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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Sep 06. 2019

태국 여행기 12~13일 차

2019.7.20~21.

마지막 날 아침. 일곱 시에 눈을 떴다. 드러누운 채 게임을 했다.


아홉 시 반. 조식. 오늘은 프리 프룻에 망고스틴이 있다. 여러 개 가져다 먹었다. 형은 닭고기 볶음밥을, 나는 팟카파오무쌉을 주문했다. 언제나처럼 주스와 커피를 마셨다. 밥과 후식 과일을 맛있게 먹었다.

형부터 차례대로 씻고 짐을 쌌다. 버릴 건 버리고 챙길 건 챙기고. 따지도 않은 소주를 버리려니 아까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심향1에 놓고 올 걸. 그랬으면 임교수님이 맛있게 드셨을 텐데. 짐을 다 싸고 내려와 체크아웃했다. 캐리어는 카운터에 맡기고 그랩 택시를 잡았다.

더위를 피하고 싶어 결정한 오늘의 목적지는 센트럴 페스티벌 치앙마이. 커다란 쇼핑몰이다. 분수 앞에서 인증샷을 찍고 들어갔다. 시원하고 쾌적한 실내 공기가 마치 한국 같았다. 일단 푸드코트부터 갔다. 시스템도 가격대도 방콕에서 갔던 푸드코트와 같았다. 재밌는 사실은, 처음 방콕에서 갔을 땐 너무 싸서 깜짝 놀랐던 푸드코트 물가가, 빠이를 다녀오고 나니 비싸게 느껴졌다는 점이다. ‘뭔 놈의 국수가 50밧, 주스가 35밧 씩이나 하나. 빠이에선 그 반값이면 먹는데.’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것저것 섞어 넣은 스무디를 한 잔씩 들고 바로 옆에 있는 펀시티로 갔다. 고급 쇼핑몰에 입점한 오락실답게 최신 체험형 게임들로 가득했다. 게임비도 한판에 20~30밧꼴로 싸지 않았다. 우리는 일단 한 바퀴 돌며 구경했다. 

덕후같이 생긴 남자 둘이 리듬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어떻게 하는 게임인지는 몰라도, 그들이 그 게임을 아주 잘한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화면에 나오는 춤을 따라 추는 게임도 있었다. 누가 플레이하길래 구경했다. 게이머가 아니라 댄서 수준이었다.


우리도 좀 해봐야지. 어드벤처 헌터라는 4인용 사격 게임이 있어 형과 같이 해보았다. 이유 없이 정글에서 동물들을 학살하는 게임이었다. 핵노잼. 같이 오토바이도 탔다. 형은 일부러 선글라스까지 꼈다. 참 재밌는 형이다. 나는 사고를 세 번 내서 꼴찌 했다. 형은 상위권으로 들어왔다고 좋아했다.

오락실에서 나와 천천히 쇼핑몰을 구경했다. 구경만 하고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sukishi라는 이름의 ‘한식당’이 있었다. 메뉴를 보니 한식 반, 일식 반이었다. 이 나라 사람들에겐 한국과 일본이 한 카테고리에 묶일 만큼 가깝고 유사한 나라로 인식되는 걸까. Imax 영화관도 있었다. 상영 목록을 보니 죄다 할리우드 영화다. 태국 영화는 개봉 예정작 딱 하나 걸려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역시 90년대까지는 극장에서 한국영화 안 봤으니까. 어쩌면 이 나라 사람들도 그 시절 우리와 비슷한 얘기를 할지 모른다. "야. 태국 영화를 왜 극장에서 봐. 돈 아깝게."

오래 걸었다. 영화관 대기실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쉬었다. 형은 곧 잠들었다. 이럴 때 마사지를 받아야지. 형에게 얘기하고 내려왔다. 마사지샵은 지하에 있었다. 실버 앤 골드 핑거스. 타이 마사지 1시간 300밧으로 싸지 않았다. 그러나 임대료 때문인지 시설은 열악했다. 마사지는 무난한 수준이었다. 마사지가 끝난 후, 관리사는 나에게 굳이 '팁'을 강조해 말했다. 안 그래도 주려고 했는데. 대놓고 달라하면 주는 쪽에선 기분이 상하게 마련이거늘. 어쨌든 50밧 드렸다.

푹 자고 일어난 형과 함께 다시 푸드코트로 갔다. 각자 쌀국수와 주스를 시켰다. 쌀국수는 언제나처럼 맛있었다. 주스는, 매번 최고 수준의 생과일주스만 먹던 사람에겐 너무 저렴한 맛이었다. 몇 모금 안 마시고 버렸다.

아이스링크도 있었다. 롯데월드보다는 한참 작은 크기였다. 여러 아이들이 엉거주춤 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다. 아이들의 표정이 밝았다. 눈이 내리지 않는 나라에서, 실내 아이스링크란 어떤 의미일까. 아이스링크 밖에선 kothai라는 한-태 연합 오케스트라가 공연 중이었다. 주요 파트는 한국의 성인 연주자가, 자투리 파트는 태국의 아이들이 맡고 있었다. 나는 음악보다도 이 오케스트라의 사연이 궁금했다. 물론 음악도 들을만했다.

