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간의 지옥, 트루 드 프랑스
매년 7월,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한 장면이 펼쳐진다. 189명의 남자들이 자전거에 올라타 3,500km의 지옥 같은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트루 드 프랑스(Tour de France)라 불리는 이 대회는 단순한 스포츠 경기가 아니다.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동시에, 조직에서 진정한 팀워크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과서다.
21일 동안 이어지는 이 대회에서 가장 놀라운 사실은 개인의 승리가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란색 저지(유니폼)를 입은 우승자 뒤에는 언제나 8명의 팀원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승리를 포기하고 한 사람의 성공을 위해 헌신한다. 과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펠로톤, 에너지를 40%나 절약하는 협력의 과학
트루 드 프랑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펠로톤(Peloton)'이다. 189명의 선수들이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움직이는 모습을 만들어낸다. 각자 다른 색깔의 저지를 입고 있지만, 이들은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교하게 대형을 이룬다.
펠로톤의 핵심은 에너지 보존이다. 펠로톤 중앙에서 달리는 선수는 에너지 소비를 최대 40%까지 절약할 수 있다. 앞선 선수가 바람을 막아주고, 옆의 선수들이 옆바람을 차단한다. 개인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 집단의 지혜로 가능해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펠로톤만으로는 우승할 수 없다. 승부를 결정하는 순간이 오면 누군가는 이 안전한 무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를 '브레이크 어웨이(Break Away)'라고 한다. 위험을 감수하고 앞으로 나서는 용기가 있어야만 진정한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
현대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팀원들이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극대화할 때 조직 전체의 효율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중요한 프로젝트나 도전적인 과제 앞에서는 누군가 용기 있게 앞장서기도 해야 한다.
8가지 역할, 하나의 목표
트루 드 프랑스 팀은 8명으로 구성되며, 각자 명확한 역할을 갖는다. 팀 리더는 종합우승을 노리는 에이스다. 도메스티크는 물과 음식을 가져오고 바람을 막아주며 팀 리더를 지원한다. 클라이머는 산악 지형에 특화된 전문가이고, 스프린터는 평지에서 폭발적인 속도를 내는 스페셜리스트다. 타임 트라이얼리스트는 개인전에 강하고, 펀처는 짧고 급한 언덕에서 실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로드 캡틴은 전략과 전술을 조율하는 현장 지휘관이다.
이 역할 분담에서 주목할 점은 모든 역할이 동등하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리더라도 지원 없이는 21일간의 여정을 완주할 수 없다. 팀의 성공은 각자가 맡은 역할에 충실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37도 폭염 속에서 일어난 구조 작전
2024년 트루 드 프랑스에서 벌어진 일은 팀워크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준다. 역대 최강의 스프린터 마크 캐번디시는 첫 번째 스테이지에서 위기에 처했다. 206km 거리에 3,600m의 고도(획득 고도 3,600미터는 한라산 해발 1,947미터의 약 2배가 되는 높이)를 올라야 하는 혹독한 코스, 게다가 37도가 넘는 폭염이었다.
평지가 강점인 캐번디시에게 이런 산악 코스는 지옥이었다. 160km가 남은 경기 초반부터 그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자칫하면 컷오프 타임에 걸려 첫날부터 대회를 떠나야 할 판이었다. 35번째 스테이지 우승이라는 역사적 기록을 앞둔 그에게는 치명적인 위기였다.
이때 캐번디시가 속해 있는 아스타나 팀의 모든 멤버가 움직였다. 앞서 달리던 팀원들이 모두 뒤로 돌아와 캐번디시를 구하기 시작했다. 물을 뿌려주고, 앞에서 바람을 막아줬다. 한때 선두와 17분 차이까지 벌어졌지만, 팀원들의 헌신 덕분에 캐번디시는 컷오프를 피할 수 있었다.
희생이 만든 역사적 순간
팀원들의 희생과 헌신은 헛되지 않았다. 캐번디시는 5번째 스테이지에서 우승하며 통산 35번째 스테이지 승리라는 전설적인 기록을 세웠다. 2021년 34번째 우승 이후 부상과 슬럼프로 고생했던 그가 3년 만에 다시 일어선 순간이었다.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팀원들이 자신의 기회를 포기하고 한 사람을 위해 헌신하며 협력했다는 점이다. 그들에게는 개별 스테이지 우승의 기회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팀의 목표가 더 컸다. 캐번디시의 역사적 기록이 전체 팀의 명예가 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런 순간들이 있다. 개인의 성과보다 팀의 성공이 더 큰 의미를 갖는 때가 있다. 팀 업무의 성공이 조직 전체의 도약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구성원들은 지원군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진짜 팀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트루 드 프랑스는 개인 경기지만, 역설적으로 팀워크 없이는 절대 우승할 수 없는 스포츠다. 21일간 3,500km를 달리는 동안 선수들이 배우는 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언제 앞장서고, 언제 지원하며, 언제 희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이해다.
트루 드 프랑스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명확하다. 먼저 역할의 명확성이다. 각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 때 팀은 효율적으로 움직인다. 둘째는 상황에 따른 유연성이다. 고정된 역할에 얽매이지 않고 필요에 따라 서로를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는 공동의 목표다. 개인의 성공보다 팀의 성공이 우선될 때 진정한 시너지가 발생하며 개인과 팀이 성장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다. 내가 어려울 때 팀원이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펠로톤에서 무리를 지어 달리는 선수들 역시 서로를 완전히 신뢰한다. 바로 옆 선수의 실수 하나가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도 말이다. 서로 경쟁자이지만 때로는 앞서 나가 바람을 막아주며 서로 돕는다. 이런 신뢰가 있기 때문에 189명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일 수 있다.
결국 진짜 팀이란 서로의 성공을 위해 기꺼이 헌신하고 협력할 수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트루 드 프랑스의 선수들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