좋은 친구다. 팡은 햄버거에 밀크셰이크를, 진배켠은 베이컨 치즈버거에 콜라를, 그리고 감자튀김을 주문했다. 이 집 햄버거는 패티 두 장이 기본. 그러다 보니 열량이 어마어마했다. 베이컨 치즈버거는 무려 1060 Cal. 한입 베어 물으면 기름진 육즙이 입안으로 쫙 번졌는데, 적당한 양상추, 양파, 토마토도 같이 씹혀서 느끼하지 않았다. 심지어 짜지도 않았다! 뉴욕에서, 아니 어쩌면 이번 생에서 먹었던 햄버거 중에 가장 맛있었다. 감자튀김은 그냥 평범했다. 땅콩을 자유롭게 가져다 먹을 수 있었는데, 겉껍질이 까이지도 않은 땅콩이 짭짤하게 구워져 있어 신기했다.

듀안리드에서 장을 보았다. 처음 보는 미국 맥주를 한 캔씩 담았다. 어제 맛있게 마셨던 인삼 녹차를 샀다. 안주할 육포와 과자와 젤리를 샀다. 종이컵과 물티슈를 샀다. 전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하루를 온전히 쇼핑에 썼다. 켠은 ‘그래도 백만 원은 안 썼다.’며 스스로 안도하다가, 안선생님 선물을 계산에 넣지 않았음을 이내 깨달았다. 켠아. 너 그 선물 빼고도 충분히 백만 원 넘었을 거야. 팡은 바지 네 개, 티 네 개, 점퍼 세 개를 골고루 잘 샀다며 좋아했다. 팡아. 잘했어. 배는 울리치 쟈켓에 애착을 보였다. “이거 입고 이태원 가야지.” 배야. 너 정말 마음에 들어하는구나. 나는 내 쇼핑 스타일에 대해 알게 되었으며, 앞으로 무얼 살지 정했다. 다들 뭐 하나씩은 건진 하루였다.


출근환을 먹고 맥주를 마시며 여행기를 정리했다. 숙소에 테이블이 없다 보니 매일 각자의 자리에 누워 술을 마신다. 그래서 여행기 쓸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고 있다. “내일은 여덟 시 기상.” 배는 이렇게 말하고 먼저 잠들었다. 켠팡이 차례대로 코를 골았다. 세시 반. 내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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