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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Sep 06. 2019

태국 여행기 11일 차

2019.7.19.

일곱 시 반 기상. 여행기 작성. 잠시 후 희형 기상. 주독으로 인한 오심 및 현훈 호소. 출근환 처방.


깨는 시간이 거의 일정하다. 아주 규칙적이다. 두 시간 정도 여행기를 쓰고 아홉 시 반에 조식을 먹으러 내려갔다. 이것도 어제와 같다. 식당에 free fruit도 있었다. 이건 어제 못 보았던 거다. 그러나 사과도 바나나도 당기지 않았다. 아침 메뉴로 형은 닭고기 죽을, 나는 소갈비 탕면을 선택했다. 언제나처럼 만족스러웠다. 조식의 수준을 생각하면 이 호텔 괜찮다. 막카치바.

방으로 올라와 어딜 갈지 고민했다. 이렇게 더운 날 어딜 가야 하나. 주변 관광지를 보니 죄다 사원이다. 불심도 없는 우리가 이 날씨에 갈 이유가 없다. 계속된 검색 끝에 찾아낸 곳은 그랜드 캐년 워터파크. 만들어진 계기가 재미있다. 이 곳의 땅 주인이 흙을 계속 파내어서 팔다 보니 커다란 웅덩이가 생겼는데, 여기에 물이 고이니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 이제는 아예 워터파크로 개발해 놓았단다. 그러니까 인공호수 워터파크다. 그래. 이런 날씨엔 물놀이지. 높은 곳에서 물로 시원하게 뛰어드는 영상을 보여주자 형도 오케이.

https://youtu.be/uMYrCDT4ITo

열두 시 십오 분에 나왔다. 오늘 복장은 선블록 룩. 길가 나무에 망고가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처음 보는 광경이라 사진을 찍었다. 화장품 가게에 들러 워터프루프 선크림을 샀다. 타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 마이 리얼 트립 사이트에서 본 대로 12시 50분 전에 타패 문 앞 맥도널드에 도착했는데, 캐년 피켓을 들고 있는 기사님이 보이지 않았다. 오늘 좀 늦게 오시나? 우리는 맥도널드 앞에서 은색 밴이 올 때마다 캐년에 가는 차인지 물으며 1시까지 기다렸다.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손님이 없어서 안 가는 걸지도 몰라요. 우리도 예약을 하진 않았거든요. 그냥 그랩 타죠. / 그래.


그랩은 바로 왔다. 그랜드 캐년까지 303밧. 둘이 같이 타니까 어차피 별로 안 비싸다.


캐년까지는 30분 걸렸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매하고, 락커를 대여했다. 입구에 들어서자 한눈에 담기지 않을 정도로 넓은 인공호수가 보인다. 척 보아도 크기가 꽤 크다. 이용객은 대부분 백인이었다. 수영복 대여소에서 수영복을 대여했다. 구명동의를 대여하고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선크림을 과하다 싶게 발랐다. 락커에 짐을 넣고. 이제 입수!

슬라이드를 탔다. 트램펄린에서 다이빙을 여러 번 했다. 더 큰 슬라이드를 탔다. 백인들이 블롭점프하려다 실패하는 걸 구경했다. 꽤 큰 슬라이드를 탔다. 워터 스키퍼 라는, 물 위를 걷는 스카이 콩콩 같은 게 있었다. 관리하는 태국인들은 곧잘 탔는데, 형과 나는 아무리 해도 잘 안 되었다. 무척 큰 슬라이드를 탔다. 아주 높은 곳에서 다이빙했다. 신났다.


네 시. 노느라 밥도 잊고 있었다. 내부에 마련된 식당에서 주스와 밥을 주문했다. 추천 마크가 붙어있는 메뉴를 시켰는데, 요상한 음식이 나왔다. 먹는 법을 몰라 아예 다 비벼 먹었다.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다시 먹고 싶은 메뉴는 아니었다. 오히려 형이 시킨 메뉴에 눈길이 갔다. 닭봉과 소시지가 있는 미국식 볶음밥. 나도 저걸 먹을걸. 주스는 언제나처럼 아주 만족스러웠다.

밥 먹고 잠시 쉬다가 짚라인을 타러 갔다. 구명동의를 벗고, 줄로 엮인 조끼를 메고, 헬멧을 쓰고. 첫 번째 타는 곳으로 이동.


