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나 소피아 미술관과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일정은 2박 3일이긴 했지만 첫 날엔 밤에 도착해 마지막 날은 낮에 도시를 떠났으니 실제 머문 기간은 이틀 정도 뿐이었다. 그래도 여행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에너지가 아직은 충분해서였는지, 그리 넉넉하지 않은 시간에도 마드리드의 미술관 두 군데는 꼭 가봐야한다고 떠나는 날까지 스스로 발길을 재촉했다. 유럽에서 세번째로 큰 프라도 미술관, 그리고 피카소의 작품 중 게르니카를 전시해둔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이 그것이었다. 그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어도 여행을 가면 미술관을 한번씩 들러보는 게 언젠가 습관처럼 되었는데, 그 이유는 미술관이 그 지역을 대표하는 곳임과 동시에 각 나라나 도시마다의 특색이 미술관 건물에서부터 전시 방식에 드러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사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는 피카소나 살바도르 달리와 같은 익숙한 이름의 화가들을 비롯한 엄청난 양의 작품이 시기별, 화풍별로 각 방에 전시되어 있었고,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별도의 방에 전시실이 있었고 습작에서부터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담은 사진까지도 전시해두었다. 작품 자체에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아우라와 더불어 그 세심하고도 넓은 전시 범위가 또 한번 놀랄만한 것이었다.
또 다른 재미는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의 대표적 이미지로 알려져있는 초현실주의적 세계관이 담겨진 작품이 아닌 '일반적인' 초상화를 보는 데에도 있었는데, 왠지 그런 그림을 볼 때는 아는 사람이 갑자기 진지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거나 했을 때 괜스레 어깨가 움츠러들며 키득거리게 되는 그런 느낌이랄까. 유명한 사람 이야기를 자주하다보면 꼭 아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을 갖듯, '아, 아저씨들 이런 모습도 있었어? 오올, 의왼데.'라는 느낌. 어디서든 예상치 못한 것에서 오는 놀라움은 여행의 즐거움과도 비례한다. 방심한 상태에서 훅 들어오는 그런 당혹감은, 그래도 나쁜 모양새로 오는 것이 아니라서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있다. 특히나 그게 여행지라면.
옹기종기 모여서 선생님의 해설을 듣고 있던 스페인의 어린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나라에서 책으로만 공부하는 미술이 아닌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미술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얼마나 복을 받았나 싶다가도, 지난 시간동안 만났던 유럽에서 온 친구들의 서양 예술사나 근현대사 등을 이야기하면 자연스레 나오는 그들의 자부심 같은 것들이 이해되었다. 우리가 느끼는 먼 이름만의 지식이 아닌, 그 나라, 그 동네에서 살던 어떤 사람이 세계적으로 엄청난 족적을 남긴 사람인 거니까, 남들이 꿈꾸지 못할 것을 우리 동네에서 보고 자라는 사람들과는 기본적인 자신감의 차이가 있는 거겠지. 조상 덕을 많이 보는 현 세대라니, 부러우면서도 가슴 한 켠에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프라도 미술관은 큰 웅장한 규모만큼 작품의 수도 미술관의 건축물도 어마어마했다. 벨라루케스, 고야의 이름을 딴 문과 그들의 동상이 미술관을 지키고있을 정도로 중요한 인물인 그들의 작품의 수 또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고, 미술책에서 본 기억이 나는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어 지나가다 발길을 돌려 한번 더 보기도 했다. 다른 곳에서 봤던 작품인데 배경이 다르다던지, 크기가 다르다던지.
사실은 프라도미술관은 보려면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고 했지만 시간에 쫓기다보니 2시간 반 여에 모든 층과 작품을 훑어보듯 바쁘게 돌아보았다. 그래도 두 개의 미술관을 돌아보면서, 깊은 감상은 아니더라도 스페인이라는 나라가 이 미술사에서 주요한 인물을 어떻게 대하는지, 그 작품들이 또 그들의 예술사에서 어느 정도의 무게감을 갖는지 조금은 짐작해볼 수 있었다고 했다면 너무 의미를 둔 해석일까.
결론적으로 미술, 그림에 대한 어떤 조예가 깊은 감상이 아니라, 내가 미술관에서 느끼고자 하는 것은 그 도시, 그 나라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마드리드에서 본 색깔은 다른 도시를 가서도 똑같을지 아니면 다를지, 다가올 시간이 조금씩 기대되기 시작했다. 배낭을 멘 어깨는 무거워도 버겁지 않은 여행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