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고기

어른이 될 수 있을까

by 이재동

이번 구정엔 친가, 외가를 전부 다녀왔다. 오랜만의 방문이다. 매번 명절마다 알바를 해야 한다는 핑계로 집에서 쉬었다. 놀면 뭐하겠냔 심보로 실제로 일을 하기야 했다만 내려가기 귀찮았던 것이 사실이다. 친가는 어쩐지 어색하며(친척들 간의 사이도 영 좋지 않은 듯하다), 외가는 멀어도 너무 멀다.



세월이 흘렀음을 체감했다. 쏟아지는 덕담 속 으레 건네받았던 신사임당은 더 이상 볼 수 없다. 지갑에서 돈을 꺼내는 걸 보았지만 못 본 척하고, 받으면 속으로 미소지었지만 깜짝 놀란 척하고, 뭘 이런 걸 다 주냐며 너스레를 떨어주고. 세뱃돈 수령인도 제 나름 지키는 매너가 있다. 지금의 난 어떠냐? 예의는 밥 말아 먹은 놈이다. 딱히 받는 게 없으니 지킬 예의가 없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 인사만 하면 그만이다. 하루가 달리 커져만 가는 사촌 동생들을 보며 ‘나도 용돈을 줘야 하나?’ 고민한다. 나중에 성공하면 줄게, 라는 말은 부끄러워 못하고 그저 ‘많이 컸구나’ 하며 놀라워할 뿐이다.



할머니께서 해주신 된장찌개가 정말 맛있어서 된장을 좀 받아왔다. 요새는 다 못 먹어서 버리지 않을 정도라면 웬만한 음식과 식재료를 챙겨오곤 한다. 아직 취업은 못 했으니 입에 풀칠할 수준으로만 알바를 하는데, 취미생활은 해야겠고 결국 아낄 수 있는 건 식비 뿐이다. Flex가 휘몰아쳤던 2019년의 소비 트렌드에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무튼, 된장찌개엔 또 제육볶음을 곁들이지 않을 수가 없으니 쿠팡이나 들어가 이것저것 둘러봤다. 참 편한 세상이다. 굳이 장을 보러 나갈 일이 없다. 신선식품이라 냉동 아니면 주문하기 까다로웠던 예전과는 달리 24시 전에만 주문하면 다음 날 새벽에 도착한다. 단점이라면 가격. 백 그램 당 천 원이면 살 수 있었던 불고기용 돼지 전지가 천 오백 원이나 한다.



무슨 가격이 150%나 올랐나, 돼지에 꿀 발라놨나부터 시작된 작은 불평이 불쏘시개가 될 줄은 몰랐다. 물가상승률은 이렇게 가파른데 과연 먹고 살 순 있을까? 열심히 취업 준비해야 할 시즌인데, 그렇잖아도 남들보다 2년 정도 미뤄진 졸업인데, 한가로이 돼지 가격이나 보고 있을 때인가? 나는 왜 느긋하게 커피 바 정리를 했는가? 학창시절, 시험공부는 싫으니 책상이나 정리하던 것과 비슷한 맥락은 아니었을까?



누가 그랬다. 알면서 안 고치는 놈이 제일 나쁜 놈이라고. 집안이 영 적막해 틀어놓았던 시티팝은 어느새 한국 인디로 그 장르가 바뀌었다. 스피커는 선우정아의 <백년해로>를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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