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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Sep 03. 2019

허브에세이 - 차

티타임이여 오라.

재작년 여름 친구들과 함께한 홍콩 여행에 조금 생소한 일정이 있었다. 고급 호텔에서의 ‘애프터눈 티’. 무슨 차를 그렇게 비싼 돈 주고 마시냐는 의견도 있었으나, 여행 중에는 그곳의 고유한 문화를 향유해봐야 한다는 의견이 더 우세했다. 호텔엔 줄이 길었다. 우리는 한가로이 차를 마시는 여유를 즐기기 위해 장시간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게 모순이 아닌지, 아니면 줄서기야말로 마음과 시간이 여유로워야 가능한 행동인지, 그렇다면 여유란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기나긴 대기 끝에 맞이한 티타임. 한 친구가 찻잔을 들고 향을 음미하며 말했다.


“세계적으로 소득의 증가와 디저트 문화에 밀접한 연관이 있더라고. 국민소득 1만 달러가 되면 비로소 커피를 마시기 시작해. 그 전까진 디저트 즐길 여유가 없어. 그러다 국민소득 4만 달러가 되면 차 마시는 문화가 생겨. 차는 오랜 시간에 걸쳐 마시기 때문에 높은 금전적 여유를 바탕으로 한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음미할 수 있다는 거지. 아마 우리나라에도 머지않아 차 문화가 유행할걸.”


그날 우리는 홍차를 마셨다. 홍차(紅茶)는 녹차(錄茶)를 발효시킨 것이다. 찻물의 색이 붉어 홍차라 부른다. 중국이 원산지인 차가 유럽으로 전파되던 시기에 긴 운송기간 동안 향을 잃지 않는 홍차가 상인들의 선택을 받았다. 그 결과 지금까지도 동양에서는 녹차를, 서양에선 홍차를 많이 마신다.


차는 풀이 아닌 나무(차나무·camellia sinensis)다. 나무와 그 나무의 잎, 그 잎을 달인 물을 모두 차(茶)라고 부른다. 녹차, 우롱차, 홍차, 보이차 모두 같은 찻잎을 사용한 엽차(葉茶)다. 말차(末茶)는 찻잎을 갈아서 가루로 만든 차다. 넓은 의미의 차에는 차가 안 들어가기도 한다. 율무차, 유자차, 대추차, 생강차 등이다. 한자 茶를 때로는 ‘차’로 읽고, 때로는 ‘다’로 읽는다. 어느 경우든 뜻은 같다.


중국의 신화에 등장하는 신농(神農)은 온갖 식물의 쓰임새를 알기 위해 하나하나 직접 맛을 보고 관찰한다. 그러던 어느 날 독초에 중독돼 죽을 뻔하다가 찻잎을 먹고 기적적으로 살아난다. 차가 아주 오래전부터 음용되었으며 해독 효능을 갖고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동의보감>에는 차에 대해 ‘성질은 약간 차다. 맛은 달고 쓰며 독이 없다. 오래된 음식을 소화시키고, 굽거나 볶은 음식의 독을 푼다. 소변을 잘 보게 한다. 머리와 눈을 맑게 하며, 잠을 덜 자게 한다. 오래 복용하면 사람의 지방을 제거하여 야위게 만든다’고 나온다. 커피를 대신하기에 충분한 효능들이다. 특히 야위게 만든다는 부분이 솔깃하다. 식약처에서는 녹차 추출물이 항산화·체지방 감소·혈중 콜레스테롤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인정하고 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아직 티타임을 가진 적이 없다. 식후에 커피를, 밤에 술을 마셨지만 오후에 차를 마실 여유는 없었다. 우리나라는 작년에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돌파했으며, 4만 달러 돌파는 2023년에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소득이 높아지는 만큼 여유도 많아지기를, 그리하여 한국에도 차 문화가 유행하기를 기대해 본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dept=123&art_id=201905101717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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