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샤워하다 문득 떠오름

by 이재동




1. <꿈>

카페에서 시간이 남아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선 <꿈>을 읽었다. 카프카가 출간을 위해 쓴 건 아니고, 생전 써왔던 편지나 일기들에서 꿈에 관한 기록들을 발췌해 만든 책이라고 한다. 전부 다 읽진 못했고 그의 꿈결을 열 번 정도 훔쳐봤는데, 대단한 작가다.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이거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대략 이랬다.


‘꿈은 상호 소통이 아니다. 일방적인, 폭력적인 전달이다. 꿈은 행복감을 가져다주기도, 공포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슬프게도 대부분은 후자다. 하지만 꿈들은 대부분 비현실적이고 이해할 수 없기에 전달이라는 폭력적인 방식이 가장 적합하다.’


라는 뉘앙스였던 거 같다. 카프카의 꿈이 그에게 폭력적이었다면, 내겐 그의 <꿈>이라는 책이 폭력적이었다.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한 적 있다. ‘꿈 일기나 써서 연재해 볼까?’ 앞서 말한 카프카의 설명처럼, 그냥 뇌가 알아서 때려 박아 주는 게 꿈이다. 나는 따로 글감 쥐어짤 필요도 없고 꿈꾼 대로 적기만 하면 되니 얼마나 편한가, 라는 이유에서였다. 나는, 꿈에 대해 이 정도로 깊게 사유해본 적이 없다. 정말이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기분이었다.




2. <성취>

성취는 사람이 살아가는 원동력이다. 사람은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은 그래서 나왔을 터다. 놀기만 하면 지루해진다. 하지만 가끔은 성취도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학생에게 책상을 정리하는 것만큼 위험한 건 없다. 정리정돈은 눈에 잘 보이는 성취 중 하나다. 약간의 노력만 들여도 확실한 아웃풋이 나온다. 잠깐 편해진 마음에 공부를 늦추게 된다. 정작 이뤄내야 할 큰 성취인 시험 고득점은 점차 멀어져만 간다. 열심히 사는 백수들도 마찬가지다. 깔끔해진 집을 보며, 운동하며 땀 흘린 자신을 보며 ‘나 그래도 열심히 살았다’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 아닐까. 막상 시급한 건 취업인데 말이다. 성취는 모르핀이다. 적당량만 놓아주면 진통제지만, 잔뜩 주사하면 마약이다.




3. <우연>

필연이나 운명 따위는 믿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한 나인가 보다. 우연을 통해 그 비슷한 걸 억지로 만들어내니 말이다. 언젠가는 단순히 앨범 재킷이 맘에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들어보지도 않고 음반을 구매하곤 했다. 인디 밴드 <파라솔>의 첫 EP가 그렇다.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찾아서 그 자리에서 바로 들어볼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안 한 거다. 사실, 음반이란 것을 처음 구매했을 때부터 그랬다. <ELLEGARDEN>이라는 단어가 멋져서 충동적으로 샀다. CD 음반은 1번 곡부터 듣는 게 편하다. 물론 빨리 감기나 뒤로 감기 버튼을 누르며 트랙을 건너뛰거나 다시 듣거나 할 수는 있는데 처음 듣는 거라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아무튼 나름 취향에 잘 맞아서 듣다 보니 귀에 익숙한 노래도 두어 곡 정도 수록되어 있었다. 버릴 트랙이 없단 말은 이때 쓰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컴필레이션 음반이었어서 죄다 히트곡이었던 것. 그 뒤로 ELLEGARDEN 앨범은 거의 다 사서 들었다. 음반뿐이냐? 여행 갈 때도 비슷하다. 그냥 특가 비행기 표면 결제를 해 버린다. 어디에 있는 곳인지, 뭐가 유명한 곳인지 정도는 찾아보고 결제해도 늦지 않는데 말이다. 그냥 간판이 허름한 게 맛있어 보이니까 들어가 본다. 가게 이름 검색해서 리뷰를 보면 되는 걸 말이다. 그냥 저쪽 골목으로 들어가 본다. 지도 켜보면 뭐가 나올지 뻔히 나오는데도 말이다. 이렇게 ‘어거지 우연’을 만들어내며 살아 보니까 꽤 재밌다. 가장 최근엔 재활용 쓰레기 수거장에서 책 한 권을 주워왔다. 박완서 작가의 <호미>다. 사실 이건 우연이라 하기는 좀 그렇긴 하다. <토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등 명작도 많은 검증된 작가니까. 그래도 서평 같은 건 안 찾아봤다. 재밌길 바랄 뿐이다. 사실 재미없어도 된다. 우연은 만드는 것만으로도 재밌다.

매거진의 이전글불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