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모두 떠난 집,
그제야 나는 조용히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늘 아이들 중심으로 움직이던 하루,
이제는 그 중심이 사라지고
텅 빈 시간만 남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누굴 먼저 깨워야 하지?”
그 질문 대신
“오늘 나는 뭘 하고 싶을까?”
그렇게 나에게 묻는 날들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어색했다.
마치 익숙한 대사를 잃은 배우처럼,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출근 준비도, 식사도, 퇴근 후의 시간도
모두 낯설었다.
하지만 조금씩
그 낯섦 속에 작은 즐거움이 피어났다.
퇴근 후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공원을 한 바퀴 돌기도 하고,
커피 한 잔을 천천히 마시며
노을이 지는 하늘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렇게 아무 일 없는 시간이
이토록 따뜻한 것이었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아이들 없이도 하루는 흘렀고,
그 하루가 모여 계절이 바뀌었다.
언젠가 문득,
‘이제는 나를 다시 배워야 하는 시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나의 이름,
나의 취향,
나의 마음을 천천히 꺼내 본다.
내가 좋아하는 꽃,
좋아하는 색,
좋아하는 향기,
그 모든 것을 다시 배우고 있다.
누군가의 엄마로
누군가의 아내로 살다 보니
나는 늘 ‘누구의 무언가’였지,
그저 ‘나 자신’으로 불린 적은 없었다.
이제는 그 이름을 되찾는 시간이다.
낯설지만 설레는,
나를 배우는 시간.
걷는 게 좋아
주말마다 길을 걸었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내 안의 묵은 생각들이 흩어지는 느낌이었다.
길 위에서 만나는 풍경이
모두 새롭게 보였다.
아이들과 함께 걸을 때는
놓치고 지나쳤던 작은 들꽃,
지붕 위의 고양이 한 마리,
가을 햇살의 결조차도
이젠 내 마음에 오래 남는다.
이제 나는 안다.
삶은 늘 채워가는 것이 아니라
비워내며 배우는 일이라는 걸.
아이들을 보내며 배웠고,
빈방을 마주하며 또 배웠다.
그리고 이제,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다시 배우고 있다.
아이들이 떠난 자리에 고요가 남았고
그 고요 속에서 나는 나를 다시 만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