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게임에서는 시크하더니,
현실은 사투리요정?

<신혼 생존기: 비긴즈>

by 엉탐궁탐

처음엔 물풍선 던지면서 시작됐지만,
우리는 그 후로 꽤 자주 게임을 함께 했다.
그 사람은 여전히 시크했다.
대답도 딱딱 끊어서.


"ㅇㅇ"
"ㄱㄱ"
"ㄴㄴㄴㄴ 그쪽 아니라고 ㅋㅋㅋㅋ"


그런데, 그 속에서도 은근슬쩍
서로에 대해 이것저것 묻고,
얘기가 점점 길어졌다.


내가 먼저 물어봤다.

“프리랜서라고 했잖아. 무슨 일 하는거야?”


그랬더니,
“노코멘트 할게.”


...응? 뭐야 이 진지한 톤은?

그 뒤로 뭔가 글루미한 느낌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요즘 일감이 없어. 먹고 살기 힘들다..”

목소리는 없었지만,
채팅창 너머로 느껴지는 인생의 피로감.


근데 나는 사실 그런 분위기를 잘 못 견디는 사람이다.
나는 밝고, 유쾌하고, 살짝은 야한 얘기까지도 좋아하는 타입이다.


그래서 분위기를 확 틀었다.


“여자친구 있어?”
“있었지. 헤어졌어 지금은.”


...오, 잠깐 또 슬퍼지려 하네?

그래서 내가 던졌다.


“혹시... 만족 못 시켜줘서 차인 거 아니야? ㅋㅋㅋ”


솔직히 그냥 장난이었다.
진짜 궁금해서가 아니라, 그냥 웃자고.


그런데 이 사람, 진심 가득한 궁서체로 말했다.


“난 내 님은 무조건 만족시켜. 실력은 어디 안 가.”


...아니... 뭐지 이사람...
시크한 줄 알았는데 진지하게 야한 농담 회신이라니?


너무 웃겨서 한참 웃었다.
그때 좀 이상하게 생각했다.


“이 사람, 약간 웃기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게임 같이 한 지 한 세 달쯤 되었을 무렵.


이 사람이 말했다.


“서울에 일감이 생겼어. 올라가려고.”


자기 고향이 경상도라 서울까지 차로 8시간이래.
근데 이상하게,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반가웠다.


나도 수도권에 살고 있었고,
이 사람이 말한 근무지가
우리 집이랑 꽤 가까웠다.


그래서 슬쩍 말했다.

“오, 나랑 가깝네?”

그랬더니 바로 튀어나온 말.


“커피 한잔 하실?”

순간 살짝 망설였다.

게임에서 만난 사람이랑 실제로 보는거... 괜찮을까?


내가 너무 선 넘는 걸까?

근데 또 한편으로는,
게임 안에서 꽤 오래 얘기를 나누며 생긴 ‘라포’가 있었달까.
그걸 믿고,
“오케이” 했다.


그러자마자 전화번호를 달라고 했다.
바로 교환.


그리고 만나는 날.


만나기로 한 카페 시간 30분 전에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하이. 나 OO이야.”

갑자기 자기 게임 닉네임을 말하는 거다.


...순간 오타쿠인가 했지만,
사투리 억양으로 이어진 다음 멘트에 터졌다.


“만나기 전에 연락하는 게 예의라꼬 생각해서예~”

어디까지 진지한 사람인지…
웃음이 나면서도,
뭔가 귀엽고... 좀 다정하다 싶었다.


우리는 중간 지점 카페에서 보기로 했다.


나는 먼저 도착해서
신호등을 기다리며 서 있었는데—


어디선가 들리는 목소리.

“여가 ○○카페 맞제? 여기가 으디노?”


두리번두리번.
크게 말도 안 하는 사람이
길거리에서 사투리를 풀가동 중.


나는 단번에 알아봤다.

“아, 이 사람이다.”


물풍선 던지며 시크했던 그 사람이,
현실에선 양손 흔들며 카페 찾는 사투리요정이 될 줄은 몰랐다.


그날 이후,
우리 사이엔 진짜 현실 ‘이야기’가 시작됐다.


이 이야기는 《신혼 생존기: 비긴즈》 시리즈 1화입니다.

다음 편: 2화. 사투리 치이고, 치열에 한 번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