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생존기: 비긴즈>
처음엔 물풍선 던지면서 시작됐지만,
우리는 그 후로 꽤 자주 게임을 함께 했다.
그 사람은 여전히 시크했다.
대답도 딱딱 끊어서.
"ㅇㅇ"
"ㄱㄱ"
"ㄴㄴㄴㄴ 그쪽 아니라고 ㅋㅋㅋㅋ"
그런데, 그 속에서도 은근슬쩍
서로에 대해 이것저것 묻고,
얘기가 점점 길어졌다.
내가 먼저 물어봤다.
“프리랜서라고 했잖아. 무슨 일 하는거야?”
그랬더니,
“노코멘트 할게.”
...응? 뭐야 이 진지한 톤은?
그 뒤로 뭔가 글루미한 느낌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요즘 일감이 없어. 먹고 살기 힘들다..”
목소리는 없었지만,
채팅창 너머로 느껴지는 인생의 피로감.
근데 나는 사실 그런 분위기를 잘 못 견디는 사람이다.
나는 밝고, 유쾌하고, 살짝은 야한 얘기까지도 좋아하는 타입이다.
그래서 분위기를 확 틀었다.
“여자친구 있어?”
“있었지. 헤어졌어 지금은.”
...오, 잠깐 또 슬퍼지려 하네?
그래서 내가 던졌다.
“혹시... 만족 못 시켜줘서 차인 거 아니야? ㅋㅋㅋ”
솔직히 그냥 장난이었다.
진짜 궁금해서가 아니라, 그냥 웃자고.
그런데 이 사람, 진심 가득한 궁서체로 말했다.
“난 내 님은 무조건 만족시켜. 실력은 어디 안 가.”
...아니... 뭐지 이사람...
시크한 줄 알았는데 진지하게 야한 농담 회신이라니?
너무 웃겨서 한참 웃었다.
그때 좀 이상하게 생각했다.
“이 사람, 약간 웃기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게임 같이 한 지 한 세 달쯤 되었을 무렵.
이 사람이 말했다.
“서울에 일감이 생겼어. 올라가려고.”
자기 고향이 경상도라 서울까지 차로 8시간이래.
근데 이상하게,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반가웠다.
나도 수도권에 살고 있었고,
이 사람이 말한 근무지가
우리 집이랑 꽤 가까웠다.
그래서 슬쩍 말했다.
“오, 나랑 가깝네?”
그랬더니 바로 튀어나온 말.
“커피 한잔 하실?”
순간 살짝 망설였다.
게임에서 만난 사람이랑 실제로 보는거... 괜찮을까?
내가 너무 선 넘는 걸까?
근데 또 한편으로는,
게임 안에서 꽤 오래 얘기를 나누며 생긴 ‘라포’가 있었달까.
그걸 믿고,
“오케이” 했다.
그러자마자 전화번호를 달라고 했다.
바로 교환.
그리고 만나는 날.
만나기로 한 카페 시간 30분 전에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하이. 나 OO이야.”
갑자기 자기 게임 닉네임을 말하는 거다.
...순간 오타쿠인가 했지만,
사투리 억양으로 이어진 다음 멘트에 터졌다.
“만나기 전에 연락하는 게 예의라꼬 생각해서예~”
어디까지 진지한 사람인지…
웃음이 나면서도,
뭔가 귀엽고... 좀 다정하다 싶었다.
우리는 중간 지점 카페에서 보기로 했다.
나는 먼저 도착해서
신호등을 기다리며 서 있었는데—
어디선가 들리는 목소리.
“여가 ○○카페 맞제? 여기가 으디노?”
두리번두리번.
크게 말도 안 하는 사람이
길거리에서 사투리를 풀가동 중.
나는 단번에 알아봤다.
“아, 이 사람이다.”
물풍선 던지며 시크했던 그 사람이,
현실에선 양손 흔들며 카페 찾는 사투리요정이 될 줄은 몰랐다.
그날 이후,
우리 사이엔 진짜 현실 ‘이야기’가 시작됐다.
이 이야기는 《신혼 생존기: 비긴즈》 시리즈 1화입니다.
다음 편: 2화. 사투리 치이고, 치열에 한 번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