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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Sep 05. 2019

태국 여행기 7일 차

2019.7.15.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대학교도 아닌 고등학교. 아니, 중학교인가? 숨막히는 입시지옥을 어떻게 견뎌내야 하나 걱정하다가 잠에서 깼다. 여기는 빠이. 나는 서른 아홉 백수. 밖은 아직 어두웠다. 안도해야 하나 슬퍼해야 하나 잠시 헷갈렸다. 다시 잠들었다 일어난 것은 여덟 시. 밖이 밝다. 스님께 톡이 와 있었다. 그에 답해드렸다.


(하늘 사진)
굿모닝
어이구 하늘이 예쁘네요
좀 있다가
닭죽 자시러 오시는게 아주아주 좋은날의 시작
(고양이 뒹구는 영상)
예 알겠습니다 스님 ㅎㅎㅎ

희형과 함께 방을 정리했다.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고 빨래를 모았다. 숙소에서 나와 스쿠터를 타려는데, 키를 꽂고 아무리 돌려도 돌아가질 않았다. 이것 저것 만지다 실수로 레버를 올려 키 꽂는 구멍을 막아버렸다. 올릴 땐 쉽게 올라간 레버가, 반대로는 아무리 힘을 줘도 절대 내려오지 않았다. 오토바이 정비소에 가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에 마침 현지인 아주머니가 스쿠터를 타고 나타났다. 우리는 도움을 요청했고, 답은 바로 나왔다. 열쇠 뒤쪽의 육각 렌치로 돌려야 한다는 것. 그렇게 열쇠구멍을 다시 열었지만, 열쇠가 안 돌아가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 때 형이 말했다. "야, 니꺼 저거 아니야?" 그 쪽을 보니 똑같이 생긴 스쿠터가 하나 더 있다. 여기 저기 금이 간 상처를 보니 내 것이 맞다. 바보처럼 남의 스쿠터에 열쇠를 꽂고 소란을 피운 것이다.

심향1으로 와 닭죽을 먹었다. 죽이 심심하여 짭짤한 반찬들과 잘 어울렸다. 한 그릇 다 먹고 반을 더 먹었다. 그사이 스님은 우리에게 월요시장을 권해주셨다. 매주 월요일마다 근처에 장이 서니 보고 오라고.

우리나라 시골에는 5일장이 선다. 나는 그것이 상설시장이 생기기엔 작은 규모의 상권에 생긴다고 고등학교 때 배웠다. 그렇다면 이 곳은 상권이 그보다 더 작아서 7일장이 서는 걸까. 그렇담 토요일 일요일에 장이 서는 곳은 개중에 그나마 상권이 큰 곳일까. 아니면 여기 상인들은 주중에만 장을 서고 주말에는 쉬는 걸까.


월요시장은 볼만 했다. 넓은 공터에 여러 상인들이 천막을 치고 채소, 과일, 정육, 꼬치, 소세지, 옷, 신발, 철물, IT기기 등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팔고 있었다. 갓 잘려진 고기에 파리가 들러붙고, 사람들 사이를 주인 모를 개가 함께 거닐었다. 백화점 푸드코트처럼 시장 중앙에서 쌀국수를 팔고 있었다. 어렸을 때 보던 시골 장날 풍경도 이랬었나? 비슷했던 것 같다. 망고를 몇 개 샀다. 개당 10 바트도 안 되었다.

다시 심향1. 빨래를 꺼내 널고 쉬려는데 형이 장기를 두잔다. 그렇담 이번엔 IP버거 내기. 내가 한을 잡았다. 우리가 장기를 두는 동안 울님이 내려왔는데, 아재 둘이 여행와서 장기나 두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여러 볼만한 곳과 먹을만한 곳을 추천해 주셨다. 추천해 주신 곳 중 특히 투 시스터즈는 구글 평점이 무려 4.9였다. 그래. 오늘 점심은 여기다. 중반에 실수로 차를 먹혀 질 뻔 했지만, 형이 더 많이 실수했다. 이번에도 이겼다.

