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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Sep 06. 2019

태국 여행기 9일 차

2019.7.17.

새벽에 깼다. 여행기를 썼다. 눈만 뜨면 여행기.


다시 잠들었다가 여덟 시에 깼다. 여행기를 쓰고 짐을 정리했다. 아홉 시. 심향1으로. 오늘은 범울커플과 함께 어제 못 간 반 자보에 가기로 했다.


언제나처럼 스님께서 반겨주셨다. 형은 누룽지를 먹었다. 나는 스님께서 주신 미얀마 커피를 마셨다. 맥심과 거의 흡사한 맛이었다. 그동안 범울커플도 준비를 마쳤다. 아홉 시 반. 햇빛이 세다. 노출된 모든 부위에 선크림을 바르고, 편의점에서 물을 사고. 출발.

날씨는 맑고 경치는 아름다우며 바람은 시원하고 길은 순탄했다. 거침없이 달렸다. 앞장서 가는 범님 뒤에 앉은 울님이, 뒤를 돌아 우리의 사진을 찍어주셨다. 여러 장 찍어 주셨는데 운전 중이어서 다양한 포즈를 취하지 못했다. 30분 정도 가니 산길이 나왔다. 어제처럼 계속 이어지는 코너. 완전 대유잼이었다. 산은 높았다. 올라갈수록 기온이 낮아졌다. 높이 오르자 안개비가 내렸다. 시원했다.

산 정상 도착. 범님은 엔진을 식혀줘야 한다며 오토바이를 멈춰 세웠다. 우리도 따라 주차했다. 구름이 낀 산에서 안개 자욱한 풍경을 보고 있자니 신선이 된 듯했다. 4인 그네가 있었는데, 사람이 부족해 타지 못했다. 여섯 명은 되어야 타고 돌릴 수 있단다.

내려가기 전에 범님은 유독 안전을 강조했다. "앞바퀴 브레이크는 잡지 마시고, 뒷바퀴만 잡으세요. 뒷바퀴도 한 번에 쭉 잡지 말고 abs처럼 끊어서 잡으세요. 제가 여기서 진짜 넘어지는 거 많이 봤어요. 천천히 갈게요." 날이 쌀쌀해서 범울커플의 판초우의를 빌려 입었다. 옷이 작아 머리가 겨우 들어갔다. 범님 꽁무니를 따라 조심조심 내려왔다.

반 자보 가는 길에는 마을이 하나 있다. 반 자보 가며 거쳐가기만 해서, 마을의 이름은 범울커플도 몰랐다. 그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까지 내려오니 날이 다시 더워졌다. 판초우의를 반납했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가득 넣었다.

이제 다시 오르막길. 또 신나게 코너를 돌았다. 계속된 오르막 끝에 가파른 내리막이 딱 한 번 있었다. 열한 시. 드디어 반 자보 도착. 딱 한 시간 반 걸렸다.

반 자보는 경치가 좋았다. 저 아래 산기슭과 저 멀리 산등성이가 한눈에 보였다. 식당에 자리를 잡고 쌀국수를 시켰다. 범울커플은 여기를 절벽국수라 불렀다. 쌀국수는 양이 몹시 적었다. 반은 경치 값이려니 했다. 국수를 먹고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옆에 있는 다른 카페도 가보았지만 뷰가 절벽국수만 못해서 다시 되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날이 무척 더웠다. 내려오는 길에 오른쪽으로 코너링하다 미끄러져 넘어질 뻔했다. 아찔했다. 그 후로 스쿠터를 더 보수적으로 몰았다. 올 때 기름을 넣었던 이름 모를 마을에 들려 쌀국수를 먹었다. 현지인들 가는 식당. 절벽국수보다 양도 많고 맛도 좋았다.

처음 넘었던 산 정상은 여전히 시원했지만, 구름은 싹 걷혀 있어 아까와 다른 풍경이었다. 비교삼아 한 장 더 찍었다. 저 멀리에선 구름이 비를 한바탕 쏟아내고 있었다. 그게 다 보였다. 구름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 같았다. 절경이었다.

빠이에 다 돌아와서, 우리와 범울커플은 각자의 숙소로 갈라졌다. 왕복 이동시간만 세 시간. 긴 여정이었다. 무엇보다 오토바이 타는 것이 재밌었다. 다친 데 없이 안전히 잘 돌아와서 다행이다.