1층에는 태국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사람들이 따라 부르는 걸 보면 인기 있는 가수였다. 가수는 무대에만 있지 않고, 내려와 관객들과 함께했다. 가까이서 보니 얼굴도 참 잘 생겼다. 가수가 서 있던 무대에는 백댄서가 올라와 춤을 췄다. 흥겨웠다. 문득 이 곳의 이름이 센트럴 '페스티벌' 임을 떠올렸다. 그래서 이런 걸 많이 하나?

이제 떠나야 할 시간. 그랩을 이용해 숙소로 돌아와 캐리어를 찾고 공항으로 이동했다. 공항에서 우리는 한층 더 높아진 물가에 또다시 놀랐다. 망고 스무디가 무려 150밧이라니! 그나마도 품절이어서 먹지도 못했다. 아쉬운 대로 형은 미닛메이드를, 나는 립톤을 사 마셨다. 합해서 70밧. 한국과 차이가 없는 물가다.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희형은 키득거리며 유튜브를 보셨다. 잘생긴 남자가 예쁜 트랜스젠더를 만나 드립치고 노는 영상이었다. 곁눈질로 보니 썩 재미있다. 이번 태국여행이 우리에게 던진 가장 큰 화두, 트랜스젠더.


"이싼쥔~ 이굥히~ " 갑자기 우리 이름이 들린다. 아직 출발까지 20분이나 남았는데, 벌써? 서둘러 게이트 앞으로 갔다. 표를 보여주고 탑승. 승객들이 이미 다 자리에 앉아 있었다. 다들 어쩜 이리 빠르담? 비행기는 예정된 출발 시각 10분 전부터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항을 어슬렁거리다 점점 속도를 내더니, 출발 시각이 되자마자 땅을 벗어났다. 이렇게 시간을 잘 지키는 비행기는 많이 안 타봤다. 짧은 비행이어도 음료 한 잔 정도는 나눠줄 법 한데, 음료는 커녕 물 한 모금도 나눠주지 않았다.

수완나품 공항 도착. 출국 수속을 마치고 면세점으로 나왔다. 와. 면세점이 무지하게 크다. 인천공항보다 더 클지도. 방콕이 관광도시는 관광도시구나. 니뽄라멘이라는 식당에 갔다. 라멘 하나에 교자, 콜라를 추가하여 394밧. 체감 물가 상승이 아찔할 정도로 급격했다. 기내식 먹을 배를 남겨두려고 둘이서 한 그릇만 먹었다. 면세점에서 나는 배켠팡을 위해 싱글몰트 위스키를 샀다. 몽키 숄더. 뉴욕 갈 때 샀던 술이다. 개중에서 가장 쌌다.

2019.7.21.


12:45. 비행기 탑승. 비행기는 출발시간이 한참 지나도록 움직이지 않았다. 방금 탔던 비엣젯에어와 참 많이 달랐다. 한 시 십 분 비행기가 한 시 오십 분에야 떴다. 영화 <게임 나이트>를 보았다. B급 정서로 가득한 코미디 영화였다. 보다가 잠이 왔다.


한 시간쯤 잤나? 아침 시간이 되어 깼다. 새우죽. 한 입 떠서 먹어보고 "음." 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옆에 앉은 형이 웃으며 "우리 입맛에 안 맞기가 쉽지 않어."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싹싹 긁어먹었다.

식사 후에도 비행기는 계속 밝았다. 잠이 다 깼다. 유일하게 가져간 책 <연변 엄마>를 읽었다. 몰입력이 대단히 강했다. 나도 모르게 희곡 속 캐릭터에게 분개하고 있었다. 매 장면이 불편했다.

인천 도착. 입국 수속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는데, 문득 이상진이라는 글자가 눈앞을 스친다. 고개를 돌려 자세히 보니 배켠팡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프라이즈. “야 이 미친놈들아. 여길 왜 왔어.” 너무 반갑고 놀라워 욕이 나왔다. 밤새 한 숨도 안 자고 술 먹다 왔단다. 희형은 어떻게 이런 친구들이 있냐며 나보다 더 놀랐다. 다 같이 사진을 찍고 켠의 차에 탔다.

희형을 댁까지 태워드리고 나서, 켠은 우리 집이 아닌 레이즈덴을 목적지로 찍었다. 예상한 바였다. 레이즈덴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고 몽키숄더를 챙겨 올라갔다. 배팡은 누워 자고 켠과 나만 마셨다. 배달 주문한 마라탕과 마라샹궈가 뒤늦게 왔다. 자고 있던 배팡을 깨워 함께 먹었다. 배불리 먹고 마시고 다 같이 잤다.

갑작스러운 친구들의 난입으로 여행기를 마무리짓지 못했다. 태국 여행은 이미 끝났으므로 이쯤 마치는 게 적당하다. 굳이 사족을 달자면, 이 날 자고 일어나서 우리는 건대 차이나타운에 갔다. 향라육슬, 모닝글로리 볶음, 건두부무침, 도삭면, 쇼마이, 군만두, 꿔바로우, 오이 양장피를 먹고, 후식으로 밀크티를 마셨다. 나는 그렇게 다음날 밤 열두 시에야 비로소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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