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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Sep 03. 2019

허브에세이 - 콩나물

해장은 역시 콩나물국밥이죠.

따르릉. 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아침이다. 그러나 몸이 무거워 침대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스껍다. 간밤에 열심히 달린 대가다. 가까스로 일어나 출근해 보지만 상태가 영 아니다. 아휴. 적당히 좀 마실 걸.  


그렇게 어제의 자신을 뉘우치는 날에는 꼭 콩나물해장국을 먹었다. 뜨거운 국밥 한 숟갈 호호 불어 입 안에 넣고, 콩나물은 아삭아삭 씹어 삼켰다. 마치 참회 의식처럼 천천히. 뚝배기 바닥이 드러날 즈음엔 어느새 술이 깨고 있었다. 콩나물해장국은 언제나 자비로이 내 지난밤을 용서했다.


술 마신 이튿날까지 깨지 않고 남아있는 술기운을 ‘묵을 숙(宿)’ 자에 ‘취할 취(醉)’ 자를 써서 숙취라 한다. 이때 속을 풀기 위해 먹는 음식이 해장국이다. 여기서 퀴즈. 해장국을 한자로 어떻게 쓸까? 속을 풀어주는 국이니 왠지 ‘풀 해(解)’ 자에 ‘창자 장(腸)’ 자를 쓸 것 같지만, 틀렸다. 해장국의 원말은 해정국으로, 풀 해 자에 ‘숙취 정(酲)’ 자를 썼다. <동의보감>에도 술에 상한 것을 치료하는 처방으로 ‘해정탕(解酲湯)’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숙취 정 자가 낯설었던 탓일까? 숙취를 풀어주던 해정국이 와전되어 지금의 해장국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음주에 관대한 만큼 해장 문화도 많이 발달했다. 지역별로 다양한 재료를 넣은 갖가지 해장국이 존재하는데, 그 중 으뜸은 역시 콩나물해장국이다. 2017년에 565명의 직장인을 대상으로 어떤 해장음식을 선호하는지 조사한 결과, 콩나물해장국이 33%로 가장 높게 집계됐다. 맛도 좋고 효과도 좋기 때문이리라.


콩나물만큼 대중적인 나물이 또 있나. 실내에서 쉽게 생산하니 사계절이 제철이다. 콩나물무침은 어디서든 흔한 밑반찬이며, 아구나 해물을 찔 때는 콩나물이 주재료보다 더 많이 들어간다. 콩나물을 얹은 채 밥을 지어 간장에 비벼먹는 콩나물밥은 별미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콩나물시루에 콩을 넣고 물을 주어가며 직접 길렀다. 나도 어른들 따라 물을 줬었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나가는 모습이 어린 눈에 신기했다.


콩나물은 한약재이기도 하다. 한자로는 대두황권(大豆黃卷)이다. 대두(大豆)는 콩을, 황권(黃卷)은 노랗고 꼬부라진 싹을 의미한다. <동의보감>에는 대두황권에 대해 ‘성질이 평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 오래도록 뼈마디가 아프고 저리며 마비감이 있을 때, 근육이 결릴 때, 무릎이 아플 때 쓴다. 오장과 위에 맺힌 것을 없앤다. 길이가 5푼 정도 되는 것은 여성의 나쁜 피를 제거하니, 산모의 약에 넣는다’라고 나온다. 술독을 푸는 효능이 언급되지 않은 걸 보면, 아무래도 당시엔 콩나물해장국이 존재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먹어 보았다면 써넣지 않았을 리 없다. 현대의 수많은 연구가 콩나물의 숙취해소 효능을 뒷받침하고 있다.


언제 보아도 반가운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난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도 알아듣고 맞장구치는 지음(知音)들이다. 술이 술술 들어간다. 이미 주량을 넘겼지만 괜찮다. 이런 날은 좀 취해도 된다. 내일 정 힘들면, 그땐 콩나물해장국 먹으면 된다. 그러니까, 딱 한 잔만 더.


https://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905031524201&code=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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