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동 Mar 08. 2021

[약수] 리사르 커피 로스터스

약수에서 이탈리아를 외치다

방문 일자 : 2020. 04. 23
마신 

에스프레소

스트라파짜토

카푸치노

오네로소

피에노

그라니따

아포가토


우리 동네엔 왜 이런 카페가 없을까? 칠전팔기 끝에 리사르 커피 로스터스에 다녀왔다. 매일 밤 자기 전, 아침에 꼭 일어나 리사르를 다녀오리라 다짐했건만 항상 실패했다. 왜? 갈 때마다 닫혀 있었느냐? 아니다! 적은 내 안에 있었다. 오랜 백수 생활로 인해 아침 일찍 일어나는 법을 까먹어 버린 탓이다. 그러나 오늘, 드디어 나는 몇 개월 전부터 계획했던 리사르 방문을 해내고야 말았다.



리사르 첫 방문이라면 꽤 협소한 매장의 공간에 멈칫할 수 있다. 수차례 인스타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경험을 했던 나조차도 생각보다 더 작다고 느꼈는데 오죽하겠는가. 그렇지만 걱정은 저 멀리 접어두시길. 스탠딩 에스프레소 바로서는 더할 나위 없다. 서 있기에도 전혀 불편하지 않다! 바가 다른 매장보다 15cm 정도 높게 설계되어 몸을 기댈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커피계의 서서갈비 리사르의 섬세한 배려심이다.



오전 영업시간에 와서 그런지 직장인들이 출근길에 잠시 들러 한잔 쭉 들이키고 나가는 모습은 흡사 이태리에서나 볼 법한 진풍경을 자아낸다. 에스프레소라는 메뉴 자체가 진득하니 앉아서 마셔가며 이야기할만한 용량이 아니거니와 식으면 맛도 없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놀라운 건 따로 있다. 바로 커피 가격. 가장 저렴한 메뉴인 에스프레소는 1,500원, 가장 비싼 메뉴 아포가토는 3,000원이다. 심지어 하겐다즈가 들어가 있다. 가격 책정마저 이태리라니! 문득 20살 때 유럽 갔던 기억도 난다. 볼일 본다고 1유로 내는 게 아까워 이왕 배출해낼 거 에쏘 한 잔 때리고 카페 화장실 이용했었던 아름다운(?) 추억....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아무튼 땅 파서 장사하시나, 에쏘 천사의 현신일까 고민했지만, 회전율을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그래도 멋진 건 멋진 거다.



빙 돌아왔다. 이제 음료 이야기 시작. 사실 길게 말할 것도 없는 게 ‘맛있다’ 세 글자면 끝인데 그래도 회고해 봐야겠지. 너무나 바삭해 한입 베어 무는 순간 슈가 파우더가 안경, 얼굴, 겉옷에 묻어버린 나폴리 전통 페이스트리, 스폴리아텔라로 커피 레이스를 시작했다. 이 뒷내용부턴 거의 간증에 가까우니.. 알아서 잘 보시길.


스폴리아텔라


내겐 마음 편히 에스프레소를 마실 수 있는 카페의 기준이 있다. 첫째는 설탕을 넣어주느냐다. 리사르의 에스프레소는 기본적으로 설탕이 들어가 있다. 소주 마시듯 털어 넘기고, 미처 녹지 못한 설탕을 약간 남은 에스프레소와 섞어 진액처럼 만들고 마무리했다.


에스프레소


이어서 스트라파짜토와 카푸치노를 같이 주문했다. 다소 생소한 이름의 이 메뉴, 스트라파짜토는 에스프레소 위에 카카오 파우더가 뿌려져 있다. 맛있었지만 굳이 따지자면 제일 아쉬웠던 컵. 다른 음료들이 워낙 쟁쟁했던 탓이다. 카푸치노는 상상한 그대로 부드럽고 두꺼운 폼을 즐길 수 있다. 다만 마지막 한 입에서 물맛이 살짝.


스트라파짜토
카푸치노


잠시 노가리를 까다 보니 피에노와 오네로소가 나왔다. 피에노는 에스프레소 + 크림 + 카카오 토핑. 에스프레소와 카카오의 간극을 크림이 완벽히 채워냈다. 오네로소는 피에노에 우유를 추가했다 생각하면 편하다. 둘은 취향 차이로 선호도가 갈릴 듯한데, 나는 오네로소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오네로소(좌) 피에노(우)
오네로소


마지막으로 주문한 아포가토와 그라니따. 아이스크림과 커피의 조합은 보증수표다. 게다가 하겐다즈라면? 쫀득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적절히 녹은 하겐다즈와 에스프레소를 먼저 마시고 숟가락으로 퍼먹으면 승천하는 거지 뭐. 설명할 게 따로 없다.


아포가토


자, 대망의 그라니따, 오늘의 베스트다. 가장 높은 점수를 쳐준 이유는 바로 균형이다. 차가운 블랙커피와 크림이 만나면 필연적으로 발현되는 특유의 산미가 있는데, 사실 이걸 산미라 부르는 게 맞는가 싶지만 나는 그렇게 느끼니까. 무튼, 그 톤이 적절하다. 자칫하면 쨍한, 혹은 쏘는 느낌의 산미가 나서 (테일러 커피의 아인슈페너가 불호인 이유, 개취 존중해주세요! 크림 모카는 짱!) 거부감이 드는 메뉴가 되었는데, 리사르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라니따(계절 메뉴)


잔뜩 마셨으니 그만큼 길게 썼는데, 계산할 때 보니까 딱 23,000원 나왔다. 이게 커피 8잔에 빵을 두 개나 먹고도 나올 수 있는 가격이 맞나 싶어 감탄했는데, 사장님께서는 ‘저희 매장에서 23,000원이 나오기가 쉽지가 않은데 두 분 많이 드셨네요.’라며 다른 의미로 감탄하셨다. 이런 워딩 좀 저렴해 보이지만 내 표현력의 한계가 왔다.



리사르.. 진짜.. 개.. 쩐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