짐을 챙겼다. 특히, 오늘만큼은 그 언제보다 귀한, 술을 단디 챙겼다. 쓰레기를 대강 정리하고 나왔다. 심향1으로 가서 스님께 작별인사를 고했다. "스님. 덕분에 잘 묵고 갑니다." 범님께도 인사했다. "한국 오시면 양작까지 다 함께 함 봐요." 그 사이 정이 들었다.


빠이 스카이로 갔다. 미스터 조에게 스쿠터를 반납하고 이틀간의 추가 대여료를 냈다. 미스터 조는 맨 처음 우리를 픽업했던 툭툭이로, 뚜벅이가 된 우리를 다시 터미널에 데려다주었다. 늦지 않게 도착. 멀미약을 먹고 밴에 탔다.


세 시 반. 출발. 멀미약 탓인지 잠이 쏟아졌다. 잠깐 자다가 몸이 너무 흔들려 깼다. 구불구불 산길. 약효가 좋아 멀미는 나지 않았다. 조용히 여행기를 썼다. 네 시 오십 분. 휴게소 도착. 이곳의 화장실에는 이용료를 받는 사람이 없었다. 대신 모금함이 있었지만, 아무도 돈을 넣지 않았다. 폴라포 형태의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우리나라 80년대 불량식품처럼 조악한 맛이 났다.

여섯 시 십 분. 다시 출발. 어느 코너를 도는데 차와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었다. 자세히 보니 길가에 스쿠터 한 대가 널브러져 있고, 그 바깥쪽에 무언가가 가림막에 덮여 있었다. 나는 그 막 아래로 금색의 머리칼을 분명히 보았다. 부축하지 않고 덮어둔 걸 보면 아마 사망사고였으리라. 내가 저 자리에 있을 수도 있었다. 작은 상처도 없이 스쿠터 라이딩을 마무리하게 되어 정말 다행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치앙마이 도착. 우리는 타패 문 앞에서 내렸다. 일주일간 시골에 있다가 대도시에 오니 생경했다. 타패 문 앞에는 사람이 많았다. 줄 서서 기다렸다가 인증샷을 찍고 이동했다.

우리가 묵을 호텔은 막카치바. 4성급이다. 2인실 조식 포함 하루 10여만 원. 방콕에서 묵었던 보스 스위트 호텔보단 확실히 고급졌다. 여기저기 그림과 사진이 액자에 담긴 채 걸려 있었다. 체크인하는데 미니바가 공짜라 하여 Is it free? Really? 하며 두 번이나 물어보고 확인했다. 숙소에 들어와 설레는 마음으로 냉장고를 열었는데 생수 두 개와 음료수 세 개가 다였다. 뭐야. 모텔도 아니고. 숙소는 깔끔하니 좋았는데 다만 좀 작았다. 침대 위에 수건이 코끼리 모양으로 마련되어 있었다. 귀여웠다. 땀을 많이 흘려서 일단 씻었다. 냉방된 방에서 좀 쉬다 나왔다.

길은 한산했다. 술을 안 팔아서 그런가? 다시 타패 문 앞으로 갔다. 좌판 깔고 물건 파는 상인들이 많았다. 근처를 조금 거닐다 보이는 식당으로 갔다. 각각 패션후르츠-망고 스무디 한 잔씩 시키고 형은 닭고기 볶음밥을, 나는 카오 소이를 시켰다. 스무디는 양이 무척 많았다. 형은 평생 먹어본 볶음밥 중 최고라며 극찬했다. 카오 소이는 닭고기 카레에 물 많이 붓고 생라면 넣은 맛이었다. 굳이 더 사 먹을 것 같진 않다.

열대야였다. 걸어서 돌아오면 땀으로 젖을게 분명했다. 지나가던 툭툭이를 잡아 지도를 보여주며 호텔까지 얼만지 물었다. 100밧. 툭툭이 안에서 맞는 바람이 시원했다. 금세 숙소 도착.

어느덧 열한 시. 애써 준비해둔 술을 하나도 안 마셨는데 잠이 왔다. 아무래도 멀미약의 영향이다. 가져온 술이 아까워 억지로 맥주 한 병을 마셨다. 열한 시 오십 분에 불을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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