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꽃보다 예쁜 친구
오랜만에 여고 동창 모임에 참석했다.
1년에 세 번 정도 모임이 있지만, 나는 늘 이런저런 사정으로 자주 빠지곤 했다. 이번엔 꼭 오라는 친구의 말에 모든 일정을 뒤로하고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전날부터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들떠 있었는지, 아침에 늦잠을 자버렸다.대중교통을 이용할 계획이었지만 시간이 촉박해 허둥대는 나를 본 남편이 “어이쿠!” 하며 자가용으로 데려다주겠다고 나섰다.조금만 더 일찍 움직였더라면 좋았을 텐데. 남편의 폭풍 잔소리에 나는 그저 조용히 있었다. 오늘은 내가 ‘을’의 입장이니까. 그런데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장소에 도착했더니 엉뚱한 곳이었다. 올해 회장을 맡은 친구에게 미안하다고 전하고, 먼저 일정을 진행하라고 했다.
친구들은 선동마을 인근의 음식점을 예약해 두었고, 식사 전엔 둘레길 산책을 하기로 했다고 했다. 다행히 그 길은 예전에 부산 갈맷길을 걸을 때 지나친 곳이라, 기억을 더듬어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모임 시간보다 10분쯤 늦게 도착해 나 혼자 둘레길을 걷기 시작했다. 걸음을 옮기며 그동안 걸었던 순간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진다. 내게 길은 언제나 추억이고, 그리움이다.
조금 더 가니 맞은편에서 친구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 빨리 왔네!” 오랜만인데도 어제 본 것처럼 반갑게 웃고 이야기한다. 학창 시절 친구들은 언제나 편하다. 마음은 아직 여고 시절 그대로인데 우리는 어느새 중년여성이다. 벌써 손주 자랑을 하는 친구도 있고 여전히 현역처럼 바쁘게 살아가는 친구도 있다. 삶은 달라도, 함께하는 순간만큼은 다시 소녀가 된다. 둘레길을 걸으며 봄꽃을 배경 삼아 사진도 많이 찍었다. 지나가던 분들이 “여고 동창이신가 봐요?” 하며 단체 사진도 찍어주셨다. 우리 얼굴에 어린 시절의 해맑음이 남아 있었나 보다.
산책을 마치고 향한 음식점에서는 향어회, 오리불고기, 백숙, 신선한 야채까지 푸짐하게 차려졌다. 자연스럽게 옛이야기가 풀려나오고, 누구랄 것도 없이 웃음이 넘쳐났다. 식사 후에는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고 차 한 잔씩 앞에 두고 또다시 이야기꽃을 피웠다. 시간은 흘렀지만 마음은 그대로였다. 여고 시절의 우리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나는 자꾸만 셔터를 눌렀다. 꽃보다 예쁜 친구들의 모습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아름다운 봄날, 길 위를 걸으며 생각했다. 인생의 봄은 계절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마음 따뜻한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이 바로 내 인생의 봄 아닐까.친구들은 말한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하자”*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음 깊이 간직할 수 있는 하루였다.
꽃보다 예쁜 나의 친구들, 오래도록 함께 웃자.
다음 만남을 기다리며, 오늘의 햇살과 웃음을 마음에 곱게 접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