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zz 같은 에피소드 #2: Charlie Parker
Charlie Parker는 빠른 템포에서도 어떤 멜로디나 화성 이건 간에 뛰어난 즉흥 연주를 선보였다. 하나의 현상처럼 그는 40년대 수많은 젊은 뮤지션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물론 마약이라는 악마도 같이 선물을 했다.
당시 빅 밴드를 운영했던 Stan Kenton은 젊은 뮤지션들이 마약까지 흉내 내는 모습을 보고 혀를 찼다고 한다.
당시 수많은 젊은 뮤지션들은 빅 밴드보다는 캄보 형식의 연주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빅 밴드에서는 솔로이스트로서의 활동보다는 빅 밴드라는 틀에 맞춰야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비밥을 하기 위해서는 마약을 해야 한다는 것이 젊은 뮤지션들에게 퍼져 있었습니다.
어느 행사에 대기실에서 젊은 뮤지션들이 마약을 하고 있더라고요. 다들 눈이 풀려서는 저래서 연주를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들더라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연주를 잘 하던 Charlie Parker가 못하던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악보를 볼 줄 모르고 쓸 줄도 몰랐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악보를 볼 수 있고 쓸 수 있는 동료 집에 무작정 찾아가서 연주를 하고 악보로 쓰라고 했다고 한다. 그중의 가장 큰 피해자는 Dizzy Gillespie였다.
어느 날 집에서 아내랑 자고 있는데 한 밤중에 갑자기 Charlie Parker가 집 문을 막 두드리는 겁니다.
"이봐 Dizzy! 나 지금 좋은 악상이 떠올랐어. 거기 문 앞에 있는 거 아니까 악보로 좀 받아줘"
하더니 미친 듯이 연주를 하는 거예요. 그 한밤 중에!!
아내는 나에게는 저런 미친 넘이랑 어울려 다니지 말라고 소리를 쳤지요. 옆 집에서도 난리가 났어요. 하지만 버드는 그런 건 신경도 쓰지 않았어요.
계속 연주했어요. 저는 그것을 받아서 악보로 옮기느라 문 앞에서 쪼그리고 악보를 그렸지요.
하지만 그의 마지막에 버드 때문에 Miles Davis와 Charles Mingus와는 사이가 상당히 안 좋았다고 한다. 4, 50년대 젊은 뮤지션들에게는 하나의 현상이자 우상과 같았던 버드가 건강이 악화되었을 때 Miles Davis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Charles Mingus와 Thelonious Monk는 그것이 못내 아쉬웠던 모양이다.
이 작품은 2001년 Dreyfus레이블에서 제작된 음반이다. 일종의 컴필레이션이다.
이 음반에 수록된 곡들은 이 레이블의 아트 디렉터로 있는 Chloé Dreyfus가 초이스했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그 음질에 있다. Charlie Parker의 음반들은 뛰어난 연주에 비해서 음반들의 음질이 너무나 조악해서 솔직히 듣다 보면 짜증이 난다.
40년대 후반에서 중반 Charlie Parker는 Norman Granz에 의해 당시 유행했던 With String, 즉 스트링 세션과 함께 아름다운 발라드를 녹음했다. 이 작품은 49년, 50년 그때의 녹음들과 몇몇 콰르텟 형식의 곡들로 수록되어 있다. 그중에 소개하는 곡은 콰르텟 형식으로 Dizzy Gillespie, Thelonious Monk이 참여한 곡으로 1950년 6월 6일 뉴욕에서 녹음된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