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 나에게 보내는 의미 재테크 보고서:
10년 후의 나에게 보내는 의미 재테크 보고서
‘10년 후’라는 과제를 보니 문득 대학 입학 첫 수업 시간이 떠오른다.
평생교육학 개론 첫 강의 시간, 교수님은 A4 한 장을 모든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10년 후, 평범한 하루를 생각하며 적어 보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때, 30대였다. 과 학생들과 열 살 정도 차이가 낫다. 늦깎이로 대학에 편입했기 때문이다.
그때 내 삶은 치열했다. 일과 육아 등으로 하루 스물네 시간이 모자랐다. 눈앞의 하루도 버겁게 살아내는데, ‘10년 뒤’라니. 막연하기만 했다. 하지만 주어진 과제였으므로 적어냈다. 그리고 제출하려니 교재에 붙이라고 했다. ‘하, 이럴 줄 알았으면 대충 쓸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뒤로는 잊었다. 교재에 붙어 있었지만 다시 펼쳐보지 않았다. 하루하루 살아내기가 급했으니까.
몇 년 전, 서재 책들을 정리하다가 그 교재를 발견했다. 그 속에는 내가 적어둔 ‘10년 후의 하루’가 있었다. 그런데 놀라웠다. 이미 20년이 흐른 지금, 그때 내가 상상하며 써 내려갔던 하루가 기묘하게도 지금의 삶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알았다. 글의 힘, 내가 말하고 쓰는 것의 힘을. 말은 흘러가지만 글은 남는다.
남은 글은 나를 찾아와 길을 비춰주고 삶을 확인하게 해 준다.
그래서 나는 가끔 나 자신에게 편지를 쓴다.
간혹 여행지에서 만나는 ‘느리게 가는 우체통’이 있다. 우체통울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1년 뒤에 도착하는 엽서를 쓰고 나면, 언젠가의 내가 그 글을 받는다.
어느 날, 1년 전의 내가 보낸 편지를 받게 되면 나도 몰레 웃게 된다. 내용은 대부분 “지금처럼 감사하며 살아가길. 지금처럼 길을 걸으며 삶을 사랑하길.”이다.
강릉 경포대를 걷다가 받은 그 편지에도 같은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 짧은 문장이, 지난 시간의 나와 지금의 나를 이어주었다.
이제 십 년 뒤면, 나이의 첫 자릿수가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주름은 늘고 세월의 흔적이 더 깊이 새겨져 있겠지.
하지만 나는 바란다. 외면의 젊음이 아니라, 나다움이 가득한 아름다운 모습으로 늙어가기를.
사랑하는 나에게,
십 년의 시간이 흘렀구나.
그 사이 변화는 없었니? 이 글은 미래의 너에게 보내는 보고서야. 돈으로 지난 시간의 그 가치를 셀 수는 없겠지. 마음에 차곡차곡 모아둔 시간과 사람의 ‘의미 자산’을 정리해 보았어 크게 걷기, 사람, 글쓰기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아.
첫째, 걷기의 자산.
나는 길 위에서 나를 만났고, 때로는 혼자서, 때로는 함께 걸으며 사람을 만났어
해파랑길, 남파랑길, 서해랑길, 그리고 국내의 수많은 길과 언젠가 걸을 세계의 길까지.
그 발자국마다 담긴 땀과 숨결은 숫자로 환산할 수 없지만,
십 년 뒤 너에게는 흔들리지 않는 체력과 아름다운 기억으로 배당될 것이라 생각해
둘째, 사람의 자산.
길 위에서 동행들과 웃고, 때로는 흔들리고, 갈등하하며 그렇게 살아왔어
그 모든 만남이 내 삶의 주식이라 할 수 있겠지
십 년 뒤의 너는 여전히 혼자가 아니며
곁에 선. 함께 하는 사람들이 주는 온기로 이 자산의 배당을 누리고 있으리라.
셋째, 글쓰기와 책 이 주는 자산.
나는 매일 한 줄이라도 쓰려 노력했어.
나는 매일 책 한 페이지라도 읽으려고 했어
때로는 사소한 떨림을, 때로는 긴 깨달음을 기록하고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책들을 통해 배웠어
서툴렀지만 멈추지 않았어
십 년 뒤 여행작가라 불리고 싶지만 그러지 않아도 좋아. 다만, 그동안의 시간을 나의 언어로 삶을 기록하는 사람이 고 싶어.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수익률 아닐까.
마지막으로, 마음의 자산.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에서 고민하기도 하고
두려움 앞에서 멈추기도 했지만,
마지막까지 해 냈으리라는 걸
하고 싶은 것을 향해 발을 디딜 때마다
마음의 저금통에 작은 동전이 하나씩 쌓였으리라
십 년 뒤 너는 지금보다 더 담대하고 더 자유로워져 있으리라
그러니 잊지 말자
가장 확실한 재테크는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살아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십 년 뒤의 너는 오늘의 나를 생각하며 웃음 지으리라는 것을
십 년 뒤, 아름답게 살아가고 있을
나를 위한 실천적 다짐
1. 매일의 시간을 소중히 기록할 것.
2. 길 위에서 배우는 깨달음을 나누며 살 것.
3. 삶의 순간마다 감사할 것.
4. 두려움 앞에서 작은 용기를 낼 것.
5. 오늘 하루를 온전히 살아낼 것.
언젠가 또 다른 미래의 내가 이 글을 읽을 때 미소를 지을 수 있도록.
글은 나의 보고서이자, 미래의 나를 위한 가장 든든한 투자이니까.
십 년 뒤의 나는 분명 오늘의 나를 떠올리며, 따뜻하게 미소 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