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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Sep 04. 2019

태국 여행기 3일 차

2019.7.11.

아홉 시. 숙취가 있다. 어제 많이 마셨구나. 희형도 숙취가 있는지 아침 먹자는 말이 없었다. 늑장 부리다 열한 시 반에 나왔다. 어제의 충격이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 공항 가는 길에 계속 어제 이야길 했다.


형. 근데 진짜 이쁘지 않았어요? / 그럼. 심지어 목소리도 예뻤어. / 그러니까. 골격도 여자 같았는데. / 혹시 걔네가 거짓말한 건 아니겠지? / 에이. 그럴 이유는 없죠. / 진짜 신기하다 신기해.


돈므앙 국제공항 도착. 체크인하고 밥을 먹었다. 새우 볶음밥. 이 나라가 밥을 잘 볶는다. 후식으로는 오렌지 스무디를 주문했는데, 탑승 시간이 촉박하여 반만 먹고 버렸다. 형이나 나나 대책 없이 느긋했다. 보안 검색대를 지나서는 캐리어를 들고뛰어야 했다. 간신히 출발 전에 도착.

치앙마이까지는 한 시간 십 분. 이륙 후 뭘 나눠주길래 봤더니 물이었다. 병 디자인이 귀여웠다. 목이 말라 다 마셨다. 비행기는 금방 착륙했다.

공항에서 목이 말라 스벅에 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란데, 150밧. 이 나라 기준으로는 밥 한 끼 가격을 한참 웃돈다. 그렇담 여기에 스벅이 처음 들어올 때에도 된장녀 논란 - 스타벅스 이용하는 여자더러 밥보다 비싼 커피를 마신다며 비하하는 -  비슷한 게 있었을까? 문득 궁금했다.

택시 타고 치앙마이 아케이드로 이동. 택시 몇 번 타보니, 태국에선 바가지요금 같은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여행하기 참 좋은 나라다. 아케이드 뒤쪽의 avia부킹에서 빠이행 티켓을 사고, 미리 준비해 온 멀미약을 먹었다. 길이 워낙 험하니 반드시 멀미약을 복용하라는 양작의 가이드에 따른 것이었다. 양작은 되도록 앞자리에 앉으라는 말도 덧붙였지만, 이미 자리가 차서 앉을 수 없었다.

차는 버스가 아니라 15인승 밴이었다. 승객은 여러 인종이 섞여 있었다. 셀카를 찍는데 뒤에 앉은 백인 청년이 함께 웃었다. 덕분에 기분이 더 좋아졌다.

밴은 세 시 반에 출발했다. 한 시간 정도는 평탄한 길을 가더니, 네 시 반부터 계속 구불구불한 산길을 탔다. 멀미약 덕분에 멀미는 나지 않았지만, 몸이 계속 좌우로 흔들려 힘들었다. 다섯 시 십 분, 휴게소에서 십오 분 정차. 화장실을 다녀오고, 코코넛 망고 맛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노맛이었다.

여섯 시 반. 빠이 도착. 심향을 운영하시는 초연스님께 톡을 보내 도착을 알렸다. 태국인인 미스터 조가 스쿠터를 개조한 툭툭이 같은 걸 타고 우릴 픽업 나왔다. 거기에 앉아 바람을 맞으니 이미 신났다. 시내에서 심향1 까지는 오토바이로 5분 거리. 초연스님은 일단 밥부터 차리며 우릴 편안하게 맞이해주셨다. 3일 만에 먹는 한식. 몇 가지 반찬과 미역국, 된장국, 짬뽕을 내어주셨다. 정성은 느껴졌지만 내 입엔 약간 짰다. 반면 희형은 아주 맛있게 먹었다.

시설 이용에 대한 안내를 받고 스쿠터를 빌렸다. 형이랑 나랑 각자 한 대씩. 미스터 조가 우리 대신 시내에서 빌려다 주었다. 오래 묵은 것 같아 보이는 투숙객의 안내에 따라 스쿠터를 타고 우리가 묵을 곳인 심향2로 이동했다. 오랜만에 타니 아주 재미났다. 스쿠터로 통학하던 복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우리나라와 차선이 반대인 것도 금방 적응했다.


