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이냐 연이냐
먼지 툴툴 날리는 연을 찾아 꺼내 들었다.
아들과 연 날리기 할 생각을 하니 축축한 마스크 안에서 웃음꽃이 피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연 날리기는 '껌'이라 생각했다.
아들에게도 큰 소리를 뻥뻥 치며 아파트 공터로 나갔다.
하지만 막상 날려보니 연은 '껌'처럼 땅에서 붙으려는
습성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한 시간 내내 아들과 연을 날리다가 힘들어서
벤치에 누워 아들과 껴안은 상태로 사색에 잠겼다.
첫 번째, 바람을 찾아서 아들과 나는 먼(?) 길을 떠나야 했다.
두 번째,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길이로 실을 짧게 잡고 연이 뜰 때까지 뛰어야 했다.
세 번째, 바람을 타고 연이 높이 오르는 순간 희열에 차지만 바람이 가시고 땅에 처박히는 연을 보며 열불에 차야 했다.
바람은 항상 내 마음대로 불어주지는 않는다.
바람을 언제 불거라 예측하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다.
(가끔 바람을 예측할 것처럼 말하는 인간이 있는데.. 가장 경계할 대상이다)
일단 내가 연을 들고 먼저 뛰어서 작은 바람부터 만들어야 한다.
바람이 계속 안 불면 나는 계속 뛰어야 한다.
또 있다.
내 분수와 체력에 맞춰서 실의 길이를 조절해 놓고
뛰어야 연은 나는 척이라도 한다. 그래야 소소한 재미라도 느낄 수 있다.
연을 높이 날릴 욕심만 많아서 길게 실을 늘어 뜨리고 뛰어봤자 연은 바닥에 계속 끌리기만 한다.
신나서 정신없이 실을 풀다가 손가락을 베이기도 했다.
의도치 않게 나무에 걸려서 연이 뜯어져 나갈 위기도 있었다.
안정적으로 바람을 타기 위해서
일부로 연을 아래로 잡아당기며 끌어내리기도 해야 했다.
안 그러면 제대로 바람이 받쳐주지 못해서
연이 순식간에 수직 낙하하는 꼴을 보게 된다.
체력이 바닥나고 더 이상 바람 부는 것도 싫고
연이 하늘을 나는 것도 보기 싫어지는 순간이 온다.
그동안 시행착오도 겪고 노하우도 쌓였는데
감정적, 체력적 문제로 쳐다보기도 싫게 된다.
연을 하늘 위로 높이 날리는 것만이 목표가 되면
그게 달성되지 않았을 때 계속 감정 소모를 한다.
하나씩 깨닫고, 바람을 느끼고
함께 연을 날리는 사람과의 소중한 시간을 누리며
배우는 마음으로 즐겁게 도전할 때 감정적 타격이 덜하다.
목표는 높게 두되, 집착하지 않는 게
매 순간을 즐길 수 있게 한다.
사실 말이 쉽지, 연 4~5개는 찢어 먹고 나야
이런 마음을 내려 놀까 말까 하지 않을까?
그래서 처음 연 날리는 사람한테 함부로
내려놓으라 말할 것도 아니다.
한 두 번 날리고 말 사람도 있는데
굳이 꼰대 소리하고 서로 에너지 낭비할 필요 없다.
5번, 6번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사람한테
해줄 때 도움되는 말이다. 그전에 함부로 조언하지 말자.
내가 들고뛸 생각도 없으면서
바람 탓만 하고 있지 말자.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실의 길이도 모르면서
목표만 크게 잡지 말자.
너무 빨리 올라간다 싶으면,
적당히 당겨 내리기도 하자.
높이 나르는 순간만 집착하느라
나머지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를 놓치지 말자.
사업하다 보면 참 '엿'같은 순간이 많은데
'엿'을 '연'으로 바꿔 먹어도 재밌을 것 같다.
"윤재야, 내 아들아, 인생 참 '연' 같다.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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