나는 금산에서 짚라인을 타 보았다. 국내 최장인지 세계 최장인지 그랬는데, 무지하게 길고 빨랐다. 금산에 비하면 여기 짚라인은 애들 장난이었다. 짧고 느려 시시했다.


남은 시간은 일단 워터스 키퍼를 더 타보기로 했다. 둘이서 번갈아 여러 차례 타보았지만 별 진전이 없었다. 우리는 나이 탓을 했다. 무언가가 잘 되지 않을 때엔 나이 탓만큼 편리한 게 없다. 무척 큰 슬라이드를 한 번 더 타고, 아주 높은 곳에서 한 번 더 뛰어내렸다.


벌써 다섯 시 반. 구명동의를 반납하고 샤워실에서 씻었다. 수건을 안 가져왔는데, 빌려주는 곳이 없었다. 적당히 씻고 밖에 나와 그늘에 서 있었더니, 날이 더워서인지 몸이 금방 말랐다. 입고 온 옷으로 갈아입었다. 포토존이 있어 사진을 찍었다. 빌린 수영복과 락커 키를 반납하고 나왔다.

어느덧 여섯 시. 다시 그랩을 잡았다. 차 에어컨이 너무 약해서, 좀 세게 틀어달라 요청했다. 그래도 약했다. 기사님이 감기라도 걸리셨나. 형은 앉자마자 잤다. 나도 몹시 피곤했다. 한나절 동안 정말 최선을 다해 놀았다. 괜히 뿌듯했다.


숙소 도착. 먼저 맥주부터 꺼내 마셨다. 땀 흘려 놀아 목마른 채로 마시니, 가뭄처럼 메마른 입과 식도를 차가운 맥주가 단비처럼 적셨다. 단숨에 몇 모금 마시고 누웠다.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내일 밤은 공항에서 보내야 하니 오늘이 사실상 태국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희형은 계속 유튜브를 보며 갈만한 곳을 물색했다. 나는 치앙마이 오픈 톡방을 살펴보았다. 89, 90 학번 형님들께서 번개를 치고 계셨다. 아무도 가겠다는 말이 없었다. 그걸 보니 차마 번개를 칠 수 없었다. 아홉 시. 형이 나가자 했다.


오늘은 어디 가요? / 근처에 바가 있네. 바 가자. / 아 그럼 잠깐만요. 좀 씻고. / 야. 오늘은 안 씻어도 돼. 바 가는데 왜 씻어. / 아니 형 그럼 어제는 왜 씻은 건데요. / 몰라 임마. 그냥 가자.


그래서 그냥 나왔다. 형이 앞서고 나는 뒤따랐다. 거리엔 야시장이 서 있었다. 어제와 그제는 못 본 풍경이다. 그러나 여행 막바지에 사고픈 물건은 없었다. 어두운 골목들을 지나 도착한 곳엔 술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골목을 한 바퀴 돌고, 손님 없는 조용한 바에 들어갔다. The playhouse bar. 손님이 없어서였을까?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여자 종업원들이 형과 내 옆에 와서 앉았다. 하지만 그 때문에 그들이 마실 음료를 사줘야 했다. 나는 내 옆에 앉은 여자에게 레이디보이인지 물었다. 그녀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종업원이 여성이라 했다. 어차피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믿는 수밖에.

넷이 같이 술을 마시며 당구를 치고, 비어퐁을 하고, 입체 빙고를 했다. 술 마시기 내기였는데, 이기든 지든 어차피 술값은 우리 주머니에서 나가니 애초에 지는 게임이었다. 그래도 좋다고 놀았다. 유튜브 검색해가며 온 곳이 고작 이런 곳이라니. 희형은 참 건전하고 순진한 사람이다. 열두 시쯤 나왔다. 둘이 합해 4060밧. 술값이 꽤 많이 나왔다. 언제 이렇게 많이 마셨나. 그래도 한국의 바 생각하면 싸다. 삼성리에선 위스키 두 잔씩 마실 돈이다.


돌아오는 길에 발을 헛디뎌 쪼리가 끊어졌다. 취하긴 취했다. 숙소에 도착. 역시 에어컨이 최고다. 바로 누워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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