숙소는 아주 좋았다. 널찍하고 깔끔했다. 트리플 베드룸을 형 쓰시라 하고 더블 베드룸에 짐을 풀었다. 원래 짐 풀자마자 다시 심향1으로 가려했는데, 멀미약이 풀리며 생기는 부작용인지 갑자기 몸이 좀 무거워졌다. 베드에 누워 쉬는 동안 비까지 오기 시작했다. 에이, 오늘은 못 나가겠다.

빠이에는 한국인들이 이용하는 심향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여행객 입장에서 보기엔 게스트하우스인데, 스님은 게스트하우스가 아니라 하셨다. 돈을 벌 목적으로 하시는 게 아니라는 의미리라. 스님의 법명은 초연. 식사도 이 분이 만드신다. 정말 독특한 스님이시다. 여기 묵는 동안 많은 이야길 나눠봐야지. 현재 심향은 두 곳이다. 편의상 심향 원, 심향 투로 부른다. 심향1은 하나의 커다란 저택이고, 심향2는 2인실, 3인실, 욕실, 거실로 이뤄진 집이 다섯 채 모여 있는 공간이다. 둘 사이의 거리는 오토바이로 오 분 정도. 심향1에는 여행객들이 모여 함께 술 마시며 이야기 나누는 공간이 있다. 거길 가야 하는데 지금 발이 묶였다.


다행히 비는 얼마 안 있다 그쳤다. 오예. 스쿠터를 타고 빠이 시내로 갔다. 스쿠터로 7분 정도. '시내'라기엔 면단위의 번화가 크기밖에 안 되니 '면내'라고 해야 할까. 작고 조용한 마을을 서양인 여행객들이 채우고 있었다. 라이브 연주가 펼쳐지는 분위기 좋은 술집이 여럿인데, 그중 why not bar에 손님이 가장 많았다. 노점에서 형은 닭꼬치를, 나는 돼지 꼬치를 사 먹었다. 각각 20밧. 맛은 그냥 먹을만한 정도.

슈퍼에서 맥주를 사고,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샀다. 혹시 심향1에 아직 사람들이 놀고 있을까 궁금해서 가봤는데 아주 조용했다. 열 시 반 밖에 안 되었는데. 여기 사람들은 일찍 자나? 심향2 숙소에 돌아와 전기포트에 물을 올려놓고서야 젓가락을 안 챙겼음을 깨달았다. 거 참. 젓가락 좀 챙겨주지. 한국에선 다 알아서 주는구만. 센스 없는 직원 같으니. 우리가 못 챙겨놓고 괜히 직원 탓을 했다.

젓가락 때문에 다시 스쿠터를 탔다. 괜찮다. 스쿠터 타면 신나니까. 신이 나서 노래를 부르다가, 벌레가 입에 들어와 목젖에 부딪혔다. 퉤퉤. 빠이에서 스쿠터를 탈 때는 아무리 신이 나더라도 절대 노래를 불러선 안된다. 다시 편의점. 일회용 젓가락이 보이지 않았다. 직원한테 물어봐도 모르는 눈치. 하는 수 없이 10밧 주고 구매했다. 다시 숙소. 물을 부으려고 컵라면 뚜껑을 여니 일회용 포크가 동봉되어 있다. 아, 이래서 젓가락을 안 준 거였구나. 여기 사람들에겐 젓가락보다 포크가 친숙하구나. 직원은 애초에 잘못이 없었구나.

매울 신 대신 매울 랄 자를 쓴 랄라면은 신라면과 흡사한 맛이었다. 카피를 아주 제대로 했다. 맛있어서 국물까지 다 먹었다. 배가 불러 맥주는 많이 못 마셨다. 열두 시 반. 방에 들어와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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