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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Sep 04. 2019

태국 여행기 2일 차

2019.7.10.

눈을 뜨니 여덟 시. 네 시간밖에 안 잤는데 상쾌하다. 호텔 별로래 놓고 잘만 잤다. 잠시 후 형한테 콜이 왔다. 아침 먹으러 가자고. 형은 세 시간밖에 안 잤단다.


구글링 해서 찾아간 니욤 레스토랑엔 손님이 없었다. 형은 손님이 없는 곳은 불안하다며, 오다가 본 손님 많은 곳으로 가자 했다. 돌아가 보니 그곳은 다른 호텔의 조식 레스토랑이었다. 그래서 사람이 많았구나. 타 호텔 조식을 먹을 바에는 우리 호텔에서 먹는 게 낫지. 인당 235밧에 투숙객 할인 20%. 호텔 조식 치고는 참 단출한 메뉴. 그래도 볶음밥에 계란후라이가 맛있었다.

밥 먹고 각자 방에서 쉬었다. 나는 여행기를 썼다. 씻고 나오니 열두 시. 그랩으로 택시를 불러 서울이발소에 갔다. 교통 체계가 이상한 탓인지 걷는 것보다 오래 걸렸다.


이름부터 포근한 서울이발소는 코스가 한 가지라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바로 자리에 앉아 관리를 받았다. 발 각질 제거, 면도, 코털 정리, 얼굴 마사지, 오이팩, 귀 청소, 손발톱 손질, 팔다리 마사지, 발 마사지, 전신 마사지, 머리 감기, 세안, 머리 말리기로 이어지는 90분 코스가 700밧. 아아. 천국은 그곳에 있었다. 관리사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평생토록 잠들어있던 세포가 비로소 깨어나는 듯했다. 나는 반쯤 잠에 든 몽롱한 상태로 세상과 인생을 긍정했다. 평화로웠다. 서울이발소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방콕은 여행할 가치가 있는 도시다.

그런데 희형은 별로 만족하지 않았다. 마사지가 맞지 않는지, 오히려 기가 빨리는 느낌이라고. 사람은 제각각 다르다.


마사지받으니 배가 고팠다. 터미널21의 푸드코트에서 먹기로 하고 걸었다. 도중에 코리아타운이 보여 가보았는데, 희형은 그곳의 물가가 한국보다 더 비싼 것에 당황했다. 형. 원래 한식은 한국이 젤 싸여. 

다시 푸드코트로. 시스템이 독특했다. 카드에 먼저 요금을 넣고 쭉 결제한 뒤, 카드를 반납하면 잔액을 돌려받는 방식. 200밧 넣어서 쌀국수 두 그릇, 딤섬 여덟 개, 주스 두 잔을 사고 3밧 남겼다. 국물은 얼큰하고 면은 쫄깃했다. 딤섬은 속이 꽉 차 있었다. 주스는 진했다. 다 맛있었다. 그래. 이런 게 가성비지.

먹고 나니 네 시. 희형은 꾸벅꾸벅 졸았다. 일단 숙소에 들어와 쉬기로 했다. 오다 보니 형이 쌩쌩해져서, 힐러리 4에 들러 낮맥을 했다. 대낮부터 나이 지긋한 백형들이 종업원들과 당구치고 농지거리하며 사이좋게 놀고 있었다. 참 발랄한 도시다.

숙소에 돌아왔다. 나는 방에서 마사지를 한 번 더 받았다. 550밧 오일 마사지를 받아봤는데 서울이발소만큼 시원하지는 않았다. 끝나고 팁을 달라길래 20밧을 주니, 너무 적다며 100밧을 달라 했다. 그만큼은 못 주겠어서 적당히 60밧을 줬다. 100밧이래 봤자 고작 4천 원이지만, 그러려면 더 잘했어야지.

저녁 목적지는 카오산로드. 그랩으로 차를 잡았다. 요금 외에 톨비를 50밧 더 달라길래, 톨비가 얼마인지 유심히 봤더니 진짜 50밧였다. 여기 사람들은 사기는 안 치는구나. 카오산로드는 유명한 거리답게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호객 행위하는 종업원 반, 놀러 온 손님 반. 식당, 술집, 마사지숍, 옷가게, 타투숍 가게와 과일, 주스, 돼지 꼬치, 닭꼬치, 악어 고기, 혐오스러운 음식 - 전갈 지네 번데기 개구리 거미 등 - 을 파는 노점들이 줄지어 있었다. 물가가 우리 묵는 동네보다 쌌다.

