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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Sep 05. 2019

태국 여행기 8일 차

2019.7.16.

일곱 시 반. 새 지저귀는 소리에 깼다. 닭 울음보다 한결 고급지다. 아, 하긴 닭도 조류구나. 닭아 미안해.


아침부터 맥주를 마시며 신라면, 참치, 망고를 먹었다. 어제 못 쓴 여행기를 마저 썼다. 다 쓰고 나니 열 시.

형. 오늘 뭐 할 거예요? / 글쎄. 일단 마사지나 받고 와. 올 때 샴푸도 좀 사 오고.


PTTM으로 갔다. 역시 날 알아보시는 사장님. 사와디 캅. 그런데 오늘은 big buddha day라 직원들이 다 절에 가 있어서 열한 시에나 시작한단다. 예약하겠냐는 걸 괜찮다 하고 나왔다. 형이랑 수영장이나 가야지. 왓슨스에서 야돔과 선크림을 사고, 세븐일레븐에서 샴푸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왜 벌써 왔냐. / 오늘 열한 시 부터래요. 공휴일이라. / 열한 시 다 되었는데? / 에이. 아까 숍 갔을 당시엔 한참 멀었었지. 형. 우리 수영장이나 가요. / 수영장이 있어? / 사람들이 수영장 얘기 한참 했잖애. 좋은 데 많대요. / 됐어. 난 수영장 별로야. / 에이. 그럼 나 마사지받으러 가요. / 다녀와.


다시 PTTM. 그새 한 시간이 지나서 열한 시 반이었다. 사장님이 다시 나와 나를 보고는 난처한 표정으로 어딘가 전화를 걸었다. 통화를 마친 사장님은 직원들이 다 식사 중이라 못 온다며, 지금이라도 예약하길 권하셨다. 직원들을 상주시키지 않고 필요할 때만 일을 시키는 PTTM의 근무환경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허나 나는, 예약하고 기다렸다 받을 정도로 충성스러운 고객은 아니었다. 정중히 사양하고 밖으로 나왔다.


차선으로 택한 곳은 당연히 두 차례 갔던 마스털리 마사지. 여기는 언제나 충분한 수의 직원들이 대기 중이어서 퇴짜 맞는 법이 없다. 한 시간 반 타이마사지를 받았다. 확실히 PTTM과는 주무르는 코스가 좀 다르다. 어쨌든 충분히 시원했다. 팁으로 50밧을 드렸다.


다시 숙소로. 형은 나갈 채비를 다 하고 있었다.


가자. / 어디 가시게요. / 그 멀다던 데. / 반 자보? 그럼 밥은요. / 일단 먹고 가자. 어제 갔던 데. / 투 시스터즈? / 어 거기. / 오케이 고고.


기껏 찾아간 투 시스터즈는 공휴일 휴무였다. 형이 나에게 물었다.

밥 어떡할래. / 형. 나는 다 좋아요. 찾아가서 먹어도 되고, 아무 데나 들어가서 먹어도 되고, 심지어 안 먹어도 돼. 원래 한국에선 찾아가서 먹는 스타일인데, 지금은 여행 중이니 다 돼요. 형 맘대로 해요. / 그럼 가다가 식당 보이면 먹자. 지금 배고프니까. / 오케이.


식당은 큰길로 들어서자 바로 나왔다. 나는 소고기 쌀국수를 시켰다. 형은 어제 먹은 팟카파오무쌉을 주문했는데, 밥이 다 떨어졌다 하여 나와 똑같은 국수를 시켰다. 파인애플 주스도 두 잔 시켰다. 주스는 실망스러웠다. 과일을 갈아서 만든 게 아닌, 쿨피스에 얼음 탄 맛이었다. 국수는 먹을만했다.

목적지까지는 바이크로 한 시간 이십 분. 일단 기름부터 가득 채웠다. 우리가 갈 길은 1095번 국도. 속도는 대강 60킬로. 사고 나면 최소 중상. 무조건 안전제일. 맘 단단히 먹고 출발했다. 부릉부릉.


길은 언제나처럼 한산했다. 오토바이 타는 맛이 났다. 20분쯤 가니 꼬부랑 오르막길이 나왔다. 치앙마이에서 올 때 지나온 길. 밴 안에서는 그저 멀미를 유발하는 길이었지만, 바이크 위에서는 완전 레이싱 코스가 따로 없었다. 지루할 틈 없이 몸을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기울이며 무수한 코너를 돌았다. 짜릿했다. 이만한 액티비티가 또 있을까. 빠이의 최고 관광상품은 단연 스쿠터 라이딩이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나는 여러 번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다 갑자기 체크 포인트가 나왔다. 예상 밖의 일이었다. 구글 지도를 켜니, 1시간 20분이던 예상 소요 시간이 2시간 22분으로 늘어나 있었다. 그렇다. 한 시간 동안 반대로 온 것이다.


