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uSicEssay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의기쁨 Jan 18. 2016

My Melancholy Baby

Jazz 같은 에피소드 #2: Charlie Parker

Charlie Parker는 빠른 템포에서도 어떤 멜로디나 화성 이건 간에 뛰어난 즉흥 연주를 선보였다. 하나의 현상처럼 그는 40년대 수많은 젊은 뮤지션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물론 마약이라는 악마도 같이 선물을 했다.

당시 빅 밴드를 운영했던 Stan Kenton은 젊은 뮤지션들이 마약까지 흉내 내는 모습을 보고 혀를 찼다고 한다.


당시 수많은 젊은 뮤지션들은 빅 밴드보다는 캄보 형식의 연주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빅 밴드에서는 솔로이스트로서의 활동보다는 빅 밴드라는 틀에 맞춰야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비밥을 하기 위해서는 마약을 해야 한다는 것이 젊은 뮤지션들에게 퍼져 있었습니다.

어느 행사에 대기실에서 젊은 뮤지션들이 마약을 하고 있더라고요. 다들 눈이 풀려서는 저래서 연주를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들더라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연주를 잘 하던 Charlie Parker가 못하던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악보를 볼 줄 모르고 쓸 줄도 몰랐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악보를 볼 수 있고 쓸 수 있는 동료 집에 무작정 찾아가서 연주를 하고 악보로 쓰라고 했다고 한다. 그중의 가장 큰 피해자는 Dizzy Gillespie였다.


어느 날 집에서 아내랑 자고 있는데 한 밤중에 갑자기 Charlie Parker가 집 문을 막 두드리는 겁니다.

"이봐 Dizzy! 나 지금 좋은 악상이 떠올랐어. 거기 문 앞에 있는 거 아니까 악보로 좀 받아줘"

하더니 미친 듯이 연주를 하는 거예요. 그 한밤 중에!!

아내는 나에게는 저런 미친 넘이랑 어울려 다니지 말라고 소리를 쳤지요. 옆 집에서도 난리가 났어요. 하지만 버드는 그런 건 신경도 쓰지 않았어요.

계속 연주했어요. 저는 그것을 받아서 악보로 옮기느라 문 앞에서 쪼그리고 악보를 그렸지요.


하지만 그의 마지막에 버드 때문에 Miles Davis와 Charles Mingus와는 사이가 상당히 안 좋았다고 한다. 4, 50년대 젊은 뮤지션들에게는 하나의 현상이자 우상과 같았던 버드가 건강이 악화되었을 때 Miles Davis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Charles Mingus와 Thelonious Monk는 그것이 못내 아쉬웠던 모양이다.


My Melancholy Baby


이 작품은 2001년 Dreyfus레이블에서 제작된 음반이다. 일종의 컴필레이션이다.

이 음반에 수록된 곡들은 이 레이블의 아트 디렉터로 있는 Chloé Dreyfus가 초이스했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그 음질에 있다. Charlie Parker의 음반들은 뛰어난 연주에 비해서 음반들의 음질이 너무나 조악해서 솔직히 듣다 보면 짜증이 난다.


40년대 후반에서 중반 Charlie Parker는 Norman Granz에 의해 당시 유행했던 With String, 즉 스트링 세션과 함께 아름다운 발라드를 녹음했다. 이 작품은 49년, 50년  그때의 녹음들과 몇몇 콰르텟 형식의 곡들로 수록되어 있다. 그중에 소개하는 곡은 콰르텟 형식으로 Dizzy Gillespie, Thelonious Monk이 참여한 곡으로 1950년 6월 6일 뉴욕에서 녹음된 곡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Winter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