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무 다른 두 사람
# 너무 다른 두 사람
남편은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였다. 말투는 투박했고 ‘하늘은 남자, 여자는 땅’이라 여기는 전형적인 가부장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었다. 나이 차이도 크지 않았지만, 그는 너무 보수적이었다.
나는 결혼 후에도 일을 계속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신했다. 입덧은 없었지만, 잠이 쏟아지는 시기였다.
그런데도 남편은 친구와 회사 직원을 데리고 와 술상 준비를 시켰다. 늦게 귀가하는 일도 잦았다.
모든 면에서 남편은 늘 당당했다. 나는 술도 담배도 하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자랐다. 그래서 그렇게 취해 들어오는 남편이 이해되지 않았다. 생활 습관도 달랐다. 나는 빨래를 모아서 하는 게 효율적이라 생각했지만
남편은 빨래거리가 눈에 보이면 바로 세탁해야 한다고 했다. 식습관도 달랐다. 나는 모든 음식을 싱겁게 먹었지만 그는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했다. 나는 생선을 좋아했지만 남편은 고기를 더 좋아했다.
# 서로를 닮아가는 시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닮아갔다. 이제는 남편이 나처럼 설거지를 미루기도 하고 나도 그처럼 고기를 즐긴다. 나는 분위기 좋은 곳에서 천천히 식사하는 걸 좋아하지만 남편은 값싸고 푸짐한 음식을 더 선호한다. 이런 점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나는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의 기념일을 챙기는 편이다. 남편은 그런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결혼기념일엔 아들들이 케이크나 꽃을 사준다. 남편에게서 받은 건 손에 꼽을 정도다.
# 나를 성장하게 한 사람
몇 년 전, 내가 다니는 산악회에 남편이 함께 간 적이 있다. 사람들과 금세 친해진 남편은 후배에게 “나한테 평생 세끼밖에 밥을 얻어먹지 못했다”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후배는 나에게 와서 “형부 왜 이렇게 웃기냐”라고 했다. 과장도 적당히 해야지… 나 참. 정말 뻥을 잘 치는 남편이다. 큰아이가 결혼한 후 내게 물었다.
“엄마, 아이 키우면서 어떻게 일했어? 그것도 공부까지 하면서?” 나도 때때로 스스로에게 묻는다.
결혼 후에도 학업을 계속하고 싶었고 결국 야간 대학에 입학했다. 남편은 “하고 싶은 걸 하게 해 줄게”라고 했지만, 막상 뭔가를 하려 하면 제동을 걸었다. 그럼에도 나는 최종 학위를 취득했고 그 과정에서 남편도 많은 희생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남편이 육아를 많이 도와주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 함께 이겨낸 시간들
남편은 대기업에 근무하다 IMF 때 퇴직했다. 현실적이고 냉철한 사람이었지만 믿었던 선배에게 퇴직금을 사기당한 뒤 방황했다. 음식점도, 유통업도 했지만 실패를 반복했다.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했고, 나를 힘들게도 했다. 하지만 그는 가족을 위해 성실하게 살아왔다. 지금도 채무를 갚기 위해 밤낮으로 일하고 있다. 빠르고 편한 길이 아닌 정직한 길을 선택한 그의 모습이 존경스럽기도 하고, 때로는 안쓰럽다.
# 내 인생의 로또, 당신
우리의 만남은 어느덧 40년 가까이 되었다. 너무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살아오며 때로는 치열하게, 때로는 잔잔하게 시간을 보냈다. 이제는 서로 다름을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둘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건 믿기 어렵지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그의 굽어가는 등이 안쓰럽고 그 또한 나의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 안타까울 것 같다. 여전히 나는 남편과 손을 잡고 국내 곳곳을 여행하며 걷고 싶다는 꿈을 꾼다.
남편은 가끔 산에 갈 수는 있어도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한다.
앞으로도 작은 문제로 티격태격하겠지만, 나는 안다. 남편은 언제나 내 든든한 편이라는 것을.
**내 인생의 로또라고.** 여보,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