형. 잘못 온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 / 뭐야 그런 거였어? ㅋㅋㅋㅋㅋㅋㅋ / 에이, 그래도 재밌었잖애. / 그래. 이런 길 언제 또 타보겠냐. 살면서 스쿠터 이렇게 재밌게 타본 거 처음이다. / 그러게요. 이게 레저고 이게 액티비티네. / 그러니까. 어쨌든 검문 중이니까 돌아가자. / 그래요. 반 자보까지는 두 시간 이십 분 이라는데, 일단 가봅시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갈 때만큼, 아니 속도가 붙으니 올라갈 때보다 더 재밌었다. 바이크 라이더들이 왜 목숨 내놓고 바이크를 타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다시 한 시간을 돌아와 빠이에 도착할 즈음, 형은 비도 올 것 같으니 빠이에서 잠시 쉬었다 가자 했다. 그 말은 적중했다. 말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장대비가 내렸다. 하늘이 열린 듯 퍼붓는 비를 맞으며 겨우겨우 숙소로 돌아왔다. 거세게 내리던 비는, 젖은 옷을 벗고 샤워를 마칠 즈음 거짓말처럼 그쳐 있었다. 하. 이게 스콜이라는 건가?

네 시 반. 어쨌든 숙소에 들어온 김에 맥주 마시며 여행기를 썼다. 희형은 피곤했는지 잤다. 여섯 시 반. 형이 일어났다.

저녁 드셔야죠. / 일단 빨래부터 돌리자.


심향1. 세탁기에는 이미 다른 사람 빨래가 돌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빨래를 두고 IP버거로 왔다.


IP버거는 버거퀸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범울커플에게 추천받은 검증된 맛집이다. 나는 스페셜 비비큐 버거를, 형은 더블 미트 버거 세트를 시켰다. T본 스테이크가 350그램에 380밧(15,200원)으로 쌌다. 친구들에게 이 가격이 어떤지 물어보았다. 팡이가 답했다.

"비둘기도 그거 보단 비쌀 걸." 그래서 하나 테이크아웃. 

버거는 나오는 데 오래 걸렸다. 기다리며 모기에 많이 물렸다. 모기가 많은 건 정말 이 곳의 단점이다. 한참 뒤 나온 버거는 들은 대로 도저히 한 입에 넣을 수 없는 사이즈였다. 이리저리 잘라 포크로 찍어 먹었다. 양이 너무 많아 빵은 남겼다. 가성비로는 버거퀸보다 한 수 위. 그러나 맛은 근소한 차이지만 버거퀸 쪽을 들어주고 싶다.

저녁을 먹고 aya service에서 내일 치앙마이로 가는 티켓을 예매했다. 오후 세 시 반. 느긋하게 준비해도 된다. 오늘이 빠이의 마지막 밤. 야시장을 새삼스레 구경했다. 첫날밤 볼 때와 왠지 다른 기분이었다. 술집은 다 닫혀 있었다. 태국에선 Big buddha day에는 주류 판매가 금지다. 그래서 오늘과 내일은 술을 못 산다. 술집에서도, 마트에서도. 하지만 걱정 없다. 이걸 다 알아서 어제 미리 술을 사재기했으므로.

술은 같이 마셔야 맛있다. 숙소의 맥주를 챙겨 심향1으로 갔다. 범울커플이 오길 기다렸다가 같이 술판을 벌였다. 어제 무서워서 가라오케에 못 간 얘기와 번역기에 대고 태국어로 사랑 고백한 얘기를 했다. 울님께서 그걸 듣고는 쑤워이막막도 해보라길래, 직접 번역기 대고 해보니 '매우 아름답다'라는 결과가 나왔다. 오호라. 폼락쿤에 이어 쑤워이막막까지 배웠으니, 이제 태국 여자를 만나기만 하면 된다. 후후.

범울 커플에게 여행 꿀템인 현대 다이너스 카드 이야기를 들었다. 연회비 5만 원에 전 세계 대부분의 라운지를 무제한 이용 가능한 카드. 두 사람은 이 카드로 이미 수십 곳의 라운지를 이용했단다. 세상에 이런 카드가 있었다니. 나는 카드의 존재 자체보다, 주위에 여행 박사들이 수두룩한 내가 그 카드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작년에 단종된 카드라 이제는 가입할 수도 없다. 안타깝다.


도중에 새로운 분이 합류했다. 우리가 왁자지껄 웃는 소리에 궁금해서 내려와 봤단다. 남자분이었다. 여기 어떻게 알고 오셨냐 물으니, 치앙마이에서 묵었던 우유 게스트하우스에서 이곳을 추천받았단다. 우리도 내일부터 치앙마이에서 묵을 예정인만큼, 그곳의 성비는 어떤가 물었다. 여기와 비슷하단다. 우리는 우유 게스트하우스에는 가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그분께 더 이상 어떤 것도 묻지 않았다.


스테이크 냄새가 강렬했는지 막걸리, 보리, 맹구 세 마리가 모두 식탁 근처로 몰려들었다. 불쌍한 눈으로 우릴 쳐다보았지만 스테이크는 아까워서 어포를 줬다. 스테이크 맛은 그저 그랬다. 다들 배가 부르기도 했고, 포장한 지 오래되어 식기도 했다. 많지 않았던 스테이크를 남겨, 결국 개에게 주었다. 개들은 오래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열한 시 반. 술자리를 정리하고 심향2로 돌아왔다. 열두 시 이십 분. 불을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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