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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Aug 28. 2019

뉴욕 여행기 7일 차

2019.5.3.

다섯 시 사십오 분. 벌써 밖이 밝다. 어제의 여행기를 정리하며, 어제 못 마신 맥주도 한 잔 마셨다. 켠은 일곱 시에, 배는 아홉 시에, 팡은 아홉 시 이십 분에 일어났다. 씻고 짐을 쌌다. 나는 원래 짐을 쌀 때 옷을 개지 않고 넣었었는데, 배켠팡이 개어 넣는 것을 보고는 이제 나도 개어 넣는다. 친구는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배팡이 씻는 동안 켠과 함께 나왔다. 켠은 화이트 노이즈는 질린다며 앱설루트 커피로 가자 했다. 드립 커피, 아이스 아메리카노, 연어가 들어간 크림치즈 베이글을 시켰다. 커피는 커피에, 베이글은 베이글에 사람들이 기대하고 예상하는 맛이 그대로 났다. 팡배의 커피와 베이글을 포장해서 숙소로 돌아왔다.

배팡이 짐을 싸는 동안 켠은 노래를 틀었다. 뉴욕 뉴욕 하는 노래. “이 노래, 이름이 뭐야?” “Empire state of mind.” 켠이 답했다. 배가 덧붙였다. “사람들이 이 노래는 다 알아도, 이름은 잘 몰라. 나도 몰라서 ‘뉴욕 뉴욕’ 검색했더니, 네이버 지식인에 ‘뉴욕 뉴욕 하는 노래가 뭐냐’는 질문이 올라와 있더라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에 이어, 생소한 뉴욕 노래들을 연속해 들었다. 어떤 노래든 다른 가사는 안 들리고 ‘뉴욕’만 들렸다.

짐을 로비에 맡기고 나왔다. 덤보 까지는 1.5킬로. “그 정도는 걷자.” 선선한 날씨가 걷기에 좋았다. 뉴욕은 흡연자 천국이다. 다들 아무렇지 않게 길빵을 한다. 나는 여러 차례 간접흡연을 했다. 흡연자와 금연자의 자유와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며 걸었다.

https://youtu.be/vz2fsJ0CyaU


덤보는 Down under the Manhattan bridge overpass의 약자다. 맨해튼 다리 아랫동네. 근데 뭐가 있어서 가는 걸까. 다리가 보이는 순간 깨달았다. “배야, 여기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 나온 거기네.” “응. 그 영화 말고도 엄청 많이 나와. 영화에서 이 장면 나온다, 그럼 브루클린이란 뜻이야. 그리고 브루클린에 산다는 건 가난하다는 의미지.” 포토그래퍼 켠이 구도를 잡았다. 적절한 위치에 삼각대를 세우고 섬세하게 각도를 조절했다. 사진이 공들인 만큼 잘 나왔다. 점프샷은 타이밍 맞추기가 어려웠다. 시행착오를 여러 번 겪은 뒤에야, 동영상으로 찍고 나서 캡처하면 된다는 걸 알았다. 켠의 다리가 유독 길었다.

호텔로 돌아와 맡긴 짐을 찾고, 다시 전철을 탔다. 마지막 이틀은 기분 좀 낼 생각에 타임 스퀘어의 w호텔을 예약했다. 체크인하니 웰컴 드링크로 샴페인을 준다. 기대 못한 선물이었다. “알코올 신나.” 팡도 신이 났다. 우리 방은 35층. 그러나 창 밖으론 건너편 빌딩이 보여, 솔직히 기대한 뷰는 아니었다. 창가에 붙어 고개를 돌려야 비로소 타임스퀘어가 보였다. 그래도 뭐, 워낙 위치가 좋으니까. 그걸로 만족해야지. 숙소에 짐을 두고 나왔다.


벌써 두시 반. 배가 고프다. 미뤄뒀던 버거 조인트로 갔지만, 줄이 너무 길어 다시 나왔다. 어떡하지? 배가 제안했다. “델리 갈래? 뉴욕 왔으면 델리 한 번 가 봐야지.” “델리? 인도 음식점이야?” “아니. 자기가 직접 가져다 먹는 곳이야. 그래서 팁도 없고 싸.” 미국 전문가인 팡이 답했다. 근처에 있던 스테이지 스타 델리에 들어갔다. 켠배가 메뉴를 고르는 동안 팡에게 물었다. “서부에도 델리가 있어?” “델리는 특정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식당의 시스템이야. 취향껏 가져다 먹는 시스템. 미국 어디에나 있어.” “예컨대 ‘뷔페’나 ‘기사식당’ 같은 거네?” “그렇지.” deli는 delicatessen의 약어다. 사전에는 ‘조리된 육류나 치즈, 흔하지 않은 수입 식품 등을 파는 가게’라고 나온다. 뉴요커 파니니, 햄버거, 햄버거 스테이크, 닭고기와 탄산음료를 주문했다. 싼 게 비지떡일 줄 알았는데 맛도 좋았다. 가성비 최고다.

모마(현대미술관)에 갔다. 어느덧 네 시가 넘어 사람이 많았다. 금요일 4시부터 8시까지, 유니클로에서 ‘free friday night’을 제공하는 까닭. 여기 사람들은 공짜 안 좋아하나 했는데, 아니었다. 사진 촬영도 자유로워 여기저기서 카메라 들고 찍어대는 통에 아주 그냥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었다.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앞에는 특히 사람이 많았다. 헤집고 들어가 인증샷 찍기도 바빴다. 감상할 여유는 없었다.

