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설악, 또 한 걸음

by 그라미의 행복일기

퇴근 후, 배낭을 메고 부산역으로 향했다.
하루의 피로가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하루를 향한 준비가 시작된 셈이다.


“설악 등반 가자, 경원대길!”


그 말에 마음이 설렘으로 뛰었지만,
곧 걱정이 밀려왔다.
‘과연 내가 그 길을 오를 수 있을까.’


나는 2년 전, 등산학교를 졸업했다.
그때 졸업기념으로
등반 전문가인 친구가 ‘한 편의 시를 위한 길’을 안내해 주었다.
초보자가 오르기 좋은 코스였고
사람들도 종종 찾는 길이었지만
나는 그때 너무 무서웠다.


친구의 말과 손끝만 믿고 올랐고
그 덕분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 후 동기들은 꾸준히 암벽등반을 이어갔지만
나는 여러 사정으로 자주 함께하지 못했다.
일 년에 한두 번,
마음이 불러야 움직이는 정도였다.


그래서 이번에도 사실 큰 기대는 없었다.
지인들이 “별을 따는 소년들 길, 꼭 가봐라”라고 해서
그 곳은 언제가 가보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친구가 말했다.
“경원대길로 가자.”


낯선 이름이었다.
그 낯섦이 내 안의 두려움을 깨웠다.
하지만 등반은 혼자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누군가의 숨결에 맞춰 오르는 길이다.


그래서 이번엔, 다시 친구를 믿기로 했다.
동행하는 이들은 모두 전문가였다.
그들이 내 옆에서 안전하게 인도해 줄 거라는 믿음이
불안을 조금은 누그러뜨려 주었다.


설악산 암벽등반은 예약이 필수였다.
나는 미리 내 정보를 보내고
장비를 하나하나 점검했다.
로프, 헬멧, 하네스, 카라비너 —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다룰 수 없는 물건들이었다.


기차를 타고 북쪽으로 향했다.
창밖으로 스치는 불빛들,
그리고 저녁노을이 잠시 머문 하늘.
문득 생각했다.


“그래, 이번에도 한 걸음 한 걸음.”


설악은 나에게 새로운 산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번 여정은 다르게 느껴졌다.
처음이 아니라,
또 한 걸음을 내딛는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기차는 밤을 가르며 달렸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으며 되뇌었다.


“오늘도, 안전하게.
그리고 끝까지, 나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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