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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 Apr 30. 2017

익숙함, 집이라는 곳의 정의.

내 몸 하나 뉘일 수 있는 곳, 그 곳.

여행하듯 잠시 런던에 살기 시작한 게 2015년 12월. '여행하듯 살기'의 목표로 온 영국(워킹)홀리데이 생활도 이제 1년 4개월이 다 되어 간다.



어학연수 때문에 2008년에 1년 남짓 영국에 지냈던 때보다도 좀 더 긴 기간을 있을 것을 예상하며 출국했던 길에 집에 대한 걱정이 가장 먼저였다. 살 집을 찾기 위해 2주 남짓되는 시간동안 열 대여섯 군데의 집을 보러 다니면서 계속 예산과 위치 등의 여러 가지가 마음에 걸려 선뜻 결정하지 못하다가 마지막에 만난 집이 현재까지 살고 있는 집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현재 살게 된 집은 이전 어학연수를 했던 학원 근처에 있는 집이었고, 좋아하던 동네이기도 했지만 좋은 플랏메이트를 만나게 되어 1월부터 이사를 해 있게 된 집이 벌써 1년을 훌쩍 넘었다.






런던의 생활비는 예상보다도 더 많이 들었다. 그 중에 지출의 최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집세, 렌트인데 지역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혼자 사는 집이 아니라 여러 명이 함께 쓰는 공간에서 방을 한 칸 쓰는 데에 거의 100만원에 가까운 돈이 들어간다. 그러다보니 생활비까지 고려하면 비용이 만만치가 않았다. 생각보다 내가 예상했던 기간보다 예산이 줄어드는 속도가 빨랐고, 주변에서 말하는 빠르게 줄어드는 돈 때문에 일을 빨리 구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렇게 조바심 낼 일이 아니지, 아직 내가 생각한만큼 쉬지 못 했는데'라고 하면서 내게 주어진 시간을 충분히 누리기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것'을 미뤘다.





일을 하다가 쉬는 것도 쉽지 않다는 건, 쉬어본 사람들이 특히 더 공감하는 것일 거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나를 참아내는 일, 그래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조바심내지 않도록 하다보면 어느 순간 그게 익숙해진 한량이 된 자신을 발견한다.



예산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많지만 하고 싶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처음에 예상한 시나리오는 아껴서 다니면 그래도 여행경비는 어느 정도 감당이 가능하리라 생각했고, 그래도 아쉽지 않게 여행에서 누릴 수 있을 것은 해보자는 게 계획의 전부였다. 그 몇달동안 쌈짓돈으로 갖고 있던 예산을 여행이나 생활에 다 써버리고 나니, 남는 건 사실 허탈함 뿐이었다. 분명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5년간, 적어도 4년은 꼬박 모은 돈이었던 것 같은데 어쩌면 이렇게 빨리 없어지는 건지 내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계획도 규모도 별로 없는 눈먼 예산 집행이었던 건 인정한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쓰는 돈을 계산하는 게 무서워져 계산을 하기 점점 힘들어졌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규모를 갖추는 일 자체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이것 또한 핑계이리라.)





작년 여름에 여행을 하면서 잠시 내 집이 된 것 같던 런던 집을 비웠다. 여행을 하면서 호스텔, 에어비앤비 등 여러 숙박시설을 전전했지만, 여행 중에 가장 많이 가게 되었던 페스티벌 덕분에 가장 익숙한 '집'은 '텐트'였다. 트레킹을 하듯 이동해서 텐트를 치고 잠시 머물다 또 다른 곳으로 가는 일정이 계속되었는데 북유럽을 거쳐 스코틀랜드, 헝가리와 크로아티아에까지 텐트를 가지고 이동하면서 텐트를 일단 치고 바닥에 누웠을 때의 이상하리만치 평온한 느낌을 받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텐트를 친 동안엔 며칠이라도 편하게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이상한 안정감.



여행을 하는 것이 한 군데 있지 못하는 떠돌이 생활과 모르는 내일에 대한 불안함을 동반함과 동시에 그에서 오는 자유로움의 줄타기를 아슬아슬하게 하는 것이라면, 그 사이에 마음 붙일 곳을 찾는 건 집에 대한 그리움을 머무는 곳에 대한 익숙함으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17개의 페스티벌, 그 중 16개의 공연/음악페스티벌을 모두 가는 일정을 감행하며 내가 찾은 잠시동안의 집은 텐트였지만, 그만큼 거칠거칠했고, 새벽의 추위에 떨며, 그러다 오랜만에 눕는 침대의 편안함에 텐트 생활이 사실은 그닥 좋은 건 아니었음을 깨달으면서도 그런 게 또 내가 거쳐가는 집이든 삶과 묘하게 겹쳐는 느낌이 드는 건 여전히 매일 매일이 텐트를 치고 일어나서 다음 여정을 향해 가는 것과 닮아있기 때문이겠지. 그러면서도 어느 순간 또 텐트를 메고 길을 떠나고 있을 것 같은 내 모습이 그려지는 것은 왜일까.




꽤 오랜 기간동안 편안했던 지금의 집인 런던을 곧 떠날 때가 다가온다. 다음에 내가 길에서 만나게 될 '잠시동안의 집'은 어디가 될지, 그 불안함의 길에 다시 설 날이 그리 머지 않았다.



매번 많은 걸 안고 살면서 아등바등하게 되는 '보금자리'라는 게 부질없게 느껴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되는 것 또한 값진 것일테니.


그래서 옛 말에 늘 떠날 준비를 하고, 오래 한 곳에 머물지 말고, 가방을 가벼이 하라고 했던 것일까.



다시 어떤 바닥에서 텐트를 펴고 별을 벗삼아 잠을 청하게 되어도, 그 또한 내 익숙함의 집일 것이고, 그 길에서 내가 몸을 누일 곳, 앉아 쉴 곳을 찾는다면 그것으로 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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