모마는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지원하고 있다. 기기를 대여하지 않아도, 웹사이트에 접속해 들을 수 있다. 키르히너의 <거리, 드레스덴>, 마티스의 <붉은 화실>과 <춤>, 뭉크의 <폭풍>, 앙리 루소의 <꿈>, 반 고흐의 <조셉 룰랭의 초상화>, 마크 로스코의 <16호(레드, 브라운, 블랙)>와 <바닷가의 느린 여울>, 헬렌 프랑켄텔러의 <야곱의 사다리>, 칸딘스키의 <에드윈 캠벨을 위한 패널 4호>, 몬드리안의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모네의 <수련>, 막스 에른스트의 <나이팅게일에게 위협받는 두 어린이>, 살바도르 달리의 <시간의 영속>, 잭슨 폴록의 <암늑대>, 메렛 오펜하임의 <오브제>를 들으며 보았다. 표현주의와 야수파 그림은 가이드를 듣다 보면 와 닿는 부분이 있었다. 앙리 루소는 세관원으로 근무하며 독학으로 미술을 시작한, 아마추어 화가였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반 고흐야 워낙 레전드. 초현실주의는 그냥 보아도 재미있다. 추상 표현주의는 가이드를 들으며 보아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사이 켠배는 이미 다 보고 먼저 숙소로 가 있었다. 3층에서 팡과 합류했다. 리히텐슈타인의 <번개>와 여러 이름 모를 작가의 다양한 작품을 보았다. 팡은 한국에서도 종종 전시를 보러 간다 했다. 우리는 전시를 보는 것이 여행을 하거나 술을 마시는 것처럼 신나지는 않지만, 뇌의 평소 쓰지 않던 영역을 쓰게 해주는 신선한 자극임을 이야기했다.

미술관 옆에는 정원이 있었다. 정원에 있는 사람들 모두 행복해 보였다. 우리도 정원을 거닐었다. “미술관이랑 박물관이랑 얘네한텐 다 museum인가?” 팡은 잠시 생각하더니 답했다. “그러네. 박물관과 구분하자면 뮤지엄 말고 gallery라는 단어를 써야겠다.” “갤러리는 화랑이라 번역하잖아. 그럼 화랑과 미술관은 무슨 차이지? 크기 차이인가?” “좀 그렇지. 아무래도 사람들이 미술관 하면 좀 규모가 있다고 생각하지. 웃긴 게, 우리 어머니가 갤러리 하시잖아. 화랑 하신다고 하면 사람들이 잘 몰라. 갤러리 하신다고 하면 다 끄덕끄덕하고.” “하긴. 화랑은 좀 생소해. 괜히 신라가 생각나고.” “그러니깐. 화랑, 화방, 화실을 잘 구분을 못 하더라.” 나도 잘 몰라서 물어봤다. “어떤 차이야?” “화랑은 알다시피 그림을 전시하고 또 판매하는 곳이고. 화실은 그림을 그리는 곳, 화방은 그림 도구를 파는 곳이야. 어릴 땐 어머니 화랑 하신다 그러면 ‘나중에 붓 싸게 달라.’는 친구도 있었어.” 팡의 어머님은 화랑을 하신다. 팡에게는 예술가의 피가 흐른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타임스퀘어에는 사람이 몹시 많았다. 목에 ‘민족사관고등학교 ㅇㅇㅇ’ 라는 명찰을 건 앳된 한국 아이들이 보였다. 수학여행을 왔을까? 저렇게 애들끼리 다니게 두어도 되나? 아니지, 나보다 영어도 잘할 텐데 괜한 걱정을. 스벅에서 커피를 사서 방으로 올라갔다.


배켠은 방에 있었다. 방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나왔다. 여덟 시. 전철을 타고 맨해튼 남부의 센츄리21로 갔다. 나와 배는 같은 모양의 카키색 레인코트를 샀다. 켠은 할인율 높은 품목으로 이것저것 알뜰하게 많이 샀다. 팡은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저녁은 버거 조인트 재도전. 세상에. 밤 열 시 반인 데도 줄이 있었다. 삼십 분 줄 서서 겨우 주문했다. 팡은 더블 햄버거, 진켠배는 더블 치즈햄버거를 시켰다. 버거 하나에 17불. 비싸다. 프렌치프라이와 각자의 음료를 시켰다. 버거는 금방 나왔다. 패티 두께가 애초에 일반적인 버거의 곱빼기 사이즈였다. 그런 걸 두 장을 넣으니 고기의 양이 어마어마했다. 고기 양을 생각하면 비싼 버거가 아니었다. 대신 야채의 양은 적어서, 나에겐 너무 느끼했다. 다 먹지 못하고 남겼다. 그러나 남긴 건 나뿐. 배켠팡은 다 맛있게 먹었다. 켠은 파이브 가이즈보다 여기가 더 낫다 했다.

숙소에 돌아왔다. 몹시 피곤했다. 피로가 쌓일 대로 쌓인 까닭일까? 나도 모르게 말투에 짜증이 섞였는지, 친구들이 나를 필요 이상으로 배려했다. 침대에 누워 켠이 따라준 위스키 한 잔을 마셨다. 잠이 온다. 이럴 땐 참지 말고 얼른 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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