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옆자리에 앉은 남자
# “엄마, 아버지랑 어떻게 결혼했어?”
“엄마, 아버지랑 어떻게 결혼했어? 아무리 봐도 너무 안 맞아.” 작은아이가 물었다. 아이의 눈에도 우리는 너무 다른 사람이었다. 결혼 34년 차. 이제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부딪힌다.
나는 세상의 모든 남자가 교회 오빠들처럼 섬세하고 자상할 줄 알았다. 어릴 때부터 20대 후반까지 교회에서 보내며 만난 남자들은 모두 다정하고 배려 깊었다. 그런데 남편은 달랐다. 너무나도 달랐다.
# 고속버스에서 시작된 인연
남편과 처음 만난 건 고속버스에서였다. 진주에서 부산으로 가는 길, 우리는 우연히 나란히 앉게 되었다.
나는 결혼을 한다는 친구의 말을 확인하려고 진주에 갔고, 남편은 진주에 사는 누나를 만나고 부산으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1980년대 후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고속버스는 만석이었다. 스마트폰 예매도 없던 시절, 줄을 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친구가 기사님께 부탁해 간신히 얻은 한 자리가 바로 남편 옆자리였다.
남편은 이어폰을 꽂고 다리를 흔들며 음악을 듣고 있었고, 나는 복잡한 마음으로 창밖만 바라봤다.
조용히 가고 싶었지만 남편은 기사님과 가끔 대화를 나눴고, 그의 크고 투박한 목소리가 신경 쓰였다.
‘아, 잘못 앉았다.’는 생각뿐이었다. 우리는 2시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산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하기 직전, 만덕 고개에서 차가 막혀 10분 거리인데도 40분이 걸렸다.
그때 남편이 입을 열었다. “집은 부산입니까?” 짧게 대답하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왜 그때 그렇게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 특별한 운명은 없었지만
그 후로 남편은 퇴근 시간이 되면 늘 직장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 그렇게 우리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남편이 서울 본사로 발령을 받고도 주말마다 부산으로 내려왔고, 우리는 만남을 이어갔다.
그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서울에 갔을 때도 단둘이 보단 친구들과의 만남이 많았다.
서울역에 마중 나와 함께 걷다가 높은 탑을 보고 물었다. “저기가 어디예요?” 그는 “저기가 남산입니다.”라고만 했다. 너무 어이가 없었지만, 그냥 남자답다고 여겼다. 연애 기간은 길었지만 자주 만나지 못해
서로를 깊이 알 기회는 적었다. 특별한 운명이라는 느낌은 없었지만, 서로가 편한 사람이었다.
# 너무 갑작스러웠던 결혼
서른을 앞두고 양가에서 결혼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평범한 삶을 원하지 않았고, 결혼보다 더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부모님이 만나기만이라도 하자고 하셔서 양가 부모님들과 인사를 하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결혼 날짜가 정해졌다. 1월 1일에 만나, 1월 26일에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이유는 단 하나.
2월에 한 살 더 먹기 전에 결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에 둘 다 말을 잃었지만, 그렇게 우리는 결혼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철없었다. 평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어떻게 그렇게 쉽게 하였을까... 신부의 설렘도 없이 모든 게 너무 빨리 지나갔다. 결혼 준비는 간단했다. 점심시간에 잠시 외출해 웨딩드레스를 보고, 신혼여행도 얼마 전 다녀온 제주도로 정했다.
# 로맨틱과는 거리가 멀었던 신혼
신혼여행 첫날, 남편은 제주지사에 있는 후배와 밤새 술을 마셨고 다음 날에는 같은 호텔에 투숙한 신혼부부와 택시 관광을 했다. 그 신혼부부는 중매로 결혼했는데 체격이 작은 신부는 큰 신랑이 무섭다며 나에게 하소연했다. 결국 우리는 신랑끼리, 신부끼리 따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로맨틱할 줄 알았던 신혼여행은 이렇게 어이없이 지나갔다. 결혼 후, 단칸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남편은 결혼 전 월급을 어머니께 드렸다고 했지만, 막상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어이없는 상황들이 계속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