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쁜 놈이지 뭐

진상을 만났을 때면

by 이재동

중학교 2학년 도덕 시간엔 성선설과 성악설에 대해 배웠다. 맹자는 사람은 본디 선하게 태어났다 주장한 반면, 순자는 사람은 원래 악하나 인위적으로 선해질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둘은 ‘선’이라는 기질이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에 대해 논했다. 나는 별 관심이 없었다. 사람이 착하게 태어났건 못되게 태어났건 내 알 바인가? 알면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중간고사는 봐야 하니까 누가 무엇을 주장했냐 정도만 외우고 패스했다.

지금도 선(善)에 관해선 크게 관심을 두진 않는다. ~에 관해선 이라고 말한 이유. 어딘가에선 특이점이 왔기 때문이겠지. 바로 내 안의 ‘악(惡)’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어쩌다 방구석 개똥철학을 논하게 됐냐구? 생뚱맞게도 커피 내리다가, 아니 정확히는 손님들 맞이하다 이리됐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은 알겠지만, 일이 많아 몸이 힘든 건 진짜 괜찮다.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안 멈추고 커피만 온종일 만들어도 뒤끝은 전혀 없다. 사람 미치게 만드는 건 보통 사람이다. 손‘님’자도 붙이기 아까운 아해들이기에 손이라고 일컬어볼까 했지만 이는 손에게도 무척이나 미안한 일. 그들을 지칭하기 위해서 ‘손놈’이라는 완벽한 단어가 존재한다. 처음 한두 명쯤이야 똥 밟았다 치고 넘길 수 있기야 한데,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처럼 이게 쌓이면 문제가 좀 달라진다. 샷이야 뽑다 보면 어느새 손님 줄이 없어지지만, 손놈은 사라진다 해도 울화통은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활을 지속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방어기제가 생겼다. 2015년 11월, 카페 아르바이트를 처음 시작했던 이재동은 이제 없다. 손님이 무슨 개소리를 해도 받아주고, 웃어주고, 설명해주던 그 녀석은 죽었다. 2020 함무라비의 환생으로 다시 태어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태세로 지내고 있다. 웃어주는 고객분께는 무한친절을, 헛소리하는 손놈에겐 무한손절을! 그래도 화가 난다면 이렇게 생각을 한다.


‘나 혼자 열 받아봤자 날 열 받게 한 그놈은 내가 지금 이런 상태인 줄도 모르고, X나 평온하게 있을 게 분명하다. 화나면 나만 손해다. 털어버리자!’


보통은 이런 식으로 마인드 컨트롤하며 넘어가게 되는데, 이 역시도 쌓이고 쌓이면 응어리가 진다. 공든 탑과는 다르게, 이게 쌓이면 X 된다. 진상 게이지 리미트를 넘기는 순간은 분명히 온다. 그때부터는 서비스업 종사자로서는 빵점짜리 행동을 한다. 평소에는 대충 웃어넘겨줄 농담에도 표정이 싸늘하게 식고, 이상한 요구에는 ‘그건 좀 어려우세요^^’가 아닌 ‘뭐요?’ 혹은 ‘뭐라고요?’라고 대답해버린다. 그런 날엔 잠깐은 후련해도 집에 돌아오면 좀 이야기가 다르다. 그렇게까지 화낼 일이었나, 감정 하나 다스리지 못하는 녀석이 되어버린 걸까, 자괴감이 든다.


방구석 철학자가 되는 건 이쯤에서다. 내면의 ‘악’은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 본래 심성이 못돼먹었지만 의무교육과 사회화로 인해 열심히 착한 척했던 나에게 진상(혹은 진상이라고 착각한)손님들이 다시금 '너는 원래 그랬어' 라고 일깨워주는 걸까, 아니면 정말로 착한 사람이었던 나를 그들이 이렇게 만든 걸까. 이런 생각이 처음 들었던 2016년 해피 이재동 시절엔 후자, 즉 방어기제로 ‘악’을 익혔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곤 했는데, 지금의 함무라비 이재동이는 패시브로 악을 타고난 게 아닐까, 라는 쪽으로 무게를 싣고 있다. 자꾸 좋지 않은 결말을 내려고 하는 현실이 슬프다. 시간이 갈수록 분리수거 불가 종량제 봉투 인성이 되어가는 것만 같아 부쩍 서글픈 하루다.

매거진의 이전글그건 조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