형. 바로 투 시스터즈 고? / 벌써? 난 아직 배가 안 고파. / 그럼 가서 쉬세요. 저 마사지 받고 있을게요. / 그래. 끝나고 연락해.


형과 헤어져 PTTM으로 오는 길. 문득 스쿠터를 타는 현지인들에 눈길이 갔다. 이곳의 사람들에게 스쿠터는 주요 이동 수단이다. 아직 어려보이는 아이들이 자기보다 큰 스쿠터를 몬다. 엄마를 태우고, 갓난쟁이 동생을 등에 업고 스쿠터에 탄다. 아이 셋이 한 스쿠터에 탄 것도 보았다. 엄빠에 아이 둘까지 4인 가족이 한 스쿠터에 탄 것도 보았다. 이곳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스쿠터를 무어라 가르칠까. 적어도, 위험하니 절대 타지 말라고는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늙기 전까지 타셨던 붉은 색 낡은 오토바이를 떠올렸다. 나 어릴 적에, 아버지는 그걸 타시고 오락실에 있는 날 잡으러 다니셨다. 내가 어른이 되기 전에 수명이 다해서 나는 그 오토바이를 타본 적이 없다. 아버지는 오토바이를 타며 어떤 느낌이셨을까. 바람을 맞아 신이 나셨을까. 때로 비를 맞아 고생하셨을까.


PTTM 도착. 사장님이 날 알아보시고는 jin? 하며 미소를 지으신다. 예스. 사와디캅. 나도 웃으며 인사했다.  오늘은 300바트 오일마사지를 받았다. 어디도 아프지 않고 마냥 시원했다. 한시간이 찰나 같았다. 팁으로 50바트를 드렸다.


형 나 끝. / 오케이. 그리로 갈게. 


형과 함께 투 시스터즈로 갔다. 울님에게 추천받은 팟카파오무쌉을 주문했다. 한국의 제육덮밥에 가까운 메뉴. 완전 맛있었다. 마늘과 고추도 적당히 들어가, 한국인이 싫어할 수 없는 맛이었다. 후식으로 나온 패션후르츠 주스도 일품이었다. 이렇게 맛있는데 고작 인당 50바트. 은혜롭다.

식사 후. 형은 심향2에서 쉬겠다 했다. 나는 심향1으로 갔다. 해먹에 누워 맥주를 마셨다. 강아지와 고양이들이 장난치고 다투는 걸 구경했다. 범울커플과 얘기를 나눴다. 두 분 모두 아무 연고도 없는 나에게 굉장히 호의적이었다. 그들은 마치 도움을 주고 싶어 안달난 듯이 보였다. 정말 좋은 사람들이다. 고마웠다.

시간이 남는다. 혼자 발마사지를 받으러 왔다. PTTM은 자리가 없어 어제 왔던 마스털리 마사지로 왔다. 오늘은 남자분이 주물러 주셨다. 어제처럼 시원했다. 팁으로 40바트를 드렸다.


희형과 함께 석양을 보러 갔다. 울님께 추천받은 sundown playground. 의외로 높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음료를 한 잔씩 시키고 앉았는데, 기님이 보인다. 다른 한국인 남자 한 분, 여자 두 분과 함께 동행중이었다. 그래서인지 기님의 표정은 우리와 같이 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밝았다. 이해했다. 부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일몰을 기다리는데, 해가 안 내려왔다. 알고보니 하늘에 구름이 많아 해는 이미 오래전에 저 산너머 걸린 구름 뒤로 숨어버린 뒤였다. 뭐야. 이럴 거면 왜 왔어.

저녁엔 스님께서 곱창을 준비하셨다. 맥주 좀 사들고 심향1으로 갔다. 오늘 저녁 멤버는 범울커플까지 넷. 어째 점점 사람이 줄어든다. 스님이 양념에 재워두신 곱창과 삼겹살을, 오로지 범님이 혼자 구웠다. 곱창이 냄새도 없고 맛있었다. 다 먹고 나서 설거지도 범울커플이 다 했다. 이 쯤 되면 고맙다 못해 미안할 지경. 내일 출근환이라도 좀 드려야 겠다.

