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길 위에서 배우는 나

by 그라미의 행복일기

아이들을 다 보내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걷는 일’을 사랑하게 되었다.


처음엔 그저 시간이 남아서,
무언가 해야 할 것 같아서 걸었다.
하지만 걷다 보니
그 길 위에서 나는 조금씩 변해갔다.


길을 걸을 땐
누구의 엄마도, 누구의 아내도 아닌
그냥 ‘나’였다.
누가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나를 부르는 목소리도 없었다.
오직 내 발소리와 바람의 숨결만이
조용히 동행했다.


걷다 보면 마음이 비워진다.
그리고 그 빈자리로
새로운 생각과 기억들이 천천히 들어온다.


해파랑길의 파도 소리는
마치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남파랑길의 바람은
오래된 고민을 스쳐가며
“이제는 내려놓아도 돼.”
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길은 늘 다르지만
그 길 위의 나는 언제나 같다.
조금 느리고, 조금 서툴지만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는 나.


걷는 동안 나는 많이 배웠다.
바다는 늘 같은 자리에서 밀려오지만
그 파도의 모양은 날마다 다르다는 것,
산은 늘 묵묵하지만
그 길을 걷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풍경이 달라진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내 삶도 그렇다는 걸 배웠다.
매일 비슷해 보여도
하루하루의 마음이 다르듯,
내 인생의 길도 그렇게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혼자 걷는 길은 외로울 때도 있었지만
그 외로움 속에서
나는 ‘함께 있음’의 의미를 배웠다.
바람, 나무, 햇살, 구름이
모두 나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


어느 날은 길가의 작은 들꽃 하나가
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 작고 연약한 꽃이
거센 바람에도 꿋꿋이 피어 있는 모습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삶은 견디는 게 아니라,
그저 ‘피어나는 것’이라는 걸.


이제 나는
걷는 일이 곧 기도이고,
길 위의 바람이 나의 스승임을 안다.


길은 늘 나를 가르친다.

멈추지 않는 마음으로
나를 믿는 발걸음으로.

수,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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