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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 Jan 08. 2017

넘어져도 괜찮아

자빠짐에 대한 감상이라 하기엔 헛소리 혹은 아무 말

비가 오는 날, 다른 건 다 괜찮지만 젖어버린 바닥에 갖고 있던 것을 떨어뜨리면 진흙탕물에 얼룩얼룩 더러움의 자국이 묻어 처치가 곤란해진다. 심지어 다른 건 몰라도 비오는 날 넘어지기라도 하는 날엔 그야말로 망하는 거다. 그런 비오는 오늘, 길바닥에서 두 번이나 넘어졌다. 그런데, 이게 올해가 된 이후 벌써 세 번째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시간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 여름에도 분명 몇 번 넘어진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자주 넘어지느냐고, 아니, 사실 넘어지는 건 1년에도 있을까 말까하는 일이고 넘어질 만한 상황에도 매번 잘 버텨왔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지난 여름부터 난 자주 넘어지기 시작했을까.



내가 기억하는 한 아주 오랜만에 와장창 넘어진 날은 7월, 덴마크로 가기 위해 공항으로 가기 전 은행을 들르러 가는 길이었다. 배낭에 달아둔 캠핑용 매트가 빠질까 걱정이 되었던지라 쇼윈도에 비친 가방을 점검하며 걷던 그 순간, 숍 앞에 있던 턱에 신고 있던 워커가 걸렸다. 탁 소리와 함께 붕 떠 바닥에 착지한 양쪽 무릎이 전부 다 시멘트 바닥에 갈렸다. 바로 일어나 길을 가려던 나를 뒤에서 사람들이 불러 뒤를 돌아 보니, 걱정하던 매트가 그 사이를 못 참고 떨어져 바닥에서 구르고 있다. 아, 방금 바닥에 나동그라진 내 처지랑 똑같네. 주섬주섬 주워 길을 걸어나가는데, 멘탈은 바닥에 아직도 붙어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직, 저 숍 앞에, 그림자처럼 붙어 있던 거무스름한 내 그림자가 겨우겨우 몸을 일으키는 환영을 본 것만 같았다.


뜨거웠던 크로아티아의 지난 여름, 자그레브에서 떠나려는 8월의 아침이었다. 가방은 무거웠고, 몸도 무거워 아침에 겨우 몸을 일으켰었던 것 같다. 호스텔의 계단을 내려오는데 마지막 계단에서 발을 디디는데 왼발이 꺾였다. 가방이 무거워 몸이 가방부터 완전히 바닥에 뒤집혔다. 그 와중에 꺾인 발목이 혹시 인대가 끊어지거나 부러진 건 아닐까 겁이 덜컥났다. 겨우 몸을 일으키니 발 자체는 걷는 데에 문제가 없었다. 다행히 뼈 문제는 없어보였지만, 넘어지면서 까진 상처엔 피가 흐르기 시작했고 무릎과 발목이 모두 시큰했다. 잠시 자리를 잡아 앉은 카페의 직원이 밴드를 하나 가져다줬다.


그 때부터였을까, 넘어지는 게 무서워졌지만 그만큼 일어나는 반응 속도도 더 빨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건.







혼자 있을 때, 혹은 옆에 사람이 있을 때도 상관없이 난 넘어지더라도 발딱 일어선다. 쪽팔리냐고, 안 아프냐고. 그게 문제가 아니고 그냥 그리 몸이 반응하는 거다. 그 놈의 주변 사람을 신경쓰는 성미가 그런 것 하나에도 더 영향을 주는 모양이다. 다치거나 문제가 생길 때도 늘 혼자 있으면 그게 누군가와 같이 있는 것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지만, 옆에 있는 사람들은 누군가 있다면 '널 도와줄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난 문제에 봉착했을 때는 주변 사람이 없어야 덜 미안하고, 어떻게든 스스로 해결하면 좀 더 마음이 편하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 누군가는 '미련하다'고 한다.


넘어져도 잘 일어날 수 있으면 된다. 그런데 이런 물리적 자빠짐도 있겠지만, 자아가 넘어져서 자신감이 사라지면 잘 추스려 일어날 때까지 시간을 좀 더 줘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뒤에서 걸어오던 사람이 신경쓰여 넘어졌어도 아닌 척하면서 빨리 일어나면 뒷 사람에게 동선은 덜 걸렸어도 그 사람한테도 신경은 많이 쓰일테니까, 아무래도. 아니, 요지는 나 자신의 회복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뭔 넘어진 걸 갖고 난 이런 헛소리 개똥철학을 읊고 있나. 아무튼 올해가 되고 일주일동안 세 번째 넘어지고 굴렀는데 칠전팔기를 외치며 새해엔 넘어지더라도 제깍제깍 일어나 열심히 삽시다,가 아니라 넘어졌으면 그 상태에서 추스릴 시간도 충분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창피한 경험도 내 몸에 남은 멍만큼 뇌리에도 그렇게 멍처럼 남길 바랐나보다.




괜찮지 않아도 좋으니,
그리 괜찮은 척 하지 않아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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