밥먹다 노래방 얘기가 나왔다. 
"여기 노래방이 있던데요?" 희형은 심향 노래방을 이야기한 것이었다. 아무도 이용하지 않는.

"네. 여기 가라오케 있어요. 가보진 않았지만." 울님은 빠이의 가라오케를 묻는 줄 알고 답했다.
"빠이에 가라오케가 있다고요?" 내가 놀라 되물었다.
"그럼. 내가 여기 가라오케 1호 손님이야. 예전에 내가 미얀마에 있다가 거 손님들 데리고 넘어왔을 때…" 스님의 일장 연설이 이어졌다. "전화할 때마다 여자가 늘어나더니 어느새 열명이 와 앉았어. 다들 애 엄마야. 자기 애 믹일라고 일 나온거지. 그래도 젊고 이뻐. 얘기 들어보니 남편이 오토바이 사고로 죽은 사람, 남편이 약 하다가 걸려서 감옥 가있는 사람, 별 사람이 다 있는기라. 그래 노래 다 부르고 집에 가려는데 야들이 우리 집에 막 따라 간다케." 스님의 말씀은 거기서 멈췄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꿀꺽. 다들 침을 삼켰다. 참다못한 내가 여쭈었다. 
"그래서요 스님. 어떻게 하셨어요."
"어떡하긴 뭘 어떡해. 시간이 이미 열한신데. 다 집에 보냈지." 

스님이 거짓말하진 않으시리라. 우리는 몇 가지를 더 여쭈었다.


거기 혹시 한국 노래도 있나요? / 에이 그런게 어딨어. 시설이 아주 형편없다니까. / 그게 몇 년 전인가요 스님. / 벌써 13년 전이라. / 그럼 그 동안 한국 노래가 들어왔을 수도 있으니 가서 확인해 봐야겠네요. 위치가 어디죠?


가라오케는 우리 숙소 근처에 있었다. 늘 지나다니던 길인데 한 번도 못 봤다. 이번엔 스쿠터를 아주 천천히 타며 주의깊게 살폈다. 같은 길을 두 번 오가고서야 겨우 꺼져있는 간판을 찾았다. 이러니 못 봤지. 그런데 도저히 안쪽으로 들어갈 엄두가 안 났다. 너무 조용해서, 마치 저 안엔 꼬리 아홉 달린 여우라도 있을 것 같아서, 차마 못 들어가고 숙소로 돌아왔다. 

편안히 맥주를 마시다보니 희형이 좀 용감해졌다.


진아. 다시 한 번 가보자. 뭐 별거 있겠어? / 오케이. 대신 형이 앞장서요. / 내가?! / 그럼요~ 형이잖아!


이럴 땐 동생인게 참 편리하다. 혹시 모르니 돈은 조금씩만 쥐고 나왔다. 스쿠터를 타고 가라오케 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인기척이 들렸을 텐데 아무도 마중나오는 사람이 없다. 불은 켜져 있지만 노래 부르는 소리도 없고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문을 두드릴 용기가 없어 돌아 나왔다. 우리는 쫄보다.

휘영청 달밝은 밤. 숙소에 돌아와 맥주를 마셨다. 희형은 태국 여자를 만났을 때 이 말 한마디쯤은 해야 한다며 태국어로 사랑해를 연습했다. 나도 따라 연습했다. 처음엔 멋도 모르고 "찬 락 쿤"(여성이 남성에게)을 연습하다, 더 검색해보고 뒤늦게 "폼 락 쿤"(남성이 여성에게)을 연습했다. 번역기에 대고 말 했을 때 '사랑합니다.'라는 번역이 나오면 성공. 그러나 둘 다 발음이 좋지 않아 번역기가 잘 알아듣지 못했다. 에라이. 나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여행기를 썼다. 쓰다가 눈이 감겨, 양치하고 더 썼다. 다시 눈이 감긴다. 열 시 사십 분. 그만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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