거리를 한 바퀴 돌고 사람 많은 식당에 갔다. 새우볶음밥, 똠양꿍, 맥주와 생수를 시켰다. 이 나라는 밥을 잘 볶는다. 똠양꿍은 뉴욕에서 귀국 전에 먹은 맛이었다. 맥주가 커서 좋았다.

아홉 시가 되니 거리가 변했다. 노점상이 일제히 철수하고 술집은 볼륨을 높였다. 거리 전체에 흥이 넘쳤다. 이래서 카오산로드가 유명하구나. 카오산 1986이라는 곳으로 옮겨 한 잔 더 했다. 하이네켄 두 병에 치즈스틱. 맥주를 마시는데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한국인 같다. 형에게 톡 했다.


형. 옆에 한국인 같은데 인사해 볼까요? / 한국인은 맞는데, 뒤에서 아까 남자들 말 걸었다 까였어. / 와. 형 다 보고 있었구나? / 그럼. 이쁘잖아.


남자는 다 똑같다. 우리는 괜히 그분들께 지분거리지 않기로 했다.

반바지에 쪼리 차림으로도 입장이 가능하다는 카오산로드의 더 클럽에 갔다. 입장료 150밧. 음료가 하나 포함된 가격이다. 클럽 안은… 시원했다. 에어컨이 빵빵했다. 냉방이 충분했다. 온도가 낮았다. 사람이 적었다. 여러모로 핫한 곳은 클럽 안보다 바깥이었다.

나만 노잼이었나? 희형은 야광팔찌 차고 음악 듣는 것만으로도 신이 난 듯했다. 어둡지만 사진을 몇 장 찍었다. 형이 스스로 기뻐 보여서 마음 편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여행기를 쓰고 하스스톤 일퀘를 깨고 페북을 하고 웹툰을 봤다. 클럽에서. 시원하고 쾌적했다.

숙소까진 다시 택시를 탔다. 그랩 부르려다 서 있는 차들을 이용하기로 했다. 툭툭이보다 택시가 쌌다.


"형. 방콕 떠나기 전에 나나플라자 한 번 더 가볼래요? 인터넷 검색해보니, 엄청 예쁜 레이디보이들이 있대." 성 정체성이 흔들릴 정도라는 그분들의 미모가 궁금해서 나나플라자를 다시 찾았다. 그런데 들어서자마자 너무 예쁜 여자들이 우리더러 들어오라 손짓을 하는 게 아닌가. 눈이 휘둥그레질만한 미모였다. 우리는 본래의 목적을 잊고 그리로 들어갔다. 롤리팝.


어제처럼 우리끼리 가볍게 맥주나 마시고 나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입구에서 본 여자들이 우리 쪽으로 와서는 옆에 앉겠다고 졸랐다. 옆에 앉히면 그 여자의 음료를 사야 한다. 우리는 당연히 사양했지만, 단호히 거절하기엔 너무 아름다웠다. 몇 번 웃으며 사양하다 보니 어느새 옆에 앉아 있었다. 오케이. 술 주세요. 서투른 영어로 몇 마디 나누다 불현듯 스친 생각. 혹시 이 사람들도?! 나는 태국어 번역기로 질문했다.


당신은 레이디보이 입니까?


여자는 질문을 읽더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헐. 가끔 인터넷에서 여자보다 더 예쁜 트랜스젠더 사진을 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건 처음이었다. 무척 혼란스러웠다. 성 정체성이 흔들린다는 게 이런 말이었나. 내친김에 술집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레이디보이인지 물었다. 좀 예쁘다 싶으면 어김없이 레이디보이였다. 문화 충격. 그렇담 미모는 무슨 의미인가. 색즉시공 공즉시색.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 잔 더 하러 갔다. 어제 갔던 힐러리 1. 어제와 같은 일은 당연히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어제 그 사람들도 혹시?! 충격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조용히 마시다 들어와서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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